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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생각새싹

굳은살

by 어느좋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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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푹 찌는 날씨에 선풍기를 켭니다

문명이 만들어 준 바람에 고마움을 느껴봅니다

어릴 적 선풍기 앞에서 하던 장난들이 생각나서

바람을 맞선 채 ‘아~~’ 하고 소리도 내보고

손바닥도 바람에 맞대어 봅니다


헌데.. 손바닥에 전해지는 바람의 느낌이 조금 이상합니다

분명 같은 바람임에도 손바닥 한 귀퉁이에만 약하게 불어오는 느낌이랄까요?

손을 뒤집어 살펴보니 굳은살이 배겨있었습니다

다른 손으로 만져봐도 꺼칠한 게.. 반만 내 살 같은 느낌이 여간 이상한 게 아닙니다


선풍기 바람과 노닐던 나이 즈음에

자주 잡았었던 아버지의 손에서 느껴졌던

그.. 꺼칠함과 같은 느낌의 것이었습니다

다른 게 있다면.. 아버지 손에 배겨있던 굳은살은

좀 더 컸고.. 좀 더 여러 곳에 있었다는 점입니다


보통의 도구라면.. 같은 일을 반복해서 했을 때

닳고 닳아 헤지거나 마모가 생겼겠지만..

이 굳은살은.. 다릅니다

반복해서 쓰고 쓰다 보면.. 오히려 자라납니다

이루고자 하는 꿈을 위해..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일련의 노력이 쓰여질 때..

덜 아프라고.. 더 잘 견뎌내라고.. 무뎌지라고.. 자라나나 봅니다


마음에도 이런 굳은살이 자란다면

오늘보다 내일을.. 내일의 내일을 살아가기가 조금 쉬워질텐데

일련의 노력이 부족한 탓인지.. 아직 여리기만 합니다

같은 의미에서..

제 손에 배긴 굳은살 역시.. 아직 노력이 더 필요해 보였고..

기억 속.. 아버지 손에 배긴 굳은살은 먹먹함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먹먹함이 의미있게 풀어질 수 있도록

제 손과.. 마음의 굳은살이 더 자라나기를..

덜 아프고.. 더 잘 견디고.. 흔들림에 무딘.. 사람이 되어 가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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