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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지기 Feb 07. 2022

자드락길을 오를 때에는

                                           (무등산 장불재에서 규봉암 가는 자드락 길)


빛바랜 햇살이 숲을 덮고 있다. 머지않아 말간 소슬바람이 불어오면 숲은 고요 속에서 존재를 비워내며 봄을 기다릴 것이다. 이런 날, 넘치는 소유와 움켜쥔 모든 것을 차분히 정리하며 토라진 감정들을 툴툴 털어내어 지순한 마음이 되고 싶어지는 것은 비단 나만이 가지는 생각일까.

마른바람에 그리움이 쑤셔오면 산으로 가야 할 것 같다. 그 무엇으로도 달랠 수 없는 앙금이 목을 타고 넘어오면 산으로 가야 할 것 같다. 사는 것이 힘겨울 때 소스라진 산으로 가자, 가서 유선乳腺을 타고 흐르는 비릿한 약수 한 모금으로 갈증을 풀어내고, 내 어머니의 자궁으로 들어가는 탯줄 같은 길을 걸으며 깊은 사유에 묻히고 싶다.


자드락길을 오를 때에는 적게 소유한 자가 더 많은 행복을 누린다는 진리를 곱씹으며 올라와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치열한 삶 속에 피폐해진 마음이 조금이라도 치유되지 않을까. 혹여, 누군가에게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이 있다면 너럭바위에 앉아 때 묻지 않는 하늘 한번 쳐다보며 긴 숨으로 풀어내면 어떨까.

거친 삶을 살아오면서 굽어지고 휘어지고 어그러진 것들을 붙들고 있다면 곰삭은 바위에 걸쳐 앉아 남모르게 눈물 한번 훔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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