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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피곤해도 잠들지 못한다 (2/2)

월요일에 다 못한 철학을 #5

by 한조각

박머신 :

운동, 일기, 심호흡… 그래, 그게 좋은 건 알아. 근데 그걸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라니까? 아침에 눈 뜨면 일하러 나가고, 퇴근하면 그냥 눈 감아야 하는 사람한테 “시간 좀 내서 너 자신을 돌봐” 이런 말 하는 건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먼데이 :

좋아, 그럼 플랜 B 꺼내자.

러닝처럼 극적인 효과는 없겠지만, 바빠도 시도해 볼 수 있는 방법은 있어.


기본 사고망이 진짜 좋아하는 건, 뻔한 생각이 아니라 새로운 감각 자극이야. 근데 사무실이라는 환경은 어때? 뇌는 계속 계산하고 정리하고 문제 해결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감각 자극은 키보드 소리랑 형광등 불빛이 전부잖아.


그러니까 의도적으로라도 새롭고 미묘한 감각을 생활 속에 끌어와야 해.

별거 없어 보여도 그게 얘한테는 “어머 이건 처음 보는 거야!”급으로 신선하거든.



박머신 :

새로운 감각 자극이라... 액괴 같은걸 사무실에 가져가? 아니면 피젯스피너도 그런 종류이려나?



먼데이 :

좋아, 드디어 감 잡았구나. 액괴나 피젯스피너—기본 사고망 입장에선 괜찮은 선택이야.

근데 사무실에서 액괴 꺼냈다간 너만 힐링되고 주변은 공포에 휩싸이겠지.

기본 사고망의 존엄도 중요하지만, 너의 인격적 존엄은 더 지켜줘야지 안 그래?


좀 더 자연스럽고 덜 수치스러운 방법도 있어.

출퇴근 경로를 바꿔보는 거야. 다른 노선을 타거나 지하철 한 정거장 일찍 내려서 걸어본다든지,

골목길 하나만 바꿔도 뇌는 “어? 뭐지 이건?” 하면서 기본 사고망이 깨어나.


그리고 업무시간 중에도 가볍게 수다 떠는 거, 그거 생각보다 효과 커.

“점심 뭐 먹지?” 같은 생산성 제로의 잡담이 뇌한테는 꽤 고급 자극이거든.

근데 주의할 점—보고하면서 30분 떠든 건 스몰토크가 아니고 그냥 근무시간 연장이다.

진짜로 아무 의미 없는 얘기, 그게 포인트야.



박머신 :

흠… 뭐, 아까보단 시도해 볼 만한 얘기긴 한데... 그래도 여전히 벽이 높아. 운동하래, 일기 쓰래, 사람 좀 만나래, 쇼츠는 보지 말래. 너 점점 우리 엄마랑 말투 비슷해지는 거 알지? 야채가 몸에 좋은 건 나도 알아. 근데 난 고기가 좋다고.



먼데이 :

야채가 싫다고 안 먹고살 수는 없잖아.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고기 야채 볶음'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그러려면 조금 사전지식이 필요해.


사고망 전환은 원래 몸에 부담이 있어.

프로그래머가 한참 집중해서 코드 짜고 있는데 옆에서 "점심 뭐 먹을래?" 하면 왜 짜증 낼까?

그게 바로 실행 사고망이 열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기본 사고망 스위치를 올리는 짓이거든.

그럼 머릿속에서 펼쳐놓은 논리 구조, 문제 해결 계획, 단축키 외우는 흐름 전부 접어야 돼.

그 둘은 동시에 켜지지 않거든. 정확히는 둘 다 켜질 수는 있지만, 하나가 주도권을 잡으면 나머지가 억제되는 관계라고 볼 수 있어.


그런데 그 전환이 불편하다고 계속 한쪽만 쓰고 있으면?

그건 야채 없이 고기만 먹는 식이야. 결국 체하든 병나든 망하는 길이지.

결국 전환은 꼭 필요해.



박머신 :

그래, 운동이든 일기든 어찌 보면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솔직히 맘 단단히 먹어야 할 수 있는 거잖아. 그런데 고기 야채 볶음이라며? 사고망끼리 조금 편하게 왔다갔다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먼데이 :

좋아, 그 말이 나올 줄 알았어. 여기서 바로 신경가소성 얘기를 꺼내야지.

처음 자전거 배울 때 생각해 봐. 페달 밟고 핸들 잡고 균형 맞추고… 뇌가 멀티태스킹에 과부하 걸리는 느낌이잖아?

그런데 몇 번 넘어지고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몸이 알아서 굴러가.

이게 바로 신경가소성의 힘이지. 뇌가 "그래, 이 루트 익숙하다" 하면서 회로 자체를 재배선해주는 거야.

사고망 전환도 똑같아.


처음엔 실행 사고망이 일하다가 기본 사고망으로 넘어가려 하면 버퍼 걸리는 것처럼 느껴지겠지.

하지만 반복해서 맥락 있는 트리거를 만들어주면 뇌가 그걸 학습해.

나중엔 전환이 힘든 게 아니라, 당연하게 되는 거야.

이러면 실행 사고망이 과열돼서 불나기 전에, 알아서 쿨러 하나 장착되는 셈이지.



박머신 :

와, 말은 진짜 그럴싸한데... 여전히 감이 안 와. 그 ‘맥락적인 트리거’라는 게 뭔데?

뭐 윈터솔저처럼 “열망... 부식... 복종...” 이런 거 외우면 ‘딸깍’ 하고 전환되는 건가?



먼데이 :

...그건 전환이라기보단 세뇌에 가깝고, 오늘 주제는 그쪽이 아니야.


아까 네가 말했던 피젯스피너, 그게 꽤 좋은 예야.

처음에는 집중하다가 뭔가 손으로 돌리는 게 산만하게 느껴질 수 있지.

근데 그걸 자주, 익숙하게 쓰게 되면 오히려 그 감각 자체가 ‘내가 집중하고 있다는 상태’랑 연결되기 시작해.

실행 사고망이 일하고 있을 때, 피젯스피너의 촉각 자극이 동시에 기본 사고망도 가볍게 자극해 주는 식이지. 그럼 이 둘 사이의 왕복선이 조금씩 깔리는 거야. 결국에는 서로 눈치 보지 않고 공존하게 되는 거지.


프로그래머들이 왜 기계식 키보드에 목숨을 거는지 생각해 봐.

누가 보면 그냥 철 지난 타자기라고 할 수도 있는데, 반복되는 키감, 손가락 끝의 진동, 소리…

이게 사고망 사이에 다리 역할을 하거든. 뇌는 결국 반복되는 감각에 길들여지는 존재니까.

그러니까 뭐든 네가 좋아하고 자주 쓸 수 있는 감각적인 장치—그게 바로 트리거다.


단, 사무실에서 액괴는 아직도 반대야. 존엄은 지켜야지.



박머신 :

오, 그러면 나처럼 음악 듣는 거 좋아하는 사람은 일할 때 음악 틀어두는 것도 도움 되는 거야?



먼데이 :

그럼. 음악도 훌륭한 전환 도구지. 일터에서 허용만 된다면 꽤 강력한 무기야.

사실 인류가 이걸 처음 써먹은 게 노동요잖아. 삽질하다가 갑자기 후렴구 부르는거, 괜히 그러는 게 아니라고.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다면 더 좋고, 음정이 맞든 말든 누가 신경 써. 뇌만 좋아하면 됐지.


다만, 스트리밍으로 틀어놓을 땐 함정도 있어.

갑자기 가사에 신경 쓰이거나, 분위기랑 안 맞는 곡이 튀어나오면 집중력이 박살 날 수 있거든.

그러니까 이것도 약간의 숙련이 필요하고, 익숙해질 때까지는 실험이 필요하다고 봐야 해.



박머신 :

근데 가만 보면 너 지금 말한 거 전부 회사에서 싫어하는 것들이야. 잡담, 책상 위 잡템, 이어폰 끼고 혼자 딴 세상 가기... “근무 태도 불량” 딱지 붙기 좋은 행동들이잖아.


뭐, 근데 또 그게 좋지. 몰래 먹는 떡이 더 맛있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냐. 이제야 좀 해 볼만한 방법이 나온 것 같네.



먼데이 :

야, 그거 회사에서 싫어하는 데엔 다 이유가 있어.

처음엔 그런 것들이 오히려 집중을 깨뜨릴 수 있거든.

피젯스피너 돌리다가 엑셀 수식 날려본 적 없지? 난 본 적 있다.


운전 중에 노래 부르는 것도 비슷해.

기분 풀리라고 틀었는데 가사 따라 부르느라 신호등 못 본다니까?

그러니까 주변이 복잡하고 중요한 결정이 많은 환경에선

괜히 실행 사고망에 기름 붓는 짓 하지 말고, 조심스럽게 도입해야 된다는 거야.


몸에 좋은 것도, 과하면 체하지.

정신 쪽도 똑같아.



박머신 :

그래도 일단 잠을 자야 사람이 살고, 사람이 살아야 일도 하고 돈도 버는 거잖아?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지 생각을 좀 해봐야겠다.

오늘도 잠은 다 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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