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미 깨어졌다. 돌이킬 수 없는 조각이 되어버렸다. 그래, 그렇다면 더 박살이 나 보자. 부딪히고 넘어지고 떨어지자. 아예 가루가 되어 버리자. 그렇게 부서지자. 산산조각나 더이상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고운 가루가 되어보자.
가루가 되어 섞여버리자. 더이상 내가 너인지, 너가 나인지 모를 만큼 고운 입자가 되어 하나가 되자. 어디 한 번 그렇게 해 보자.
그러나 그것은 결국 나를 잃는 것이다. 내 형체를 잃고 부서져야만 하고 떨어져야만, 그렇게 고통스럽게 산산조각 나야만 나는 가루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너를 사랑하며 가루가 되기보다 이제는 내 온존한 형체를 사랑하기로 했다. 너와 나는 이미 우리가 아니게 되었고 하나가 아닌 둘이 되었다. 한 번 깨진 조각은 돌이킬 수 없다. 그러니 그냥 여기서 그만 두자. 서로를 망가뜨리고 가루가 되지는 말자.
참 아이러니하다. 나는 네가 깨어지는 게 싫어 나보다도 더 사랑했던 너를 그만두기로 했다. 내가 네 옆에 있을 때 우리는 깨어졌다. 그게 싫었다. 더이상 부딪히고 넘어지면 정말 가루가 되어 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고운 입자가 되어 서로의 형체를 잃어야만 이어갈 수 있는 관계라면 관두는 게 맞았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나는 네가 부서지는 게 싫어 너를 던지지는 못하였다. 끝까지 이기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