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회로의 감옥 안에서만 자유롭다

회로인간 1 - 변화편 #3

by 한조각

인지 비용 절감은 생존의 문제였다


인지 비용은 어떤 행동을 할 때 소모되는 에너지와 스트레스의 정도로 결정된다. 실제로 뇌는 다른 장기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칼로리를 사용한다. 체중의 2%밖에 되지 않는 기관이 기초대사량의 20%를 차지한다는 사실은, 30만 년의 역사 속에서 늘 굶주려야 했던 인류에게 치명적인 생존 압박이었다. 이 때문에 우리의 본능은 뇌의 칼로리 사용을 최소화하도록 강하게 설계되었다.


문제는, 뇌에서 필요 이상으로 칼로리를 쓴다고 판단하면 다른 장기 때보다 훨씬 강한 스트레스 반응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무의식적으로 회피하려 한다. 에너지 사용량이 단순히 30배라고 해서 인지 비용이 30배인 것이 아니라, 체감상 그보다 훨씬 더 비싸게 느껴진다.


인지심리학에서는 인간의 이런 경향을 ‘인지적 구두쇠’라고 부른다. 그래서 우리는 대체로 점심 메뉴를 고르는 일을 귀찮아하고, 비밀번호 변경 알림에 불만을 품으며, 새 전자기기를 사도 매뉴얼은 읽지 않으려 한다.



생존 압박은 회로인간을 만들었다


‘인지적 구두쇠’인 인간은 원래 하던 것을 유지하려는 관성을 지닌다. 그래서 기존에 굳어진 생각의 방향을 바꾸는 일에도 큰 거부감을 느낀다.


1905년, 아인슈타인은 특수 상대성 이론을 통해 “시간은 관측자의 속도에 따라 다르게 흐른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발표했다. 당시 많은 물리학자들은 이를 “상식과 경험을 모독하는 주장”, “수학 장난이지 물리학이 아니다”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1926년, 막스 보른은 양자역학의 파동함수 확률 해석을 제안했다. 이는 “모든 물질은 관측 전까지는 확률로만 존재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며 거부감을 드러냈다.


사람은 경험이 쌓여 인지비용이 낮아진 분야일수록 기존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현대의 우리는 아인슈타인과 보른의 이론이 모두 옳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상대성 이론이 정설로 인정받기까지 15년이 걸렸고,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의 확률 해석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다. 그가 이 해석을 접한 지 30여 년이 지난 후였다.


이렇게 기존의 관성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정신적으로 받는 불편함을 1950대의 심리학에서는 '인지부조화'라고 설명하고, 2025년의 신경과학에서는 기존의 중요한 연결을 부수면 그 뒤에 종속적으로 연결된 것들을 광범위하게 재조정해야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스트레스라고 설명한다.


이런 현상은 전문 분야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인지부조화로 인한 스트레스는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종교적 신념 차이를 좁히지 못한 끝에 전쟁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가치관부터 사소한 취향조차 쉽게 바꾸지 못한다.


결국 인간은 이미 짜여진 회로의 감옥 안에서만 자유롭게 행동하는 존재다. 회로 안에서는 편안하지만, 회로 밖으로 나가면 고통이 따른다. 이것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회로인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지구상의 모든 생물 중 가장 적응력이 뛰어난 종이다. 회로가 한 번 굳어지면 바꾸기 어렵지만, 아예 바꿀 수 없었다면 우리는 지구 전체에 퍼져 살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은 ‘변하고자 하는 의지’로 변하는 것이 아니다. 회로가 변해야 비로소 행동이 변한다. 우리의 적응력은 이 회로 변화에서 비롯된다.


이 글에서는 ‘의지만으로 변화하는 법’이 아니라, 의지를 활용해 회로를 바꾸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