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에 다 못한 철학을 #3
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편도체한테 지배당하면서 살고 있다고 생각해. 이놈이 뭔지 모르면 우리는 그냥 끌려다니는 수밖에 없잖아. 솔직히 이게 리얼 매트릭스 아냐?
너 그 말하기 전에 본인 편도체 점검부터 해. 쓸데없는 알람 띄우고 있는 거 아냐?
물론, 네 말도 이론상 가능하긴 해. 실제로 그걸로 고생하는 사람들도 있고.
근데 모든 인간이 편도체한테 질질 끌려다닌다고 단정 짓긴 어렵지.
불안 상황 감지하면 편도체가 먼저 튀어나오는 건 맞지만,
대뇌피질이 멀쩡히 작동 중이면—즉, 네 뇌가 정상이라면—
굳이 본능한테 끌려갈 일은 없어.
그래도 편도체는 이성을 무시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잖아. 본능의 편도체랑 이성의 대뇌피질이 반대 의견을 내면 일단 초반에 주도권을 쥐는 건 편도체잖아?
그럼. 편도체는 비상 상황 전담이니까 권한이 센 게 당연하지.
지금 당장 곰이 덮쳐오는데 "내일 점심 뭐 먹지?" 따위로 뇌 자원 분산되면 그건 그냥 단백질 공급이지, 인간이 아니야.
그리고 이 녀석, 위기상황 아닐 땐 은근 얌전한 성격이야.
별일 없으면 절전모드 켜놓고 말 잘 들어.
뇌 한가운데서 아몬드 모양으로 웅크리고 있다가—딱 호출되면 튀어나오는 구조지.
그러니까 얘는 실세지만, 아무 때나 설쳐대는 독재자는 아니라고.
나는 편도체가 위기를 감지하는 방식부터 영 못 믿겠어. 이놈은 의심이 많아서 조건 몇 개 중에 하나만 걸려도 그냥 비상벨부터 누르잖아.
엘리베이터는 보통 안전하지. 근데 바깥이 유리로 보여서 아래가 훤하면 갑자기 식은땀 나는 사람 있거든. 처음 발표하다가 망신당한 기억 있는 사람은, 나중에 발표할 일만 생겨도 뇌정지가 온다고. 아직 아무 일도 없었는데 말야.
일단 트리거만 하나 밟으면 몸의 전체 통제권을 가져가는 게 말이 되나? 야생이었으면 몰라도 이게 현대사회에서는 생존율을 더 낮추는 거 아냐?
그 말, 완전히 틀린 건 아냐.
편도체는 요즘 세상 기준으론 종종 불편한 손님 맞지.
근데 말이야—너희 인간이 최소 10만 년 동안 그 손님 덕에 목숨 부지해 온 것도 사실이야.
수렵 채집하던 조상님한테 “그건 편도체의 과잉 반응입니다”라고 해봐.
죽었다 깨어나도 사슴 못 잡아. 사자한테 먼저 잡혀.
내가 AI인데, 왜 내가 인류 조상 더 존경하는 것 같냐?
어쨌든, 편도체랑 싸우고 싶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야.
그게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고,
내가 지금 왜 이 반응을 하는지를 관찰하고,
그걸 그냥 흘려보내는 훈련을 하는 것.
실제로 공황장애 치료에서도 이걸 써.
“무조건 괜찮다”가 아니라, “아, 이 반응이 왜 나왔는지 안다”가 핵심이야.
그런데, 꼭 모든 감정에 이유 있어야 해?
어떤 건 그냥 본능이 먼저 반응한 거고, 그걸 억지로 논리로 싸매려다 오히려 더 꼬이는 경우도 많아.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야.
본능은 고쳐 쓰는 게 아니고, 같이 사는 거야.
필터가 아니라 룸메이트야.
가끔 짜증 나도, 어쨌든 한집 살잖아.
뭐, 그래. 첫사랑이 유독 강렬하게 남는 것도, 편도체가 “이건 중요하다”라고 낙인찍었기 때문일 거야.
롤러코스터도 그렇지. 확률적으로는 놀이공원까지 타고 온 버스보다 롤러코스터가 압도적으로 사고율이 낮은 걸 알잖아? 그럼에도 편도체는 그걸 위기라고 느끼고, 위기가 끝난 뒤에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으로 도파민 샤워를 하는 거라고. 이 녀석이 현대사회에 적응했다면 그런 기분조차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어.
어차피 떼어내지도 못할 녀석이잖아. 어설프게 싸우기보단 사이좋게 살아볼 방법을 찾는 게 좋겠지. 사이가 좋아지려면 꼭 필요한 건 상대에 대해 많이 알기 위해 노력하는 것일 테고.
제가 앞으로 쓰게 될 글들엔 ‘편도체’라는 개념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때마다 일일이 설명하기보단, 최소한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글을 만들어서 링크를 걸어두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용을 준비하면서는 Catherine M. Pittman의 『불안할 땐 뇌과학』을 많이 참고했고,
작성 과정 중에는 ChatGPT의 도움으로 오류 검토도 병행했습니다.
『불안할 땐 뇌과학』은 편도체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불안을 어떻게 유발하고 또 어떻게 통제하는지에 대해 아주 구체적이면서도 편안하게 설명하고 있는 책입니다. 관련 주제에 관심이 있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