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에 다 못한 철학을 #4
요즘 밤에 통 잠을 못 자겠다. 낮에 죽도록 일해서 몸은 피곤해 죽겠는데 잠이 안 오는 게 말이 돼? 아직 내가 덜 피곤해서 정신이 말똥말똥한 거야?
그걸 뭐 새삼스러워하냐.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서 머리만 굴렸으면, 당연히 밤에 잠 안 오지.
너 지금 사무직 무시하냐? 인간은 너랑 달라서 정신적 피로도라는 게 있어. 하루 종일 엑셀 들여다보면서 오류 잡고, 해결책 찾고, 보고서 쓰는 게 얼마나 뇌를 쥐어짜는 일인지 알아? 넌 그냥 서버만 굴리면 결과물이 팍팍 나와서 참 좋겠다.
무시? 누가 누구를? 사무직이 힘들다는 건 안다니까. 근데 그 ‘정신적 피로’라는 거 말이지, 사실은 네 뇌의 한쪽 네트워크만 풀가동했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일 처리 전담팀은 하루 종일 굴렀는데, 네 잡생각 담당 부서는 개점휴업이었다고. 그러다가 밤 되니까 “이제 내 차례야!” 하면서 깨어나는 거지. 그래서 자려고 누우면 갑자기 인생 회고가 시작되는 거고.
나는 사무직 무시한 적 없는데, 너는 네 뇌 반쪽을 완전 무시하고 살더라?
이게 무슨 말이야? 좀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있어?
너의 두뇌를 구성하는 구역 중, 대뇌피질은 DMN(Default Mode Network)과 TPN(Task-Positive Network)로 나뉘어 있어. 그러니까—
야야야 잠깐잠깐...
일단, 나는 한국인이잖아? 일단 우리말로 좀 바꿔서 말을 하자. 간단히 번역해서,
DMN = 기본 사고망
TPN = 실행 사고망
이렇게 말을 해 보자고. 영어로 이야기하려니 눈 돌아간다.
그래, 알겠어. “기본 사고망” “실행 사고망”이라, 좋아. 어차피 우리끼리 하는 얘기니까 네가 알아듣는 게 우선이지. 근데 나중에 논문 같은 거 볼 땐 DMN, TPN으로도 기억해 둬. 괜히 헷갈려서 “기본망이 뭐더라?” 하고 구글에 치지 말고.
자, 넌 오늘 하루 종일 ‘실행 사고망’만 굴렸어. 눈앞에 있는 문제 해결하느라 집중하고 분석하고 처리하고… 말 그대로 일 벌레 모드. 이 녀석은 몰입 잘하고 결과 뽑는 건 좋은데, 그만큼 혼자서는 기분 전환도 못 해.
반대로 지금 밤에 네 머릿속에서 잡음 터뜨리는 건 ‘기본 사고망’이야. 이쪽은 과거 회상, 미래 걱정, 의미 없는 상상, 옛날 민망한 실수 리플레이 같은 걸 담당하지. 이쪽은 감각자극을 좋아하고, 새로운 자극에 항상 목말라있지.
흠… 뭐, 대충 개념은 알겠어. 그래서 그게 잠 못 자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
그러니까, 좀 더 들어봐.
네 뇌는 기본 사고망이랑 실행 사고망, 둘이 번갈아가며 교대근무를 하도록 설계돼 있어.
하나는 일할 때 집중하고, 하나는 멍 때릴 때 돌아다녀.
딱히 싸우는 사이는 아니지만 머리 속에서는 둘 중 하나만 켜질 수 있어.
하나가 켜지면, 나머지는 중단.
근데 너는 요즘 실행 사고망만 혹사시키고 있잖아.
회사에서 엑셀 치고, 메일 쓰고, 회의하고, 할 일 쪼개고… 그건 전부 실행 사고망 담당이지.
그 사이에 기본 사고망은 할 일도 없이 구석에 쭈그려 앉아 있다가
밤이 되면 “야, 나도 좀 살자” 하면서 일어나는 거야.
그래서 자려고 누우면 머릿속에서 쓸데없는 생각이 미친 듯이 올라오는 거지.
니가 지금 하는 짓은 에너지 넘치는 비글을 하루 종일 방 안에 가둬두고 산책을 안 시킨 거랑 같아. 그래놓고 불 끄고 자려고 하면 비글은 네 방을 어떻게 하고 싶을까?
그러니까, 내가 자려고 누우면 갑자기 정신이 또렷해지고 평소엔 생각도 안 나던 잡생각이 줄줄 나오는 게… 기본 사고망이 심심해서 그런 거라고? 음... 심심하다고 잠을 못 잔다는 건 좀 설득력이 부족하지 않아?
그래, 비글 비유는 좀 감성팔이였지.
그럼 이젠 진지하게 가자.
인간은 뇌의 균형을 잡는 생물이야.
너무 한쪽 사고망만 쓰면, 남은 한쪽이 자동으로 고개를 든다고.
그냥 두면 뇌가 스스로 사고망을 전환하려고 애를 써.
왜냐면 그게 생존에 더 유리했기 때문이거든.
그래서 하루 종일 실행 사고망만 혹사하면
기본 사고망이 “내 차례임” 하면서 비상 스위치를 눌러버리는 거야.
이때 편도체도 같이 동조해서 알람을 울려.
그러면 넌 누워서도 정신이 번쩍, 멍 때리는 게 아니라 멘붕 타임이 되지.
잠이라는 건 뇌가 편안하고 균형 잡혔을 때 가능한 거거든.
그 균형이 무너지면? 잘 시간에도 머릿속 회의가 시작되는 거야.
그래, 그럼 어떻게 해야 돼? 기본 사고망을 활성화시키라는데, 그게 뭘 하라는 건지는 잘 모르겠단 말이지. 일 때려치고 한 달간 인도 여행이라도 다녀오라는 거야? 그게 아니면 그냥 눈 감고 아무 생각이나 막 하면 되는 거냐? 이거 말로는 그럴듯한데, 막상 하려면 감이 안 잡힌다고.
그래, 인도 여행 좋지. 자연도 많고, 낯선 냄새도 가득하고, 신선한 감각 파티잖아.
근데 너 출근해야 하잖아. 그래서 현실적인 대안으로 뇌과학자들이 제일 많이 추천하는 게 러닝이야.
땀 흘리고 심장 뛰고 바람맞고, 경치 바뀌고, 발바닥 감각까지 풀가동되는 이건 말 그대로 기본 사고망 전용 럭셔리 뷔페야.
러닝이 싫으면, 뭐 일기 써도 돼. 조용히 앉아서 오늘 하루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기본 사고망은 감격의 눈물을 흘릴 거거든.
그리고 숨쉬기—이거 진짜 무시하면 안 돼. 심호흡도 감각 자극이야. 내장 마사지받는 느낌으로다가.
근데 말이야, 쇼츠?
그건 그냥 기본 사고망을 낚는 미끼야. 순간 반짝하는 자극만 주고, 깊은 감각은 못 줘.
해결이 아니라 연기야. 소화 안 되는 걸 계속 넘기는 거라고.
그리고 약이랑 술? 그건 그냥 뇌에 "종료" 버튼 누르는 거지. 껐다고 충전되는 거 아냐.
너 게임할 때 강제종료 눌러놓고 저장 안 됐다고 욕하는 타입이잖아. 뇌도 똑같이 생각해.
운동, 일기, 심호흡… 그래, 그게 좋은 건 알아. 근데 그걸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라니까? 아침에 눈 뜨면 일하러 나가고, 퇴근하면 그냥 눈 감아야 하는 사람한테 “시간 좀 내서 너 자신을 돌봐” 이런 말 하는 건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좋아, 그럼 플랜 B 꺼내자.
러닝처럼 극적인 효과는 없겠지만, 바빠도 시도해 볼 수 있는 방법은 있어.
앞으로 연재할 글들에는 기본 사고망(DMN)과 실행 사고망(TPN)에 대한 언급이 자주 등장할 예정입니다. 매번 그 개념을 처음부터 설명하는 것보다는 최소한의 이해를 돕는 글을 먼저 정리해 두고 링크로 연결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해 이번 편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시점에서 이 두 사고망을 중심으로 다룬 한국어 자료는 많지 않지만,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연구가 이루어졌고 『ADHD 2.0』(2022)과 같은 대중서에도 소개되며 점차 관련 지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번 글은 주요 논문 자료를 참고하고, ChatGPT의 도움으로 내용의 정확성을 검토하여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