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Unsalty Salt Aug 23. 2024

한 사람의 고민과 함께 지내다.

'포도호텔'에 다녀와서...

휴가 일정에 비가 예보되어 있어 어떻게 하면 휴가를 알차게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포도호텔에서 1박을 하면서 휴양을 하기로 결정했다. 호텔 자체가 하나의 건축물이고, 온천이 유명한 곳이기 때문에 이곳으로 결정하였다.


매일 오후 5시에 건축예술가이드가 있어 호텔을 돌아다니면서 2001년의 이 호텔을 건축한 이타미 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이 호텔을 대표작으로 2005년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슈발리에를 수상하였다.  이타미 준(유동룡) 건축가는 일제강점기 도쿄에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국 국적을 유지했다. 그러나 자신의 성씨인 ‘유(庾)’가 일본 활자에 없어 어쩔 수 없이 일본식 이름을 만들어야 했고, ‘이타미’는 한국을 오가기 위해 자주 갔던 '오사카 이타미 공항'에서, ‘준’은 절친했던 대중음악 작곡가 길옥윤의 이름 마지막 자 ‘윤(潤)’의 일본식 발음에서 가져와 '이타미 준'을 만들게 된다. 이렇게 알려진 활동명과 다르게 그는 죽을 때까지 한국 국적을 유지하였다고 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일본인 취급을, 일본 사회에서는 한국인 취급을 받던 그는 계속해서 정체성에 대한 실체적인 고민을 하면서 그러한 고민들을 건축물에 녹여냈다.

포도호텔은 위에서 보면 포도모양을 닮아 그렇게 이름이 지어졌다. 하나의 마을을 모티브 삼아 제주의 전통 초가로 표현되는 객실을 포도알처럼, 대로에서 집을 연결하는 골목을 의미하는 '올레'는 포도가지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호텔의 건축을 관통하는 콘셉트는 바로 ‘열림과 닫힘’이다. 그 시작은 바로 모든 사람이 이 호텔을 처음 만나는 출입구부터 시작된다. 현관문 바로 앞에 있는 기둥에는 작은 틈이 있다. 그래서 호텔 쪽에 서서 밖을 보게 되면 닫혀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반대쪽에 서서 호텔을 보게 되면, 복도 끝까지 모두 보이게 되는 효과를 가지게 된다.(비록 자동문 때문에 실제로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호텔에 들어오게 되면 복도는 점점 좁아지고, 천장은 점점 높아지는 복도가 나온다. 이러한 설계가 바로 ‘열림과 닫힘’의 표현이다.

조금 더 깊숙하게 들어오게 되면 넓은 공간이 나온다. 바닥에 철평석을 배치하여 소리는 울리고, 자연광이 실내에 흩어지게 하는 동굴과 같은 효과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공간 한가운데 원통형 모양의 야외 케스케이드가 있다. 실내이지만, 야외의 날씨를 온전하게 느낄 수 있는 구조물로, 흐르는 물이 다시 실내에 들어왔다가 다른 창문 쪽인 야외로 흘러나가는 듯한 느낌을 주면서 자연 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가장 깊숙하게 실내정원도 하나 더 있다. 그러나 위쪽을 창호지가 창살의 안면에 발려있는 한국식으로, 그 아래쪽은 창호지가 바깥면에 발려있는 일본식으로 창호가 시야를 가로막고 있다. 이는 한국, 일본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선생님의 삶이 그대로 표현된 장소라고 하며 결국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의자에 앉아야지 중정이 보이게 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중간중간 벽 또한, 무명에 덜 익은 감으로 염색한 제주 전통 직물인 '갈'을 배치하여 놓았다.


건축물 외에도 여러 그림들이 걸려있었다. 가장 먼저는 로비에 큼직만 하게 이왈종 화백이 그린 이육사 시인의 청포도의 글귀와 시화가 걸려있다. 넓은 동굴 같은 공간에도 원통형 빛기둥과, 우측은​ 햇빛에 빛나는 철평석 바닥의 모습을 그린 역시 이왈종 화백의 거대한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가장 깊숙이엔 베르나르 뷔페의 작품이 걸려있었다. 이 호텔 전체가 하나의 갤러리와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잠만 자더라도 아는 곳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