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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e Oct 15. 2015

모아놓은 편지

잘 지내니?

군 시절, 훈련소부터 1년 넘게 모아놓은 편지가 양이 꽤 돼 휴가 때 집으로 가지고 왔다.

요즘은 1년이면 크게 변하는 것도 없는데, 당시엔 완전히 변한 1년 전을 회상하며 침대에 앉아 편지를 하나하나 다시 읽다 보니 피식피식 웃음이 나는 게 기분이 참 좋더라.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라는 문구로 시작해 5장을 빼곡히 적어 보내온 아버지의 편지부터, 마음이 느껴지는 어머니와 누나의 편지, 입대하고 제일 먼저 받았던 친한 형의 편지, 지금 보면 민망할 정도로 서로 '보고 싶다' 뜨겁게 안부를 물은 죽마고우들의 편지 등 정말 여기저기서 애틋하게 보내온 편지들을 읽다 보니, '군대 아니었으면 이런 편지를 받을 수나 있었겠나?' 싶은 게 '군대 가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릴 때부터 편지 주고받는 걸 좋아하기도 했고, 지난 사진이나 편지를 문득 꺼내보는 시간을 좋아해 초등학생 때 친구들이랑 주고받은 크리스마스카드부터, 고등학생 때 좋아하는 이성친구와 주고받았던 편지까지 전부 신발 박스에 담아 침대 밑에 보관하고 있었는데, 군대에서 가져온 편지까지 합치니 공간이 부족해 신발 박스가 두 개나 들어가는 큰 종이봉투에 일단 담아놓았다.

정말 지금 읽어도 옛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 게 좋은데 나이 들어 읽으면 얼마나 좋을지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 묵직한 봉투를 몇 번이고 들었다 놨다. 다음 휴가 땐 정말 튼튼하고 예쁜 상자를 준비해서 잘 보관해야겠다는 생각에 부대로 복귀하는 길이 설레기만 했던 휴가였다.











잘 가라 내 추억아

다음날, 버리는 종이를 모아놓은 걸로 착각하신 아버지는 친절하게도 정확히 폐지류로.

지금은 어디에서 재활용 화장지가 되어 누구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을까.
내 편지들아 잘 지내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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