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동물농장
복서는 슬픔에 젖은 목소리로 “죽었어.” 하며 말하였다.
“이렇게 죽일 생각은 없었는데 내 발굽에 징이 박혀 있다는 걸 깜박 잊고 있었어.
고의로 죽이지 않았어. 정말이야······.” (P.64)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였고, 아무도 자신의 속에 있는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하지 못했다.
개들이 사납게 겁을 주려고 으르렁대며 농장을 휩쓸고 다니며
충격적인 죄를 뒤집어 씌워 자백하게 만든 다음
눈앞에서 처참하게 찢겨 죽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그런 시대가 온 것이었다.
클로버는 왜 이런 시대가 온 것인지 좀처럼 잘 알 수가 없었다. (P.125-126)
나폴레옹은 계속해서 말을 이으며,
필킹턴의 연설은 훌륭하고 우정이 담겼지만 그중에서 단 하나 비판을 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고 했다.
필킹턴 씨는 연설 중 계속해서 우리를 ‘동물농장’이라고 불렀지만
그것은 나폴레옹 자신이 동물농장의 이름을 바꾼 것에 대해 잘 모르고 한 말일 것이며
이제 ‘동물농장’이라는 이름은 폐지되었다고 말했다. 앞으로 이 농장은 ‘메이너 농장’이라고 부를 것이다.
메이너 농장이라는 이름이 원래 이 농장의 올바른 이름이고
다시금 우리가 그것을 되찾은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P.192-193)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양면성을 지닌 책이라고 생각한다. 독서에 흥미를 붙이거나 취미를 더하려는 사람들에게 가장 쉽게 추천할 수 있을 만큼 유명하고, 서술 방식이 장황하거나 내용이 그다지 어렵지도 않다. 인물의 심리를 묘사하는 독백 장면도 거의 등장하지 않고, 분량 자체도 장편 소설 치고는 짧은 편이기에 책을 완독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이들에게는 아직까지도 이 책보다 나은 책을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동시에 누군가와 이 책의 내용에 대해 본격적으로 나누려고 하면 어떤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나눠야 할지에 대해 적잖이 고민하곤 한다. 고민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이 책이 다분히 정치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고, 나아가 그 정치 상황을 우화를 통해 풍자하고 있는 책이기 때문인 것 같다.
책에 대한 나눔이 길어지고, 깊어지면 자연스럽게 책에서 나온 특정한 주제들을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상황에 빗대어 진단하는 쪽으로 대화의 물길이 트인다. 그 과정에서 나눔에 참여하는 각각의 개인들의 경험과 생각이나 고민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곤 한다. 자연스럽게 자신을 적절히 드러내는 과정에 하나둘씩 참여하게 되면, 나눔 자체도 더욱 깊어지게 되고, 함께한 이들과도 더욱 돈독해지는 기분 좋은 순간들을 적잖게 경험했었다.
하지만 '정치'는 그 자체로 민감한 주제이기 섣불리 무어라 말을 꺼내기 어렵게 만든다. 설령 누군가 용기를 내어 최대한 중립적이고 논리적으로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견해를 밝힌다 한들, 이미 정치 혹은 정치적 현안에 대해서는 각자가 나름의 확고한 정치적 기준과 그로 인한 태도들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이를 지키려고 하기 때문에, 그 나눔의 시도는 그저 불편한 분위기 속에서 한 개인의 '정치적 성향 고백하기'로 끝나버릴 때가 많다.
더불어 <동물농장>은 정치적인 사실을 역사적 맥락에서 나열한 책이 아니라 정치적 상황을 '풍자'한 우화이기 때문에, 자신이 지지하지 않거나 적대하는 정권에 대해 그럴듯하게 비판하거나 일침을 날리려는 욕심을 다소 주체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나조차도 그런 욕심에서 항상 자유롭지는 못한 것 같다.
그럼에도 특이사항이 없다면 현재까지 운영했던 독서모임의 첫 번째 책으로 <동물농장>을 선정했던 나름의 이유들을 댈 수 있을 것 같다. 뻔하디 뻔한 첫 번째 이유로는, 정치적인 내용 외에도 이 책을 통해 나눌 수 있는 또다른 갈래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은밀하고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동물농장>을 두고 독서모임 구성원들이 어떤 이야기를, 어떤 논리로 그리고 어떤 어조로 말하느냐를 지켜보는 과정이 향후 독서모임 안에서 선정할 책들의 방향성을 잡기에 제법 유용했기 때문이다.
'정치'와 '풍자'라는 민감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순적인 조화 속에서 적지 않은 이들이 비교적 쉽게 자신을 드러내곤 한다. 아마도 풍자라는 기법이 주는 특유의 우스움이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제법 영향을 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어쨌거나 그렇게 <동물농장>이라는 책을 두고 나누는 첫 모임은 구성원들 각각에 대해 제법 중요한 정보를 취득할 수 있게 해준다.
그 정보들을 토대로 '모임 구성원 중 누구를 더 신경써야 하는가?'라는 제법 따스한 계획이 세워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모임 구성원 중 누구를 예의주시해야 하는가?' 보다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누가 위험대상 혹은 그에 준하는 이인가?'에 대한 판단이 이루어지고, 그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은밀한 방어기제가 작동하게 되기도 한다.
모순적이게도 그 두 과정은 대부분 동시에 진행되곤 한다. 누군가를 더 신경쓰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 동시에 다른 누군가를 억제하거나 제재하기 위한 대책이 마련되는 모순. 그 모습이 자신들이 세운 '동물농장'을 결국엔 다시금 '메이너 농장'이라고 명명하는 나폴레옹의 모순적인 발언과 제법 닮아 있는 것 같아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렇기에 어쩌면 <동물농장>을 '안팎으로 모순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라고 부르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