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올 때마다, 종종 들리는 곳이 있다. 바로 '빛의 벙커'이다. 예전에 국가기관 통신시설로 사용되어 오랜 시간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비밀 벙커를 외부와 단절되어 있었다는 성질을 이용하여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관으로 변신하였다고 한다.
여러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적절한 음악과 함께 360도 어디에 둘러봐도 보이는, 마치 미술 작품 속에 흠뻑 빠지는 듯한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전시는 주기적으로 바꾸고 있다. 현재 하고 있는 전시는 '샤갈, 파리에서 뉴욕까지 (CHAGALL, PARIS - NEW YORK)이며 2024.03.22부터 2025.02.21까지 진행된다. 마르크 샤갈은 많이 들어봤지만, 딱 떠오르는 유명한 작품은 없다. 말과 사람이 크게 그려져 있는 '나와 마을' 정도 떠올리면서 전시장으로 들어갔다. 러시아의 비쳅스크 근교에서 유대계 집안에서 태어나, 20대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그림을 공부하면서 자연주의적 초상화와 풍경화를 그렸다.
그 후, 파리에서 피카소와 입체파의 영향을 받았고 뉴욕으로 망명하면서 그의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게 된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의 대형벽화를 그렸고, 이러한 흐름대로 전시도 진행되었다. 총 길이는 37분이다.
빛의 벙커는 하나의 전시만 진행되지 않는다. 긴 전시가 있는 반면, 12분가량의 짧은 전시도 있다. 이번 회차의 전시는 '이왈종, 중도의 섬 제주 (Lee WalChong, The Island of Golden Mean Jeju)'였다. 포도호텔에서 그의 작품들을 봐서 그런지 매우 그의 그림체가 익숙하였다. 또한, 전원적인 분위기 속에 골프채나 스포츠카가 그려져 있는 등 그림의 사소한 디테일들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전시 막바지에 나오는 '그럴 수 있다. 그것이 인생이다.'라는 문구는 또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는다.
비가 오거나 날씨가 무더운 날엔 외부의 상황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이곳에 와서 오감을 다 눈앞에 있는 미술 작품에 온전하게 집중할 수 있다. 그래서 더욱 제주도 올 때마다 한 번씩 오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또, 계속 프랑스 화가들 전시만 있었는데, 제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왈종 작가의 전시를 하는 것도 의미가 있었다. 서울에도 '빛의 시이터'가 생겼다고 해서 한번 가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