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로인간 1 - 변화편 #4
우리가 회로인간이고 회로를 변화시켜야만 변할 수 있는 존재라면, 우선 우리의 회로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회로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작동방식을 가지고 있는지를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자.
뇌는 수십만 년의 진화를 거치며, 생존에 필수적인 5가지 과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회로를 설계해 왔다.
칼로리 연비
체중의 2%밖에 안 되는 뇌가 기초대사량의 20%를 소모한다. 이미 효율을 높이기 위한 진화적 조치가 있었지만 여전히 에너지 집약적이다. 생존 환경에서는 이로 인한 에너지 부족이 곧 치명적인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처리 속도
포식자나 위기 상황에서 반응이 1초만 늦어도 생존 확률은 급격히 떨어진다. 그래서 뇌는 생각을 거치지 않고도 즉각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빠른 경로’를 갖췄다.
적응력
환경과 위협은 수시로 변했다. 기후, 먹이, 사회 구조 변화에 맞춰 회로를 유연하게 재구성하는 능력이 생존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이 글에서 가장 주목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정보 선별
강하게 형성된 회로는 실제 행동으로 직결되므로, 새로운 정보는 비판적이고 보수적으로 수용해야 했다. 잘못된 정보는 곧 생존 위협이었기 때문이다.
불확실성 회피
사고가 난 뒤에는 이미 늦는다. 뇌는 예측 처리 시스템을 통해 가능하면 불확실성을 미리 줄이는 방향으로 작동하려 한다.
이 다섯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 현대 뇌과학이 발견한 두 핵심 기제가 바로 신경가소성과 편도체다.
신경가소성은 우리 몸이 자주 사용하는 회로의 연결성을 더 높이고, 자주 사용하지 않는 회로의 연결성을 낮춰서 에너지 사용을 최적화하려 하는 능력을 말한다.
앞선 글에서 ‘뇌는 의미와 처리의 연결망으로 작동한다‘고 언급한 일이 있다. 뇌가 일을 잘하도록 만드는 핵심이 ’연결성‘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스마트폰이라도 LTE와 와이파이의 연결 상태에 따라 속도가 확 달라지지 않는가? 우리 뇌는 CPU(전전두피질, 전두엽 등)나 저장장치(해마, 소뇌 등)를 마음대로 업그레이드할 수 없다. 대신, 회로를 잇는 ‘회선의 품질’을 유연하게 끌어올릴 수 있도록 진화했다.
연결성이 높아진 회로는 연비와 속도가 좋아진다. 거기에 없었던 연결을 새로 만들어내는 능력까지 더해져, 예상치 못한 위기 상황에서도 적응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편도체는 우리 몸의 ‘위기 대응 본부’다. 단순히 물리적인 위기에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위기에도 대처하도록 만들어졌다. 맹수에게 물리는 것도 생존의 위기지만 사기꾼에게 속아서 난처해지는 것도 동일하게 생존의 위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편도체는 우리 뇌의 불안과 의심을 담당하는 회로라고 할 수 있다. 실제 회로에 편입되려는 정보를 최대한 비판적으로 걸러내고, 잘못된 정보를 차단하며, 예측 불가능하거나 스트레스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을 피하게 만든다.
위기 상황의 처리 속도를 높이는 역할도 한다. 확실한 위기라고 판단되는 상황에는 다른 처리 기관을 전부 무시하고 단독명령을 내려서 아주 빠른 처리를 주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