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스스로 감을 수 있다.
지하철에서 가만히 둘러보면
사람들 귀에 하얀 게 무언가 하나씩 꼭 박혀있다.
10년 전만 해도 저렇게 생긴 건 보청기만 있었던 것 같은데
무선 이어폰이다.
이 둘은 쓰임이 완전히 정반대다.
하나는 더 잘 듣기 위해 끼고
다른 하나는 차단하기 위해 낀다.
요즘 노이즈캔슬링 기술은 귀가 먹먹할 정도로 대단하다.
노이즈캔슬링 무선 이어폰이 탄생한 이유는
청각은 스스로 막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눈은 스스로 감을 수 있으니까.
가만 보면,
코로나 때 우리는 코와 입을 가리기 위해 마스크를 꼈고, 추운 겨울날 손이 시리지 않게 장갑을 낀다.
눈을 제외한 귀, 코, 손에는 무언가를 껴서 막는 게 익숙한 세상이다.
시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들은 무언가로 막아줘야만 한다.
눈은 그저 감으면 된다.
눈은 감고 싶을 때 감을 수 있다는 것.
나는 이것이 문득 보고 싶은 것만 볼 권리로 느껴졌다.
예전에 한 동아리 선배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세상을 반쯤 흐린 눈으로 보면 더 행복할 수 있어.”
이 또한 행복의 비결이 아닐까.
부러움, 질투, 시기, 열등감, 패배감, 소외감
온갖 힘든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은
내 경험상 시각으로 더 많이 전달된다.
메신저, SNS, 인터넷 게시판, 유튜브 등.
‘아 괜히 봤다.. 보지 말 걸’ 싶은 생각이 종종 드는 건
눈에 띄기 위해 우리를 현란하게 유혹하는 매체들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에겐 보고 싶은 것만 볼 용기가 필요할 지도 모른다.
일상에서 숨은 행복 찾기 만큼 중요한 건
어쩌면 불행 보지 않기 아닐까.
*혹시 1호선을 타본다면 시각을 차단하기 위해 안대를 낀 사람도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