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빈 그릇이 하나 있습니다
바깥 모습도 정갈한 게 예뻤지만
꽃잎이 새겨진 안쪽이 더욱 예뻐서
그 안이 비어 있는 모습으로 장식해놓은 예쁜 빈 그릇입니다
장식된 예쁜 빈 그릇의 모습에 흡족해하던 어느 날
급하게 집안을 정리해야 할 일이 생겼고, 정신 없이 치우다 보니
그 예쁜 빈 그릇에도 무언가를 담고, 올려 놓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 번 담아지고 쌓아진 무언가는
쉬이 내려오거나 비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안쪽이 예뻤던 그 빈 그릇은 더 이상 예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여느 평범한 그릇들과 다를 바 없게 되었습니다
어떤 감사함이나 고마움 혹은 그것을 아끼는 일련의 감정을
처음의 상태로 유지해 가기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 마음을 잊지 않겠다며
마음 한 편에 잘 새겨 놓겠다며
굳은 다짐을 했지만
세월에 깎였는지
시간에 무뎌졌는지
굳은 다짐이 놓여 있던 자리엔
욕심이 담기고 당연하게 여김이 올려져
처음의 마음을 가리워 버리고 맙니다
가리워진 마음을 마주하며
한 번 채워진 욕심과 어느새 자리한 당연하게 여김은
쉬이 덜어내기가 쉽지는 않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가득 채워진 예뻤던 그릇을 보며
채우고 쌓는 것만이 좋은 것이 아님을
때로는 채우지 않고 비워두는 것도 참 좋은 것임을 생각해 봅니다
더불어
채워진 예뻤던 그릇을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비워내며
이 그릇이 내 마음인양
처음의 마음을 가리운 것들도 하나 하나 덜어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