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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salty Salt Jul 05. 2024

어쩌다 결말도 완벽한 명작

'하우스'를 보고 나서...

예전부터 미국드라마를 참 많이 봤다. '프렌즈'부터 시작해 '빅뱅 이론' '그레이 아나토미' 등등 의과대학 다닐 때에도 간혹 밤을 새울 정도로 빠져서 봤었다. 반면, 한국드라마는 본 것이 손에 꼽는다. 진짜 중, 고등학교 시절에 유명했던 드라마들도 하나도 보지 못하여 당시 시절 회상하는 분위기 속에는 잘 끼지 못한다. 거의 제대로 본 유일한 드라마가 바로 '눈물의 여왕'인데 그것도 아내가 즐겨봐서 옆에서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면서 곁눈질로 봤다. 또, 나는 한번 본 것은 다시 본 적이 드물다. 게임도 거의 똑같은 것을 다시 하지 않는다. 같은 시간이면 다른 경험을 하는 것이 조금 더 효율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근데 반복해서 보는 것들이 바로 미국드라마들이다. 이유를 굳이 꼽자면, 새로운 시즌이 나오면 그전 내용을 환기시키고자 다시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OTT가 정착하기 전에는 사실 미국드라마는 시즌들이 올라왔다 없어지고 그래서 한 번에 쭉 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OTT가 정착되자 비교적 안정적으로 볼 수 있게 되어 다시 전에 봤던 것들을 한 번에 몰아서 쭉 보고 있다.


'하우스'는 의학도가 보기엔 적합한 드라마는 절대 아니다. 애초에 설정이 수많은 다른 의사들, 혹은 응급실에서 많은 검사들을 하고 진단이 되지 않거나 원인을 몰라 의뢰되는 환자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환자의 말을 믿지 않아 의사들이 직접 집을 무단 침입하여 조사하고, 직장에 가서 주변 사람들이나 환경을 조사하는 경우도 불가능하다. 심지어 검사결과도 믿지 않아 위험한 술기 혹은 실험적 치료를 통해 감별진단하는 경우들도 많다. 실제로 하우스 밑에서 수련받은 한 의사는 다른 곳에서 비슷하게 하다가 해고당하는 것으로 보아 마치 시청자들에게 '따라 하지 마시오' 표시를 주는 듯했다. 이는 의사 경력에 치명적으로 작용하여 다시 하우스 밑에서 일하게 된다. 이러한 뒤틀린 집착은 환자가 아닌 질병의 퍼즐에 대한 것이지만 결국 환자를 살리기에 주변 사람들은 초반에는 이해하면서 넘어간다.


중간중간 엄청난 통찰력으로 환자들이나 주변 인물에 대해 꿰뚤어보는 경우들은 설록 홈즈와 매우 비슷하게 나온다. 신발의 종류, 티셔츠에 묻은 음식, 반지의 흔적이 남은 4번째 손가락 등등으로 환자에 대해 파악한다. 나중에 조사하면서 알았는데, 하우스라는 이름은 설록 홈즈에서 집(HOMEs)에서 언어유희적 변형으로 집(House)으로 바꾼 것이라고 하며, 절친 윌슨도 홈즈 시리즈의 왓슨에서 가져왔다고 했다.


성격도 주변 인물에 대한 배려나 이해가 부족하고, (수술 후유증으로 인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마약성 진통제에 쩌들어 산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환자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약도 끊어보려고 하고, 정신과 상담도 받고, 연애도 하고 한다.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 그리고 되돌아가는 모습을 보이다가 결국 하우스 다운 결말을 선택하면서 드라마는 결국 시즌8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뭔가 끝이 찝찝하거나 급하게 마무리되는 느낌이 아니라 진짜 박수받으면서 끝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결말이었다.


의학드라마, 특히 이런 진단적 드라마는 구성이 뻔할 수밖에 없다. 환자가 온다. 진단을 잘 못한다. 환자가 죽어간다. 극적으로 진단한다 혹은 결국 환자는 죽는다. 그런 뻔한 반복 속에서 하우스라는 인물의 개인적인 성장을 같이 보여주기에 몇 번씩 봐도 흥미진진하게 봤던 것 같다. 몇 년 뒤에 또 한 번 보면서 또 하우스라는 인물의 성장을 함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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