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로 자존감 채워본 후기
문득 써보고 싶어진,
내가 직접 경험하고 있는 ‘책 읽기로 자존감 채우기’가
가능한 이유에 대하여.
1. 읽을 책을 찾는 것은 홀로 떠나는 여행과 같다.
책을 읽을까?라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집 근처 교보문고에 가서
익숙한 향기를 맡으며
주변을 둘러본다.
내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예쁜 표지와 화려한 미사여구들을 동원한 마케팅 전략.
그러나 나 또한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오히려 수많은 책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된다.
유심히 살펴보면,
과학 인문 경제 경영 자기 계발 에세이 소설 건강 종교
세상 모든 종류의 주제에 대해 수많은 책이 존재한다.
한 분야 안에서도 골라보려 하면
여러 매체에서 떠들썩한 최신 베스트셀러부터
이 시대의 교양이라며 유혹하는 고전 스테디셀러,
누군가 재밌다고 추천했던 책,
제목만으로도 구미가 당기는 처음 보는 책까지.
정말 백화점만큼이나 구경할 게 많다.
오히려, 옷이나 신발, 가방은 대보면 그만인데
책은 제목, 표지만으로는 그저 1차 서류 합격일 뿐
어마무시한 면접이 남아있다.
우선, 작가 소개를 포함한 프롤로그를 읽어봐 줘야 한다.
목차도 보며 내 흥미를 유발하는 구성인지 체크한다.
첫 2-30 페이지를 읽어보며 마음에 드는지 확인한다.
나의 경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책이 용두사미 형태로 지루해지지는 않을지,
100 쪽 정도로 훅 넘어가
여전히 문장의 긴장감과 흥미로움이 유지되는지
책의 텐션이 여전한지
(책의 익힘 정도가 이븐한지)
한 두 페이지 정도를 더 읽어본다.
그렇게 철저한 서류와 면접을 마치고 통과한 책들만
나에게 선택을 받는다.
이 과정이 여행과 매우 비슷하다.
나 스스로 나에 대하여
요즘 어떤 주제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문장에 감동을 받는지
어떤 분위기와 구성, 짜임새를 좋아하는지
책을 고르면서 나를 알게 된다.
2. 독서를 하면 타인의 존중을 받을 때가 있다.
어디서든 핸드폰을 하고 있으면 비교적 쉽게 말을 건다.
그런데 책을 읽고 있으면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종이를 쳐다보는 고3을 건드리면 안 된다는 경험 때문인지
웬만하면 함부로 방해하지 않으려고 한다.
정적을 유지하는 도서관이나 독서실에 다녀본 우리는
독서 자체가 실제로 엄청난 집중력을 요한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기에
보통 독서 중인 사람의 고결한 행위를
쉽게 깨트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범접할 수 없는 중후한 아우라를 풍기게 된다.
3. 책이 펼쳐지면 독자라는 왕관을 쓰게 된다.
그리고 실제로 책 읽기는 정보 주입이 아니라
문장과 문맥에 담긴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기 위해
굉장한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한 문장을 몇 번씩 다시 읽어야 할 때도 있고
앞부분에 잠깐 돌아갔다 와야 할 때도 있으며
때론 원하는 부분만 발췌하여 읽을 수도 있는데
독자에게는 그러한 행위에 전혀 제약이 없다.
나는 독자로서 행위의 모든 통제권을 부여받게 된다.
내가 잠깐 놓쳤다고 뒤로 돌려볼 수 없는
연극 혹은 영화관람이나
한 프레임에 수많은 디테일을 담고
자막에 음악까지
심지어는 이스터에그까지 숨겨두는
영상들처럼
내 감각 수용력과 정보 습득력의 한계를 느끼게 할 일은
결단코 없다.
내 손에 펼쳐진 책이라는
하나의 세계를 이해하는데 모든 권한이 부여된다.
4. 세계의 창조자가 되어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우리가 카페에 가서 원가 500원짜리 커피를
5000원에 주고 사 먹는 것은
그 공간을 누릴 수 있음에 대한 지불이다.
원가 몇 원짜리 종이에
잉크로 인쇄된 책을 사는 행위 또한 마찬가지다.
단, 책을 사면
책 부피만큼의 공간이 아니라
그 안에 적힌 작가의 세계관을 우리는 누릴 수 있다.
축구공 보다 작은
인간의 뇌를 우주에 비유하듯
작가의 우주에서 뿜어져 나와
300 쪽 내외로 적힌 글은
태양처럼 눈 부시게 밝고 뜨거울 수 있으며
블랙홀처럼 어둡고 차가우며 한없이 깊을 수도 있고
블루마블의 지구처럼 아름답고 영롱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세계를 내 마음대로 탐험할 기회가 주어진다.
공감이 되는 문장은 밑줄을 긋고
놀라운 생각에는 별표를 치며 공감하다가도
’이게 맞나?‘ 싶은 엉뚱한 문단 옆에는
내가 생각하는 이견을 소신발언하듯 적는다.
공들여 적히고 다듬어진 작가의 세계를 우리는 마음대로 누빌 자유를 얻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의 세계가 우리 손에 들어오는 것이다.
책에 적힌 문장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독자의 몫이기 때문에
작가가 창조한 글은
독자인 내가 읽음으로써 재창조된다.
5. 독서는 나를 능동적인 사람으로 만든다.
책을 읽다 보면 다른 책에 대한 언급이 등장할 때가 많다.
자연스레 나중에 읽어볼 책이 줄을 선다.
또 책을 읽다 보면 찾아볼게 생기고
무언가 메모하며 적을 일도 생긴다.
이처럼 무언가를 읽는 행위는 사람을 부지런하게 만든다.
책은 직접 펼치지 않으면 시작하지 않고
직접 한 글자, 단어, 문장, 문단을 읽고
그 의미를 해석하여 이어주지 않으면 진행되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이,
문장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독자이기 때문에
글은 작가가 쓸 때 태어나며
독자인 내가 읽음으로써 완성된다.
책을 읽고 있는 나는 어느새 능동적인 사람이 되어있다.
6. 차별 없는 가성비
보통 200쪽 내외의 분량을 갖는 책들이
대개 만원을 웃도는 밥 한 끼의 가격이다.
영화표 가격과도 비슷한데,
책은 절대 2시간 안에 단번에 끝나지 않는다.
나의 경우엔 한 책을 하루에 10장 정도씩 야금야금 읽는데
그러면 한 권당 2주 정도가 걸린다.
밥 한 끼 가격이면 2주 치의 행복을 사는 것이다.
심지어 도서관을 이용한다면 무료일 수도 있다.
그리고 정말 좋은 책을 만나면
두고두고 읽을 때마다
그 의미가 새롭고 깊어질 때가 있다.
특히 고전은 10년마다 읽어보면
그때마다 감동받는 문장과
그 이유가 매번 달라진다.
괜히 수백 년을 사랑받으며 전해지는
고전이 존재하는 게 아니다.
이렇게도 착한 책의 가격은
전 세계에 몇 권 밖에 없는 한정판 출고나
명품 브랜드를 입혀
뻥튀기되지 않는다.
소비자를 절대 차별하지 않는다.
밥 한 끼의 가격으로 한평생을 풍요롭게 해 줄 수 있다.
7. 책은 답을 알고 있다.
앞 서 언급한 독서라는 행위로써의 좋은 점과 더불어
책은 온갖 주제에 대해 먼저 고민해 본
수많은 사람들이 녹여낸 지혜가 담겨 있어
나에게 필요한 공감과 위로,
이해와 대안을 마련해 주는 책이 어떻게든 존재한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꼭 알맞은 책은 항상 있다.
독서는
나로 구성되며,
나에 의한,
나를 위한 활동이다.
물론 내용 그 자체로 자존감을 채워주기 위해 적힌 책들을 읽으면 더욱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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