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로 인간 1 - 변화편 #2
뇌는 의미와 처리의 연결망으로 작동한다. 예를 들어 ‘커피’라는 의미는 ‘마시기’라는 처리와 연결되고, 맛과 향, 카페인 효과와도 연결된다. 하지만 보통 ‘바르기’와는 연결되지 않는다. 다만 바르는 커피가 발명된다면 새로운 연결이 금세 생길 것이다.
이건 단순한 은유가 아니라, fMRI 등의 기술로 확인된 ‘기능적 연결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되는 실제 뇌의 작동 방식이다. ‘커피’라는 의미를 담당하는 위치가 딱 특정되진 않지만,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 처리를 담당하는 전전두피질과 운동피질 등 주요 구조가 밝혀졌고, 우리가 무언가를 할 때 시냅스를 통해 물리적으로 연결되어 작동한다는 것이 규명됐다. 뇌과학에서는 이를 ‘연결주의(connectionism)’ 혹은 ‘신경 네트워크’라고 부른다.
정리하자면, ‘뇌가 무언가를 생각한다’는 것은 ‘의미와 처리, 혹은 의미와 의미, 처리와 처리를 물리적으로 연결하는 행위’다. 예를 들어 ‘커피’를 ‘마신다’로 연결할 수도 있고, 의미와 의미를 연결해 수학 문제를 풀 수도 있으며, 처리와 처리를 연결해 정교한 변화구를 던질 수도 있다.
이 연결이 복합적이고 긴밀할수록 고도의 작업을 더 쉽게 처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걷는 동작만 해도 200여 개의 근육을 이용해 몸의 무게중심을 다음 디딤발의 3~5cm 오차 안에 맞추도록 0.1초 이내에 판단, 지시, 실행하는 고성능 처리가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
뇌에도 체력이 있다. 생각하는 일은 이 ‘뇌의 체력’을 소모한다. 결정 피로, 주의력 고갈, 정서적 에너지 소진 등이 여기에 해당하며, 이 글에서는 이를 ‘인지 비용’이라 부르겠다.
인지 비용은 익숙한 일에는 매우 저렴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일에는 극도로 비싸다. 익숙한 일은 이미 잘 구축된 연결망을 활용하거나 유지보수만 하면 되지만, 익숙하지 않은 일은 회로를 새로 구축하며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걷기는 뇌에 피로를 거의 주지 않으면서도 엄청난 처리를 수행한다. 반면 일반적인 사람들은 단순한 인수분해조차 수 초 이상의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고, 몇 번 반복하면 금세 피로가 몰려온다.
대니얼 코일은 『탤런트 코드』에서, 자주 쓰이는 시냅스에는 ‘미엘린’이라는 절연체가 형성되어 효율을 비약적으로 높인다고 설명했다. 미엘린이 없는 경로는 누설전류로 인해 신호 전달이 약하거나 효율이 급감한다.
여행 갈 때 가스를 잠가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막상 출발할 때 잊는 경우가 있다면, 이는 해당 회로에 미엘린이 형성되지 않아 누설전류가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신경과학 연구에서는 미엘린 형성 정도에 따라 연결 속도가 최대 200배, 에너지 사용량이 최대 30배 차이 난다는 결과가 보고됐다. 우리의 뇌는 낯선 일을 처리할 때 최대 30배의 에너지를 더 쓸 수도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