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생각새싹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

by 어느좋은날
143-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jpg








이 마음의 처음은..

이랬습니다

모든 것이 비춰 보일 만큼 투명했고

티끌 하나 없이 깨끗했고

누르면 누르는 만큼 움푹 들어갔다가

이내 제자리로 돌아올 정도로

참 부드럽고 말랑말랑 했습니다


그랬던 마음이 비를 맞습니다

누군가가 마음의 일부를 가져가 돌려주지 않습니다


처음이라 더 아팠던 비가 그치자

또 다른 비가 내립니다


할퀴어지거나..

생채기가 생겨..

반창고가 늘어가면서..

투명하고도 깨끗했으며

부드럽게 말랑거리던

이 마음의

처음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이들에게

우리는 흔히 이런 말을 건넵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

라고요


틀린 말은 아닙니다

비가 오고 나면 땅은 더 단단해지고

우리 마음도

아픔을 겪고 나면

작은 아픔들에는 조금은 무뎌지어

아파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맞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비와 아픔이..

굳어짐과 무뎌짐이..

너무 많이 반복되다 보면

끝내는.. 결국에는..

비와 아픔마저

스며들지 못 할 만큼

굳어지고 무뎌지다 못해 딱딱해져 버린

마음을 지니게 되는 것은 아닐는지

걱정이 됩니다


처음 모습의 마음은 아니더라도..

한 켠의 패인 자욱과..

옅어져 가는 생채기의 흔적이 남아 있더라도..

이따금씩 내리는 비는 스며들 수 있는

말랑말랑함이 사라지지는 않도록..


지금 내리는 이 비는..

너무 자주 내리는 것 같은 이 비는..

멈추었으면

좋겠습니다

keyword
어느좋은날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구독자 1,529
매거진의 이전글사랑의 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