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이 된 TCK의 이야기는 내 친구 초이의 이야기이자 나의 이야기였다
대학교 4학년,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교양 수업을 들었다.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초이의 이야기로 15분 정도 되는 다큐를 만들었다. 대상은 초이였고 다큐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교수님의 피드백을 한 두 차례 받기도 했지만 기획도, 촬영도, 감독도, 편집도 전부 내가 맡아서 내 친구를 담는 프로젝트였다. 초이의 이야기는 이방인으로 자란 TCK의 이야기였고 그건 결국 내 이야기이기도 했다. TCK란 Third Culture Kids (제3 문화 아이들)의 앞 글자를 딴 말로, 성장기를 두 개 이상의 문화권에서 보내면서 그 문화들을 모두 수용하게 된 아이들을 뜻한다.
내 2022년작 <네 바퀴 자전거>는 내가 4년 간 관계를 쌓아오면서 가까이에서 찍어 놓은 초이의 영상들에 김광석의 노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가 깔리면서 시작한다.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네 바퀴로 가는 자전거
물 속으로 나는 비행기
하늘로 나는 돛단배"
이 다큐멘터리는 대부분이 영어로 이루어져 있다. 영상매체를 글로 그대로 옮기는 건 쉽지 않고 영어의 뉘앙스를 한국어로 옮기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이하는 다큐멘터리 <네 바퀴 자전거>의 의역이다. 이미 내 의도대로 내 손으로 기획하고 편집한 다큐멘터리지만 그 영상을 글로 바꾸고 영어를 한국어로 의역하는 과정에서도 꽤 많은 각색이 들어갔음을 밝힌다. 글의 매끄러움을 위해 한두 문장쯤은 초이가 직접적으로 하지 않은 말도 그의 말의 형식을 빌려 기술해 놓았다. 다큐의 초이는 내 친구 초이가 맞지만 이 에세이에서 "초이"로 등장하는 인물은 내 친구 초이의 경험이라는 토대 위에 나의 생각이 약간은 점철된, 5퍼센트 쯤은 가상의 인물이다.
초이가 본인의 도쿄 집에 앉아 일렉기타를 연주한다.
초이 -- 내 이름은 최지웅이다. 싱가폴에서는 아무도 "지웅"이라는 내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나는 "초이"로 불리게 되었다. "초이" 역시 틀린 발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행신초등학교를 반 년 정도 다녔을 때, 그러니까 초등학교 1학년 때 우리 가족은 싱가폴로 이민을 가게 된다. 어느 날 내 부모님은 나와 형을 거실에 앉혀 두고 우리가 이제부터 일 년 내내 여름인 조그마한 섬나라로 가서 살게 될 거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화를 냈고 울고불고 거부했지만 부모님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2005년 8월, 그렇게 여섯 살의 나는 싱가폴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2006년 1월, 나는 다시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평생 내 동급생들보다 한 살이 많았다.
나 -- 사람들이 너한테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해?
초이 -- 주로 싱가폴이라고 먼저 대답하는 것 같다. 나는 주로 그 사람들과 영어로 대화하고 있을 거니까. 그렇다고 내가 싱가폴 사람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건 거짓말이니까. 그냥 싱가폴에서 왔다고만 말하고, 내가 어디서 왔는지 더 자세히 물어보고 궁금해하고 뭐랄까, 꽤나 내 출신지에 집착하는 사람이면 그 땐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며칠 전에 시부야 한복판을 걷고 있었는데 영어 관련 캠페인 활동을 하는 봉사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영어를 구사하는 봉사자들을 찾고 있었고, 캠페인 활동을 하던 여자애가 좀 예뻤고, 마침 나는 시간이 좀 남았었기 때문에 우리는 대화를 시작했다. 그녀가 나에게 어디서 왔냐고, 이름이 뭐냐고 물었고, 나는 한국이라고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내 모국어가 영어라는 사실이 설명되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그냥 싱가폴에서 왔다고 대답했고, 이름은 Darren Tan이라고 해 버렸다. Darren Tan은 그냥 싱가폴인 이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다. 싱가폴 길거리를 한 번 지나간다고 하면 아마 다섯 번은 마주칠 수 있을 거다.
이상한 경험이긴 했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와 내가 스스로 규정하는 출신지의 긴밀한 관계에 대해서, 내 이름과 내 국적이 타인이 나를 규정할 때 어떠한 고정관념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나 -- 네 "집 (home)"은 어디야?
초이 -- 일단 한국에는 내가 돌아갈 수 있는 물리적인 주소가 없고, 나는 우리 외가 사람들이랑 친한 사이도 아니다. 친가 쪽 친척들과는 사이가 좋긴 하지만 그분들은 다 부산, 무주 쪽에 살고 계시는데 나는 거기 살아 본 적도 없고. 그러다 보니 한국이 집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는 것 같다. 그러니까 나한테 "집"은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싱가폴 본가 주소를 말했다.) 여기다. 싱가폴.
나 -- 근데 싱가폴에서 너는 외국인이잖아. 그렇지?
초이 -- 싱가폴에서 나는 국제학교에 다니는 애들을 별로 안 좋아했다. 그런데 사실 내가 다녔던 학교도 130년의 역사를 가진 명문학교였으니까 또 로컬 일반학교는 아니었다. 버스에서 우리는 국제학교 애들을 싫어했고 로컬 싱가폴 학생들은 우리를 싫어하고 있었다. 뭐랄까, 얼마나 백인 문화권에 더 가까운지(white-washed) 의 위계질서가 등하굣길 버스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내가 한국인인 것뿐만 아니라 그런 학교에 다녔다는 사실도 나를 싱가폴에서 외부인으로 만드는데 일조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당장 서울에 간다면 잘 녹아들어갈 것 같지는 않다. 겉으로 봤을 때 티는 덜 나겠지만, 더 잘 숨을 수는 있겠지만, 완전히 일부가 되지는 못할 거다. 싱가폴에 있는 편이 훨씬 자연스럽겠지.
다음 장면에서 우리는 시부야 거리의 수많은 사람들과 높게 뻗은 건물들 사이를 함께 걷는다.
초이 -- 도쿄의 모든 사람들은 같은 "색"이다 - 전부 동아시아인이니까. 전부 일본인이니까. 그런데 싱가폴에서 거리를 걷다 보면 다양한 "색"과 마주하게 된다. 다양한 언어가 들리기도 하고. 중국어만 해도 다섯 종류는 들려온다. 음식을 주문하려고 하면 아줌마가 세 가지 버전의 중국어로 말을 걸어온다. 그러고 나서야 내가 그 세 가지 중국어 중 아무것도 모르는 걸 알아내고, 그제야 영어로 말을 걸어주곤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