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면서 많이 걷고 돌아다니다 보니 나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패턴이 점점 익숙해진다.
이른 아침 일어나 팅팅 부은 채로 부지런히 준비하고 말라가 구시가지 중심으로 나가보았다.
사람이 많은 듯 한산한 듯한 광장과 거리.
* 걸으면 걸을수록 좋았던 말라가의 구시가지
스페인에 왔으면 츄러스를 꼭 먹어야지!
예히가 찾은 말라가 전통 츄러스 맛집 <CASA ARANDA>에서 츄러스와 초콜릿라떼, 커피와 주스를 시켰다.
블로그를 보니 웨이팅이 있다고 했는데 우리가 갔을 땐 다행히 한 자리 남아있어서 안쪽에 자리를 잡고 주문한 음식을 기다렸다.
* 신*더티프리와 함께한 츄러스 맛집 탐방
보기만 해도 맛있다.
초콜릿 라떼에 푹 찍어 한 입 먹었던 그 맛을 잊지 못해,,
커피는 산미가 강해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대만족스러웠다.
말라가에 다시 가고 싶은 이유 중 하나.
기분 좋게 츄러스 가게를 나와 앞을 보니 건물들 사이로 푸른 하늘이 사이에 비춰서 더 예술이었다.
* 맑은 날씨가 가득했던 말라가 여행
20여분을 걸어 피카소 동상이 있는 메르세드 광장에 도착했다.
파블로 피카소가 태어나 10살까지 살았던 도시, 말라가. 우리가 머물고 있는 숙소에서도 몇 분 남짓한 거리에 피카소 생가 박물관과 미술관이 있다. 하지만 짧은 말라가 일정과 파리에서 미술관을 갈 예정이기에 그 무엇보다 아쉬움을 간직한 채 다음을 기약했다.
곳곳에서 피카소의 흔적을 발견했던 장면들을 떠올리니 문득 <매거진 환경>에서 우연히 봤던 글이 떠오른다.
"우울한 파리에 있으면 말라가의 태양이 그립다. 그 태양은 언제나 내 그림 속에 녹아 있는데, 사람들은 내 그림에서 파리나 바르셀로나나 마드리드만을 본다."
여행을 하면서 느끼기에도 말라가의 햇볕은 우리의 살색을 금방 바꿀 만큼 강했지만 따스했기에 피카소의 말이 마음에 계속 닿는다.
* 순서를 기다린 끝에 순간의 기억을 얻었다.
마음의 풍족함을 얻은 오전을 마무리하며 대망의 왕의 오솔길(Caminito del Rey)을 위한 여정을 나섰다.
이번 스페인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왕의 오솔길 가는 날을 기다렸다.
스페인에서 할 수 있는 액티비티가 있을까 싶어 블로그를 찾아보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고, 보면 볼수록 '아 여긴 꼭 가고 싶다.'라는 마음이 굵직해졌다. 그렇게 무작정 가보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두 발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무서워하는 겁쟁이와 산행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사람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 메트로 타고 렌트샵 가는 길
왕의 오솔길에 가는 방법은 보통 기차를 많이 이용하는데, 우리는 오늘의 낭만과 다음날 일정을 고려해서 렌트를 하기로 결정했다. 스페인에서 언제 또 운전해 보겠어~!
운전면허증과 다*소에서 구매한 차량거치대도 야무지게 챙겨서 말라가 공항 근처에 있는 Wiber렌터카에 도착했다. 사실 낯선 땅에서 낯선 표지판을 보며 운전할 생각에 전 날부터 긴장되었는데 차를 인수받으니 더 긴장되었다. 그렇게 처음 운전대를 잡았던 그때의 초심을 다잡으며 두 발을 브레이크에서 떼어냈다.
* 꼼꼼하게 확인하고 사진 찍기
쭉 펼쳐진 아스팔트 도로를 달리던 와중에 갑자기 굽이진 비탈길이 나와 당황스러웠지만 풍경만큼은 좋았다.충주의 어느 한 산 길에서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핸들을 돌리며 올라갔던 정상의 전경이 오버랩되기도 했다. 그때에도 지금도 예상치 못한 길에서 마주한 당황스러움 뒤에는 감동이 따라왔다.
* 지브리와 함께 왕의 오솔길로~
예약한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사진도 찍고 여유도 부리다가 이 즈음이면 들여보내주겠지 하고 걸음을 나섰다. 그런데 웬일인지 주차장에서 버스정류장까지 올라가는 길이 보이지 않았고,, 우리는 누군가가 개척한 듯한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시작도 하기 전에 숨을 헥헥 고르고 "이게 맞아?"를 거듭 이야기하며 올라갔던 우리의 모습이 아직도 웃기다. 그리고 그 길이 제대로 된 길이 맞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 다시봐도 이게 맞아?
셔틀버스를 타고 드디어 Caminito del Rey라고 적힌 표지판이 보였다. 동굴 입구를 지나 몇 여분을 더 걸어가니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늦게 예매한 탓에 가이드가 포함되어 있는 입장권을 예약했는데, 영어 가이드라 어차피 알아듣지도 못하고 우리만의 스타일대로 여행하는 편이 훨씬 좋아서 안내하는 분의 도움을 받아 헬멧을 받고 그냥 입장했다. 머리에 무슨 흰색 망을 썼는데 본의 아니게 웃겨서 또 둘이 엄청 웃었다.
* 입구부터 동굴이라 설렘이 잔뜩
왕의 오솔길은 스페인 국왕이었던 알폰소 13세가 수력발전소 완공을 축하하기 위해 이 길을 지나가서 붙은 명칭이다. 애초에 작업용 통로로 쓰였기에 원래는 더 위험하기도 했고 2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해서 안달루시아 지방정부에서 예산을 모아 재정비를 한 뒤 2015년에 재개방되었다고 한다.
트래킹을 하는 내내 '감탄이 절로 나오는' 그 자체였다. 우리를 감싸는 절벽과 폭포의 소리는 그 무엇보다 웅장하고 경이로웠다. 같은 풍경을 보는데도 가는 길마다 눈앞에 새로운 광경이 펼쳐졌다. 중간에 벤치를 발견해서 드러눕기도 하고 눈과 귀를 트이며 순간을 온전히 즐겨보기도 했다. 무엇보다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서로를 의지하며 함께했던 트래킹이기에 더욱 소중했다.
* 왕의 오솔길.jpg
간혹 무서운 구간들을 지나기도 하고 곳곳에 옛 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재정비가 되어 이곳을 경험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 너무 무서운데.. 사진은 찍고 싶구..
기대했는데 그 기대보다 좋았다.
일정을 무리해서라도 꼭 오고 싶었는데 오길 잘했다.
또 가고 싶은 마음 한편으로는 이 시간들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기에 그저 이대로 두고 싶기도 하다.
강렬했던 햇빛과 더위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지쳐가던 찰나, 쉼터가 보였다.
레몬슬러시 시원하게 한 컵 들이키며 더위를 식히는데 신기하게도 아팠던 목 통증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 보약보다 더 효능있었던 레몬 슬러시
그렇게 우리는 약 4시간의 왕의 오솔길 트래킹을 마무리하고 다시 말라가로 돌아갔다.
새벽에 눈이 일찍 떠진 덕분에 해가 뜨기 전의 말라가의 모습을 보여 기상했다. 전 날의 츄러스가 생각나 간단한 세면 후 옷만 갈아입은 채 서둘러 밖을 나섰다.
* 말라가의 아침 7시 그 즈음
푸르스름해진 거리에는 여전히 밤의 조명이 남아있었고 곳곳에 청소를 하는 환경미화원들과 가게 영업을 준비하는 상인들이 있었다. 아침의 시작이었다.
* 한적하지만 잠들지 않는 도시
어제 거리를 돌며 유독 사람이 붐비던 빵집을 눈여겨보았는데, 다행히 아침에는 한적해서 여유롭게 빵을 고를 수 있었다. 빵들이 담긴 종이봉투를 손에 들고 <CASA ARANDA>에 도착했다.
* 알고보니 체인점이었던
부지런히 나왔더니 나름의 명당자리였던 야외테이블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전 날과 같이 츄러스 2개와 초콜릿라떼를 주문하고 음료는 오렌지주스로 변경했다. 그리고 이 날을 기점으로 스페인은 무조건 오렌지주스(=쥬모 나랑가)임을 명료하게 깨달았다.
* 빈 접시가 말해주는 맛
츄러스를 음미하며 감탄을 자아내고 있는 와중에 대형견과 반려인이 우리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불편하지 않냐고 물어보며 첫 말을 건넨 덕분에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긴 휴가를 즐기는 미국인아저씨와 잭(강아지 이름)의 소개부터 말라가의 아름다움과 한국의 엄청난 발전(feat. 삼성=샘성)에 대해서도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현저히 부족한 영어실력을 가진 나였지만 여행지에 와서 다른 여행자, 또는 현지인과 대화를 나눈다는 건 언제나 설렘으로 다가온다. 여전히도 많은 언어를 알아가고 싶고 배우고 싶다.
* 안녕 잭!
다시 숙소로 돌아와서 개인정비를 하고 짐을 챙겨 공항으로 길을 나섰다. 가는 길에 주유소에 들러 떨리는 마음으로 기름까지 채우고 렌터카 반납도 완벽하게 마쳤다.
* 안녕 말라가
공항에서 도착해서 이미 많은 인파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시스템 처리로 예견했던 바르셀로나행 비행기가 지연되었다. 탑승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와중에 어떤 분이 후다닥 뛰어가고 안내방송이 나오길래 우리 뭐 잘못된 건가 하면서 큰 혼란이 있었으나 다행히도 친절한 현지인들이 도와준 덕분에 안도하며 다 같이 허허허 하며 웃었던 소소한 해프닝도 잊을 수 없다.
* 장작 3시간 남짓을 기다려서 겨우 탑승했다.
고리페사막으로 추정되는 하늘 위의 풍경. 마지막 날까지 모든 게 좋았던 말라가였다.
* 다음엔 여기다!
우리에게 말라가는 친절한 사람들과 여유가 넘치는 도시이자, 자연스레 하늘의 푸르름과 태양의 주황빛을 떠올릴 수 있다. 이번 여행 중 우리와 잘 맞기도, 그래서 가장 좋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만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해 아쉬움이 크게 남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