스마트폰의 성격 침공. 납치된 내향인
MBTI는 융의 성격유형 분류를 기반으로 개인이 선호하는 세계에 대하여, 관심사가 세상과 타인이면 E(xtroversion), 내면세계라면 I(ntroversion)으로 구분한다.
요즘 내향인이라고 하면 쉽게 연상되는 이미지는 집돌이/집순이로, 아마도 그들은 집에서 혼자 스마트폰을 하면서 뒹굴거리며 행복해하고 있을 것이다.
침대에 누워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내가 바로 그렇다.
그런데, 나는 요즘 이런 내가 내향인인지 헷갈린다.
혹시 내면세계로 가는 도중에 스마트폰에게 침공당했다 느껴본 적 없는가?
꼭 집에서 뒹굴거리는 내향인이 아니더라도
주변을 둘러보면
지하철에서도, 버스에서도, 길거리에서도, 식당에서도
다들 고개를 숙인 채 스마트폰을 열심히 보고 있다.
하긴 손가락만 움직여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니
스마트폰만 보면 되는데 더 필요한 게 있을까.
지난날의 기록은 물론
앞으로의 일정들도 적어두고
누군가와 연락을 하고
생각난 것을 찾아도 보고
영상이나 만화로 재미도 채운다.
내 일상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삶의 일부로 자리 잡아
내 인간관계를 매개하고,
관심사, 생각과 가치관이 담긴
사고 과정마저도 스마트폰을 거친다.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추억, 후회, 미래, 불안, 기대, 즐거움, 분노 등
모든 감정적 요소를 소환하여
내 하루 감정의 대부분을 지휘한다.
이쯤 되면 모든 개인정보뿐만이 아니라
개인의 마음마저도 스마트폰에 연동되어 있다.
따라서 어쩌면,
현대인들의 영혼은 스마트폰에 담겨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마치 내 영혼이 담겨 있는 물건같이 소중해
본인의 의식주만큼이나 스마트폰의 의식주도 챙긴다.
따뜻하고 보호되는 이쁜 케이스를 입혀주고,
굶기지 않고 배터리를 항상 풍족하게 유지해 주며,
주머니 속에 소중히 꼭 넣고 다닌다.
요즘은 자석을 활용한 무선 충전 거치대도 쓰던데
마치 아기를 침대에 눕혀 재우는 것 같이 보인다.
10년 전,
길거리를 가다 미끄러 넘어졌다가
괜찮다며 쿨하게 엉덩이를 훌훌 털며 일어나던 친구가
옆에 떨어진 스마트폰의 깨진 액정을 보고서는
갑자기 돌변하여 오열하는 것을 봤을 때
자기 엉덩이에 들 시퍼런 멍보다
스마트폰에 그어진 멍에 더 아파하는 게
참 남일 같지 않았다.
개인의 분신 그 이상의 취급을 받는 스마트폰에
나마저도 손을 뗄 수가 없어
손에서 떨어질 수 없는 것이라 핸드폰인가 싶기도 하고
어떨 땐 내 영혼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도 들어
정말 작고 하찮은 저항으로 고안해 본 언어유희가 있다.
스마트폰. 스마틉혼. 스마트혼 Smartphone
스마트폰에 피(p)를 모두 빨려
스마트 혼이 되면 안 된다고.
그렇게 우리의 삶에 중요하게 자리 잡은 스마트폰은
핸드폰, 전화기에서 유래되었기 때문에
그 본질은 소통을 위한 도구
즉, 외향형 도구이다.
그래서 우리는 스마트폰을 켜면
온갖 화려한 기교의 알림과 숫자가 등장해
타인의 세계로 유혹당한다.
내 몸은 분명 혼자 있지만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나를
내면에 머물지 못하게 자꾸 끄집어낸다.
그래서 나는 집에 있으면서도 혼자 아늑한 시간을 갖지 못하고 자꾸 다른 사람의 프로필과 일상을 염탐하는 내가 내향인이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나만 그런가 싶어
스마트폰으로 가장 많이 쓰는 어플을 검색해 보면
카카오톡, SNS, 유튜브, 네이버, 넷플릭스 순으로
모두 외부 세계, 즉 타인을 향한 창구이다.
따라서 집에서 스마트폰을 하는 내향인들은
내가 그러하듯,
꽤나 높은 확률로
내면세계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을 수 있다.
그 자극적인 유혹에 빠져
내향인인 척 몸은 집에 머물러 있지만
손에 쥐어진 스마트폰으로 외부세계를 탐닉하는
새로운 성격 유형으로 변질된 것이다.
내 관심이 나를 향하지 못하게
자꾸 내 관심을 내 내면이 아닌 밖으로 유도하는
스마트폰이 새삼 내 성격을 침공해 바꾼 것 같이 느껴졌다.
재미 삼아 알파벳을 정해보자면,
기존의 E, I, S, N, F, T, P, J과 겹치지 않아야 하고
스마트폰이기 전에는 핸드폰으로 불렀으니,
손 안의 세계에 관심 있는 성격유형으로
H(and)version
혹은 내향인인 듯 내향인 아닌 외향인 같은 이중적 의미로
H(ybrid)version 이 어떨까.
그렇다면 난 한참 동안 HNFP (핸프피?) 였을지도.
세심함과 배려심을 발휘하기 위해 남을 의식하는 내향인으로서 느끼는 스마트폰은 정말 치명적인 요물이다.
재밌고 궁금한 게 많아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느새 타인의 세계로 납치를 당하기 십상인데,
비교나 부러움, 열등감, 소외감, 모멸감, 수치심 같이
타인으로부터 비롯되기 쉬운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감정들을 구태여 조장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
본인의 용도에 맞게
스마트폰에 마음 혹은 영혼을 뺏기지 않고
도구로써만 잘 활용하면 좋겠다.
혹시 침공에 저항해 본 적이 있으시다면
스마트폰으로만 잘 활용하는 팁이 따로 있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