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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일영감 May 12. 2016

낭만 보다는 현실,
영화 <해변의 여인>

#64 일일영감의 잡담



오늘 일일영감의 잡담에서는 홍상수 감독의 일곱번째 장편 <해변의 여인>을 주제로 수다를 떨어볼까 합니다. 제목에 담겨있는 두 단어 '해변'과 '여인'에서 느껴지는 낭만적 이미지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은데요. 개봉 당시 뉴욕국제영화제와 도쿄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되어 호평을 받았습니다.



* 아래의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해변의 여인 (2006, 홍상수)

 똑같이 키가 크다는 점을 빼고선 닮은 지점이 거의 없어 보이는 두 여성을 '그래도 얼굴은 닮았지 않았냐'며 동일시하는 영화감독 김중래(김승우)는 여성에 대한 감수성이 다소 얄팍해보인다. 그에게는 별을 두고 세상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존재라고 말하는 김문숙(고현정)의 소신발언도 무효가 된다. 그마저도 진심인지 알 수 없는 김문숙과의 하룻밤은 관객에게 엉덩이를 보이면서 빌었던 소원을 통해 간편한 방식으로 최선희(송선미)와의 하룻밤으로 대체된다. 이렇듯 한때 홍상수의 영화를 들어 '찌질한 남자들의 구애 이야기'로 퉁쳤던 견해는 적당해보이지만 <해변의 여인>에는 그에 더하여 여성에 대한 홍상수의 낙관주의 비슷한 것이 녹아 들어 있다.


숲을 헤매고 돌아온 김문숙이 연적 최선희와의 화해를 마치고 그녀에게 작별인사를 던지는 장면에서 녹음과 조명의 문제로 마지막 '안녕!'은 그리 부각되지 않지만 이 자신 있는 인사를 통해 김문숙이라는 여자가 얼마나 시원스러운 성격의 소유자인지 알아차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내 그녀는 자동차를 타고 해변을 달리더니 결국 모래사장에 자동차 바퀴가 빠져 멈추고 만다. 그러더니 웬 낯선 남자 두 명이 걸어와 자동차를 밀어주고 김문숙은 해변을 빠져나간다. 이 마지막 에필로그는 흡사 김문숙의 짧은 신두리 여행기의 요약임과 동시에 김문숙의 여성으로서의 미래를 예시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하여 "자연은 왜 수컷 암컷으로 나눠놔가지고. 아유, 지겨워."라는 김중래의 투정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홍상수의 여성에 대한 이 낙관주의 비슷한 것이, 이것이 고현정이라는 여배우의 고유한 매력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모르겠어도 김문숙은 결코 외로움을 타지 않을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글_ 정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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