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과 부러움을 착각하지 말 것
도파민 중독의 시대.
내가 살면서 터득한 확실한 도파민 공급처는 노력이다.
무언가 이뤄낼 순간에 대한 기대감과
그걸 위해 어려운 노력을 쏟아붓는 몰입감에서 터득한
노력 중독.
나는 지독하게 목표 지향적인 사람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특유의 고집과 집요함으로 목표를 설정하면 쉽사리 포기하지 않고 매우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아마도 학창 시절에 원하는 건 노력을 하면 다 이룰 수 있었던 경험에서 빚어진 믿음이 자리 잡은 것 같다.
여기엔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는데,
노력과 성취에 대한 믿음이 어느새 ‘실패는 곧 노력의 부족’이라는 철장으로 변해 스스로 갇히게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노력을 안 할 수도, 대충 할 수도 없는 굴레에 빠져 노력 중독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하루하루는 그저 목표를 이루기 위한 제물이 되었다.
직접 개발한 노력중독 알고리즘을 몇 바퀴 돌리다 지쳐 쓰러진 요즘, 그 이유를 찾아보니 내가 노력의 대가로 탐닉했던 것은 도파민으로 포장된 부러움이었다.
사실상 부러움 중독이었던 것이다.
내가 세웠던 목표들은 보통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멋있다고 감동을 받은 것에서 동기부여를 받아 정해졌다.
아마도 주변의 칭찬을 받고 뿌듯해하며 자랑하는 모습에 마음이 동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나도 남들에게 인정받을 만한 거창한 목표를 세우게 되었고 스스로 꼬집고 버텨 어렵사리 쟁취해 내는 굴레가 만들어졌다.
대학 진학, 스펙 쌓기, 취직, 연애, 결혼, 자기 계발, 재테크
하나하나 미친 듯이 노력을 쏟으며 몇 년이 흐르는 동안
문득 내 노력중독 사이클에 균열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선, 학창 시절을 벗어나보니 노력만으로 안 되는 것이 정말 많았다.
또, 정말 어렵사리 쟁취해 낸 목표 뒤에는 보다 더 힘들게 노력해야 하는 목표가 항상 있어 내가 이룬 목표에 대한 만족감이 얼마 지속되지 못했다. 또다시 일어나 달려야 한다는 의무감에 좌절감도 느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나에게 이 모든 것의 궁극적인 보상이자 동기부여를 해줬던 주변의 칭찬과 인정이 어느새 사라졌다.
정확하게는 나에 대한 칭찬과 인정이라고 받아들였던 것이 알고 보니 부질없는 부러움뿐이었다는 사실이었다.
곰곰이 되짚어 보면 무언가 이루어냈을 때 나의 노고에 대한 이해와 인정이 담긴 칭찬보다는 그저 지나가는 식의 부러움의 표현들이 훨씬 많았다.
그럴 때마다 느껴진 공허함은 마치 헹가래를 받아 띄워졌다가 아무도 받아주지 않아 바닥에 곤두박질치는 것처럼 당혹스럽고 아팠다.
어렵사리 산전수전 다 이겨내서 고생한 나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칭찬과 그저 본인이 달성해보지 못한 업적에 대한 부러움은, 힘들게 결승점에 도착해 지친 내가 착각하기 너무나 쉬웠고 항상 정신을 차려보면 남는 것이 없었다.
이제라도 분간해 보자면, 결국 칭찬의 대상이 내가 아닌 것이 부러움이 아닐까.
칭찬은 사람을 향하고 부러움은 목표를 향한다.
부러움은 상대적으로 취급되는 감정이기 때문에 내가 달성한 목표에 따라 항상 바뀌었고 꼭 내가 아니어도 되었다.
어쩌면 내가 느낀 미묘한 이질감과 공허함은 거기서 비롯된 것 같다.
언제부터 부러움에 중독된 것일까.
원인과 경위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한참 어린 내가 느껴본 부러움은 굉장히 달고 짜릿했다.
마치 출처불명의 조미료가 가득한 불량 식품처럼.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나이가 들면서 음식 선택의 기준이 맛보다는 몸에 좋은지로 바뀌는 것과 같이 나 스스로 내 마음이 받아먹을 감정에 대한 선호도가 바뀌는 것 같다.
부러움을 받으려는 태도를 내려놓으니
거창한 목표를 세울 필요가 없어졌고
더 이상 오늘 하루는 희생 제물이 아니었다.
차분히 오늘의 나에게 집중을 할 수가 있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 내 삶의 단위는 오늘 하루다.
시선을 내 안에 두고 나의 오늘 할 일에 초점을 두어
오늘 하루 안에서 기대하고 노력하고 만족한다.
맞지 않는 헛스윙만 하는 타율 낮은 홈런타자의 삶에서
매일 안타든 볼넷이든 꾸준히라도 출루하는 출루왕처럼.
오늘 하루에 충실히 노력하고 만족하며 살아보고 있다.
중독되어 본 감정이 있으신가요?
당신의 삶의 단위는 얼마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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