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바꾸는 것은 모두 막막한 순간에 찾아오는 법일까요, 아니면 막막한 순간에 찾아온 사건은 무엇이 됐든 인생을 바꾸는 것일까요.
8년 전의 일입니다. 그토록 원했던 직업을 갖게 되었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회사에 입사하였습니다. 좋은 일이지요. 아마 이십대의 나는 그 ‘좋은 일’이 나의 끝일 거라 생각했었나 봅니다. 그 이후는 생각하지도 않은 채 미친 듯 달려왔거든요. 그러나 모든 직장인이 경험했듯 내가 도착한 곳은 끝이 아닌 시작점이었습니다. 처음 3년은 이곳이 어디인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회사에 적응하고 사회생활이란 걸 해보고 돈을 벌고, 쓰고, 업무 특성상 많은 야근과 주말 출근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거든요.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살고 있단 공허함이 드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일상은 매일 다르지만 결국 같았고, 선망하던 것들은 현실로 내려왔으며 그 모든 시간 속에서 나란 사람이 누군지는 희미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무언가 되고 싶은 꿈을 꾸고 어디엔가 가고 싶은 꿈을 꿉니다. 그리고 막상 그런 사람이 되고 그런 장소에 도착했을 때 그제야 깨닫는 것 같아요. ‘내 꿈의방향과 성질이 어딘가 잘못되어 있었구나…’
그렇게 삶의 방향을 상실한 채 그럭저럭 살아갈 때, 나는 파도를 타기로 했습니다.
고백하자면 입사 당시의 난 광고계에 뭔가를 남기고 싶었습니다. 일에서 존재가치를 찾고 싶었죠. 흔히들 말하는 성공을 거두고 싶었어요.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아침 햇살에 충만함을 느끼는 삶, 춤을 추고 싶을 땐 춤을 추고 바람을 맞으며 언제든 바다로 뛰어들 수 있는 삶, 게으름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사소한 하루에 대한 느낌을 이야기로 나누는 삶, 욕심 없이 자연스러운 행복을 느끼며 인생을 온전히 즐기는 삶을 꿈꿉니다. 꼬부랑 할머니가 되는 그날까지 파도를 타며 바다와 더불어 살길 바랍니다. 참 이상하죠, 서핑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의식의 흐름이 그렇게 흘러갑니다. 물질적인 것들에서 마음이 떠나갑니다.
아마 그건 서핑이란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연이 허락하지 않으면 애초에 성립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지형이, 파도가, 바람이 조건에 맞아야 하거든요. 사실 자연의 허락이 떨어진다 해도 쉽지 않습니다.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거나 내동댕이쳐질 때면 이 선의도 악의도 없는 무소불위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온몸으로 깨닫게 되죠. 파도에 말린 채 곧 숨 쉴 수 있길 바라며 바닷속을 빙글빙글 헤매는 동안, 그 깊은 자연에 서퍼는 많은 것을 내려놓고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옵니다. 그리고 찰나 같은 파도를 타기 위해 다시 먼바다로 나가고, 나를 내팽개치는 파도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며 이를 잡고 일어납니다.
나에게 서핑 이야길 청하는 이들이 맞이하는 가장 큰 당혹스러움은 멋지고 화려한 레저스포츠 후기를 기대했으나 소주 세 병은 먹고 나눌 법한 인생 이야기가 돌아온다는 점입니다. 이 글을 읽기 시작한 당신도 이쯤이면 아차 싶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당신을 살짝 못 본 척하고 이어나가 볼게요.
언젠가 부산의 송정해변을 산책하던 날, 수십 개의 파도를 놓치던 이가 작은 파도 위에 올라서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그 순간 그녀 얼굴에 퍼진 환희를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실 ‘파도’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작은 물결 위, 5초도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티끌 같은 우리 인간이 위대한 자연과 어우러져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는 순간을 그녀가 경험했단 걸 느낄 수 있었거든요. 경이롭지 않나요? 그의 얼굴에 막 피어난 표정을 보고 확신했습니다. 우린 ‘저것’을 위해 서핑하는 것이구나.
여기서 ‘저것’이란 단순히 파도를 잡는 순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몇 개의 단어나 문장으로 전달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 앞으로의 이야기는 모두 ’저것’에 대한 것들이 되겠네요. 이의 진정한 의미가 당신에게 파도처럼 다가가길 바라며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서핑 4.5년차의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