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생각새싹

용서라는 산

by 어느좋은날
189-용서라는 산.jpg








높은 산이 하나 있습니다

구름 위로 솟은 산봉우리는

마치 하늘과 닿아있는 듯 느껴지게 할만큼 높은 산입니다


높은 곳에 존재하는 신선한 공기 때문인지

높은 산을 올랐었다는 자랑할만한 발자취 때문인지

이 산의 정상을 보고 내려오면

마음이 참 편안해진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산 산기슭에는 산을 정복해보려는 사람들로 늘 붐빕니다


그 중에는

처음 본 산의 위용에 지레 겁을 먹거나 놀라서

산을 오르지 못하고 산기슭에만 들렀다 가는 사람들도 있고

높은 산을 향해 호기롭게 출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성난 모습으로 돌아오는 사람들도 있고

정상을 가리운 구름 앞에서

여기까지만.. 하고 내려오는 사람들도 있고

구름을 지난 정상의 문턱에서

이 정도면 됐지.. 하며 지친 얼굴을 하고 다시 산기슭을 밟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산에 도전을 하지만

높이는 물론이고 험준한 산세에 눌려 정상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오고는 합니다


하지만

산으로 향한 아주 일부의 사람들은 이 산의 정상에 오른 뒤..

산을 오르기 전보다 한결 편안해진 모습을 하고 산기슭으로 돌아오고는 하는데

이들은 하나같이 이런 말을 합니다


오르는 길은 정말 힘들었지만

막상 오르고 보니, 힘겹게 정상에 서보고 나니

정작 내려오는 길은.. 그리 높지도 산세가 험하지도 않았다 고요


그래서

산을 정복하거나 해냈다는 그런 사실들 보다는

진작에 오를 수 있었음에도 오르지 못했던 아쉬움과

이제라도 정상을 보고 내려올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섞여

산을 오르기 전보다 한결 편안해진 모습으로 내려올 수 있었던 것 같다 고요


정상을 보고 내려온 이들의 말에 힘입어

흩어진 마음을 다잡고 다시금 산에 오를 용기를 내보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다시 마주하게 되면..


여전히 오르기가 머뭇거려지는

이 산의 이름은 용서입니다



이승에 사는 사람 중 소수만이 자기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빈다.

그리고 그들 중 극소수만이 진심으로 용서를 받는다.

- 영화 <신과 함께: 죄와 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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