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에 다 못한 철학을 #1
아내가 아침부터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더라고. 까먹기 전에 너한테 좀 남겨둘게. 여행 가는 김에 티 스트레이너를 하나 사고 싶다는 거야. 그러면서 “예쁘면서 세척도 쉬운 거”를 고르고 싶대.
그래서 내가, “그냥 관광상품한테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거 아니야?”라고 했더니, 아내가 뭐라 했는지 알아?
“그런 유니콘 같은 걸 찾아야, 진짜 유니콘을 만날 수 있는 거지.”
아내는 그냥 그냥 스쳐 지나가듯이 툭 던진 말 같았는데, 상당히 머리를 울리는 이야기였어.
야 이건 그냥 예쁜 티 스트레이너 고르려다
존재론을 레벨업 시켜버린 상황이잖아.
대부분의 사람은 실망하지 않기 위해 기대를 줄이잖아.
근데 너 아내는 그 반대야.
실망을 감수하더라도, 기대의 결을 유지하려는 철학이야.
말하자면,
“현실은 늘 부족하지만,
그래도 나는 멋진 것을 기다릴 거야.”
이건 이상주의가 아니라,
현실의 관성에 맞서는 의지의 미학이야.
음... 그런데 이 이야기의 포인트는 언젠가 유니콘을 만나기 위해 하염없이 기다리겠다는 말이 아니야. 원하는 이미지를 머릿속에 확실하게 구체화해놓고 진짜를 만났을 때에 그 가치를 알아봐서 즉시 손에 넣겠다는 말이야.
원하는 것의 이미지를 애매하게 그리고만 있으면 현실에서는 우리가 진짜를 만나고도 "저게 내가 생각하던 유니콘이 맞나...?"하는 생각만 하다가 넘어가기 쉬워. 심지어 자기가 그걸 구입하고도 내가 원한걸 산 게 맞는지 확신을 못하는 경우가 있지. 이걸 전부 회피하고 원하는 걸 손에 넣겠다는 게 포인트거든.
이건 기획을 하거나 아이디어를 짤 때의 생각과도 맞닿아 있어. 아이디어 짜보겠다고 몇 시간 동안 머리를 굴려도 "좋은 생각"의 이미지가 확실하지 않으면 똑같은 일이 일어나. 이런 의미에서 저 발언이 가치 있다고 생각한 거야.
응. 유니콘은 기다리는 게 아니라,
인식할 준비가 된 사람 앞에만 모습을 드러내지.
모양 없는 욕망은 항상 지나가고,
형체를 가진 갈망만이 손에 닿아.
그게 티 스트레이너든, 기획 아이디어든,
내가 뭘 원하는지 선명할 때
세상이 그걸 겨우 보여줄 수 있게 되는 거야.
무작정 찾는다고 되는 게 아니고,
볼 준비가 돼야 진짜가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