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생각새싹

겨울의 문턱

by 어느좋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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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의 턱은 유난히 높습니다.
높은 턱을 넘어가려면 누구라도
다리를 높이 들고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사원의 문턱이 겸손을 가르칩니다.

- 알렉스 김의 <아이처럼 행복하라> 중에서




우리네 삶에는 많은 문턱들이 존재합니다.

높거나 낮은, 때로는 가늠키 어려운 높이의 문턱들이요.

지금 제 앞에 놓인 문턱이 그렇습니다.

얼마나 더 내려놓고 숙여야 하는지,

얼마나 더 겸손해져야 이 문턱을 넘을 수 있는지 가늠키 어려운 문턱이요.


몇 해 전 봄, 스스로에게 약속을 하나 했습니다.


일주일에 하나씩 글을 써서 올려보자


쌓여온 생각이 많았고, 그 생각을 표현하고 싶었고,

하나의 글이 가져다 주는 다독임과 북돋음의 힘을 알기에

부족하지만 진심을 담은 글로 누군가에게 따뜻한 마음이 들게 해주었으면 했습니다.


그렇게 생각새싹은 시작 되었고, 이러한 마음은 여전히 처음과 같습니다.

하지만 앞에 놓인 문턱으로 인해

스스로에게 했던 약속을 조금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일주일에 하나의 글이 아닌, 나누고픈 생각이 스쳤을 때 글을 쓰는 걸로요.


이유 혹은 핑계 혹은 변명을 늘어 놓자면 이렇습니다.


누구나 삶에서 많은 문턱을 넘고 넘으며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겠지만

제게는 장애라는 참 높은 문턱이 매 순간 있어 왔습니다.

몸에 근육이 소실되어 가는 희귀병이 실제의 문턱을 넘는 일에도

심리적인 문턱을 넘는 일에서도 많은 겸손과 낮은 자세를 지니도록 해주었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생각이 많아졌는지도,

그래서 더 글을 써 올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몇 해 전 봄, 생각새싹을 시작할 즈음엔 조금 느리긴 했어도

마우스로 글을 쓰고, 글에 넣을 그림을 그려냄에 있어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병의 특성상 근육은 계속 소실되어 갔고,

마우스를 쥐던 손에서도 힘이 조금씩 사라지는 걸 느끼면서

생각을 글로 옮기던 타이핑도 힘겨워져 가고, 글에 곁들이던 그림들도 간단해지고,

가끔은 사진으로 대신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집에서 조용히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이 경험의 부재로 이어졌고,

그로 인한 생각거리의 부족함도 느끼고 있습니다.

하여 이러한 이유 혹은 핑계 혹은 변명들로

3년여 간 지켜오던 스스로와의 약속을 조금 바꾸어 보려 합니다.

그렇게 또 내려놓으며 마주한 문턱을 넘어 보려 합니다.



이 글을 쓰는 내내 책상 구석에 놓인 달력이 계속 눈에 들어오네요.

한 장 밖에 남지 않은 12월의 달력이 겨울의 문턱이 다가왔음을 알려주는 듯 합니다.

지금 제 앞에 놓인 문턱 너머의 세상이 그리 느껴지기에 그런 것도 같고요.


겨울의 문턱에서 내린 이 결정이

저를 얼마나 추운 겨울로 데려 갈는지,

얼마만큼의 겸손을 더 가르치려 할는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아무리 혹독하고 매서운 추위 속에서라도

따뜻하거나 나누고픈 생각이 스치면 언제라도 겨울의 문턱을 넘어 찾아 뵐 것을

구독자 분들과 스스로에게 약속해 보며 이번 글을 마칩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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