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일일영감의 잡담
매주 목요일 찾아 오는 일일영감의 잡담, 그 아홉번째 잡답거리는 영화 <종이달>입니다. <종이달>은 평범한 주부의 일상 속 작은 균열이 거대한 범죄로 변해가는 과정을 섬세한 연출로 그려냈습니다. '시가은행 9억엔 횡령사건'으로 불리우는 실화를 각색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되었으며, 감독 '요시다 다이하치'는 "영화 <종이달>은 소설에 대한 나만의 독후감을 기반으로 했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 아래의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종이달 (2014, 요시다 다이하치)
1. 돈이 가는 곳
중학생 리카가 5만 엔이라는 거금을 기부했을 때 듣게 되는 말. '그 돈은 어디서 얻었니?' 5만 엔의 출처를 묻는 질문에 어여쁜 돈은 길을 잃는다.
그리고나서 몇십 년이 지나 은행원이 된 리카는 어릴적 저질렀던 실수를 다시 반복한다. 돈 많고 힘없는 노인들의 거금을 다루는 일은 그녀의 욕망을 자극하기에 충분해 보여서 리카는 자연스럽게 경박해진다. 빼돌린 200만 엔이 향하는 곳은 젊은 남성과 두 손 가득한 쇼핑백.
그러나 중학생 리카가 기부한 5만 엔이 동남아의 한 꼬마에게 전달되어 그 꼬마가 마침내 가정을 이루었을 때. 그리고 그 장면을 리카가 목격했을 때. 요시다 다이하치가 생각하는 돈이란 '세상은 요지경'이라 돈이 가는 길에는 좋고 나쁨이 없는 듯하다.
2. 돈이 데려가는 곳
리카가 낮지 않은 높이에서 창문을 부술 때 직감적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당연히 자살의 이미지이다. 아무리 그녀라도 결코 탈출을 감행할 정도의 배짱은 없을 것 같고 그녀의 범죄는 연속된 우발성이 겹겹이 쌓인 것 뿐이지 그녀는 그다지 과격해보이지 않는다. 그랬던 그녀가 도로를 달려 도망치고 심지어는 동남아의 번화한 거리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으면, <양들의 침묵>의 마지막 엔딩이 생각나면서 '돈으로 인하여 이 여자는 어디까지 가게 되었나'하고 생각해보고 만다.
글_ 정태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