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바퀴 자전거 (2)

어린 시절 한국의 기억

by 하루

초이와 나는 매주 일요일이면 함께 작은 한인 개척교회에 나가곤 했다. 또 우리는 미국인 교수님이 다니던 St.Alban's라는 영어예배가 진행되는 교회에도 몇 번 같이 간 적이 있다.

전철에서 내려 한인교회까지 걸어가는 길에서 초이는 종교와 언어에 대해 이야기한다.


초이 -- 한인 교회에 가면 주기도문, 사도신경을 한국어로 외우게 된다. 그리고 나에게 한국어로 된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은 내 기억이 시작된 시점부터, 내가 말을 할 수 있었던 나이부터, 내가 외우고 있던 내 개인적인 전통이기도 하다. 그래서 똑같은 주기도문, 사도신경이라도 한국어로 할 때와 영어로 할 때의 느낌이 많이 다르다.

설교를 듣는 것도 한국어일 때와 영어일 때 느낌이 굉장히 달랐다. 전에 St. Alban's에 갔을 때 목사님이 요한복음에 관한 설교를 하셨는데 거기서 "word"가 주님과 함께하신다고 하셨다. 전혀 와닿지가 않았다. "말씀"이 주님이고 "말씀"이 주님과 함께하신다고 해야 맞는 것 같았다. 그 단 하나의 단어가 나에게 있어 그 설교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말씀"이라고 하면 충분히 와닿을 수 있는 내용인데 "word"라는 한 단어로 이렇게 달라지다니. 교회에 가는 면에 있어서, 그러니까 종교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그 언어가 한국어여야만 하는 것 같다. 너무 어릴 때부터 쭉 한국어였으니까. 이건 아마도 평생 변화하지 않을 것이다.


도쿄에 눈이 많이 오던 날이다, 초이는 집에서 차를 끓이며 이야기한다.


초이 -- 가족이랑 오스트레일리아 여행을 간 적이 있다. 한겨울 퍼스의 길거리를 걷고 있었는데, 무언가 타는 냄새가 났다. 추위와 뭔가가 타는 냄새. 나에게 그건 여섯 살 서울의 기억이었다. 추운 와중에 뭔가 타고 있는 냄새가 나면 여섯 살의 내가 서울의 길거리를 걷는 게 된다. 추위와 뭔가가 타는 냄새는 나에게 있어 서울의 것이었다. 그 가족여행은 내가 동경대에 오기 직전이었다.

도쿄에서의 첫 겨울은 서울을 기억나게 했다. 추위가 존재했기에 그냥 서울을 걷는 것 같았다. 도쿄 같은 게 아니라 서울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몇 번의 겨울이 지나고 서울의 감각은 도쿄의 감각으로 대체되었다. 나는 이제 ”추운 겨울“하면 도쿄를 떠올린다. 추울 때면 서울을 떠올리고는 하던 강한 노스탤지어를 잃고 말았다. 약간 슬픈 것 같기도 하고.

언젠가 겨울의 서울을 방문하게 되면 도쿄 같다고 느끼고 있지 않을까.


우리는 우리의 모교인 도쿄대 캠퍼스에 있다. 눈이 쌓여있고, 초이는 단발로 긴 머리를 묶고 있다. 우리는 눈싸움을 하다가 학교 내에 동상이 세워질 정도면 아마 우리 민족의 적이 아닐까 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스노우볼을 동상에 던지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애국가를 부른다. 다른 친구들과의 약속이 있어 이동하는 전철에서 초이는 스마트폰으로 항상 하던 마작 게임을 한다.

우리는 폴과 매튜를 만난다. 나를 포함한 우리 넷은 모두 한국인이지만 모두 다른 문화를 경험하며 성장했다. 한국어를 쓸 때도 있긴 하지만 우리는 주로 영어로 대화한다. 그런데 꼭 "X발"이라는 욕은 한국어여야 한다. 이야기 도중에도 "Oh, that's truly X발"이라는 문장이 나와버린다. Fxxk으로는 느낌이 안 살아서 안 된단다.

우리 네 명은 같이 노래방에 간다. 먹고 마시고 논다. 마이클 잭슨의, 비틀즈의, 퀸의 노래를 부르다가,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노래를, 카녜 웨스트의 노래를 부르다가, 에반게리온 주제가를 부르다가, DJ DOC의 노래를, 또 아이유의 노래를 부른다.


다음 장면에서 우리는 다시 시부야를 걷는다.


초이 -- 저번에 시부야 츠타야에 갔을 때 동방신기 일본컴백 행사를 하고 있었다. 내가 한국에서 유치원에 다닐 때 동방신기가 되게 인기 많았었던 것 같은데. 나는 뭔지도 모르고 케이팝, 유명한 사람들, 멋있는 거 하는 사람들, 정도로 생각하고 동방신기 동방신기 거렸던 것 같은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아직도 활동 중이었다니 놀랍지 않은가. 이제 쉰 몇 살쯤 된 건가.


나 -- 아직 30대일 거야...


초이 -- 시간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냐. 아무튼 그래서 지금 그 앨범이 아직 있나 보려고 한다. 한국에서의 어린 시절 재현하기.


장면은 다시 초이의 집으로 돌아간다. 초이는 비비탄 총을 들고 있다. 나는 왜 총을 가지고 있는지 묻는다. 초이는 자기 방어용이라며 웃는다.


초이 -- 비비탄 총은 한국에서 남자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다. 남자아이들의 문화인 거다. 한국에 살았을 때 데저트이글이라는 큰 권총을 가지고 있었다. 어린 남자아이였던 나는 매일 비비탄을 쏘고 돌아다녔고 내 데저트이글을 정말 좋아했다.

그리고 싱가폴으로 이민을 갔다. 싱가폴에서는 아무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비비탄 총을 팔지도 않고, 들고 있다간 공항에서 압수당한다. 그렇게 평생을 비비탄 총 없이 살았다.

그런데 이제 돈키호테에서 비비탄 총을 마음껏 살 수 있는 나라에 살게 되었다. 어쩌겠냐. 사야지. 항상 루거라는 독일 권총이 갖고 싶었다. 사러 갈 거다.


초이가 돈키호테에서 비비탄 총들을 구경한다. 그리고 장면이 다시 초이의 집으로 전환된다. 뒤에는 한 쪽 벽면 빼곡히 영어로 된 책들이 쌓여있다. 실제로도 초이는 내가 아는 모든 사람 중에 책을 가장 많이 읽는 사람이다.


나 -- 너는 몇 가지 언어를 할 수 있어?


초이 -- 몇 개 국어를 하냐고? 셋? 넷? 입시원서에는 영어,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네 개 국어 가능이라고 적는다. 실제로는 두 개, 어쩌면 한 개려나. 일단 영어. 영어는 당연히 잘 한다.

한국어...는 네가 볼 때 어떤 것 같냐. 솔직히.


나 -- 폴 보다는 잘하는 것 같다. 그런데 네가 한국말을 할 때면 되게 우리 아빠같이 말한다. 굉장히 아저씨 같은 말투를 가졌다.


초이 -- 아무래도 내가 접한 한국어는 전부 부모님이었으니까. 아빠가 엄청 장난가 많으신 편이라 말할 때 더 그런 말투를 쓰시는데 그걸 배운 것 같기도 하고.


다큐멘터리 내내 영어로만 말하던 초이가 처음 한국어로 말한다.


초이 -- 한국말. 한국말.. 할 수 있죠. 왜 제가.. 한국말 못...


금세 포기하고는 다시 영어로 말하기 시작한다.


초이 -- 와, 나 진짜 한국말 못한다. 젠장.


나는 한국어로 말하고 초이는 영어로 말한다.


나 -- 내가 한국말로 말 걸어도 매 번 영어로만 대답하잖아.

초이 -- 그건 그래.

나 -- 봐, 지금도.

초이 -- 한국어로 생각해 보려고 했는데 단어가 안 나온다.


우리는 다시 영어로 대화한다.


나 -- 한국에 살고 싶어?

초이 -- 살고 싶다. 잠깐은. 아마도.


나 -- 결국 최종적으로 정착하고 싶은 곳은 어딘데?


초이 -- 결국 정착하고 싶은 곳?

....... 애리조나.


김광석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가 이어서 나온다. 엔딩크레딧이 나오고 마지막 화면에 다큐멘터리의 제목 <네 바퀴 자전거: Four-Wheeled Bike>가 나올 때까지 노래는 이어진다.


"남자처럼 머리 깎은 여자

여자처럼 머리 긴 남자


가방 없이 학교 가는 아이

비 오는 날에 신문 파는 애


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 위로

오늘도 애드벌룬 떠 있건만


독사에게 잡혀온 땅꾼만이

긴 혀를 내두른다


독사에게 잡혀온 땅꾼만이

긴 혀를 내두른다"


다큐의 첫 편집본을 제출했을 때 이메일로 받은 교수님의 피드백을 마지막으로 이 에세이를 마치려고 한다. 꽤 오랫동안 동영상을 찍고 나름대로 편집하는 것을 재밌는 취미로 생각했는데, 이 수업을 통해 초이라는 대상에 집중한 다큐를 제작하면서 영상 제작에 대한 생각을 참 많이 하게 되었다. 내가 어떻게 인터뷰하고, 촬영하고, 편집하냐에 따라 내 친구는 아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수도 있는 거였다.


"You have made a really beautiful portrait and so many of the themes you covered spoke to me and will speak to many of the students in our class. You are a really sensitive and gifted interviewer, cameraperson and editor, and I really enjoyed watching this." (2022년 1월 15일, Thomas Ash 교수님으로부터의 이메일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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