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편도체는 왜 불판 위에 올랐나

회로인간 1 - 변화편 #14

by 한조각

지난 시간에는 내 편도체의 온도가 어떤 상태인지 간단히 자가진단 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오늘은 편도체가 뜨거워지는 원인이 무엇일지,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알아보자.



편도체 활성도에는 개인차가 있다


이 글에서는 지금까지 반복적으로 편도체 반응을 약화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현생 인류가 살아온 30만년의 시간 동안에는 편도체 반응이 다소 높은 개체의 생존율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생존본능이 발동해야 하는 긴박한 순간에 신속하게 행동하지 못한다면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체로 인간의 편도체는 약간 높은 온도로 세팅되어 있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편도체의 기저활성도를 결정하는 큰 축의 하나는 유전적, 기질적인 부분이다. 실제로 편도체 반응성을 높이는 유전자 변이의 형태를 밝혀낸 연구가 존재하며, 동일한 환경에서도 사람마다 서로 다르게 반응하는 일이 많다.


앞에서는 편도체의 기저활성도를 단순화해서 온도로 표현했지만, 사실 편도체의 반응성은 하나의 수치로 환원하기는 어렵다. 같은 자극이더라도 그 앞뒤의 정황이나 당시의 기분, 기억 속의 인상, 개인의 감수성 등 다양한 조건에 의해서 전혀 다른 반응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커피가 시큼하다’는 자극은 누군가에겐 기분 좋은 상큼함으로 느껴질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잡미로 느껴져서 역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바리스타를 꿈꾸는 사람에게는 왜 이런 맛이 나는지 분석하고 싶은 호기심을 일으킬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커피를 만든 카페의 사장이라면 “직원에게 분명히 이렇게 내리지 말라고 지시했는데, 또 이렇게 하네“라며 생존본능이 발동하여 편도체 폭주가 시작될 수도 있다.


이렇듯 하나의 동일한 자극이 취향과 맥락에 따라 완전히 다른 정서적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자신의 편도체를 통제하기 위한 첫 걸음은,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얼마나 위기라고 느끼는지를 파악하는 일이다.


그런 상황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미리 예측할수록, 생존본능이 발동하게 되는 상황으로부터 멀어질 확률이 높아진다. 알레르기를 가진 사람이 음식을 먹기 전에 식재료를 미리 살피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사람마다 체질은 다르지만, 우리는 누구나 심리적인 알레르기를 몇 가지는 품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의 가치관이 비춰주는 그림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위험한 환경은 생존본능을 일깨운다


아까 봤던 카페 사장님의 이야기를 조금만 더 해보자.

어젯밤, 가게 리뷰에 '커피 맛이 시큼해서 싫다'는 댓글이 달렸다. 오늘 아침, 아르바이트생에게 커피맛에 대해 신경 써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리고 점심, 카페 밖에서 마주친 단골손님께 몰래 부탁해서 테이크아웃으로 먹어본 커피 맛은 뭐라 말하기 어려운 시큼텁텁한 맛이었다.

갑갑한 순간에도 시간은 속절없이 흐른다. 커피 맛을 어떻게 되돌릴지 고민하면서 오후에 예정된 거래처와의 미팅을 위해 운전대를 잡는다. 오후의 수도권 도로는 평소처럼 정신없이 흘러가고 있다. 5분 넘게 기다리고 있는 고속도로 출구 대기줄. 옆 차선에서 새치기를 해온 차가 갑자기 머리를 들이민다. 평소라면 그냥 끼워줬을 테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은 기분이 아니다. 절대 들이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거칠게 액셀을 밟았고, 앗 하는 순간 접촉사고가 일어나고야 말았다. 수리비는 그렇다 치는데 미팅 약속시간은 어쩌면 좋을까.

이 분의 지금 편도체 온도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입장과 상황은 서로 다르겠지만 다들 비슷한 경험이 있지 않은가? 화나는 경험 뒤에 그 화로 인해 더 나쁜 상황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경험 말이다.


이번에는 카페 아르바이트생의 입장을 살펴보자.

얼마 전, 원하는 대학에서 떨어져 재수를 하기로 결정했다. 부모님께 더 짐이 되기는 싫어서 카페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시급은 좋은 편이지만 일은 힘들다. 사장님은 참견이 심하고 손님들 중엔 진상도 적지 않다. 아침부터 사장님은 어김없이 커피 맛에 대한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애초에 나는 바리스타가 아니다. 시킨 대로 만들었는데 왜 자꾸 내 탓을 하는 걸까.

점심시간, 직장인들로 가게가 붐비기 시작하니 사장님은 밖에 일이 있다며 자리를 떴다. 아, 오늘도 그 단골이 왔다. 바빠 죽겠는데 매번 대량으로 주문하고 중간에 자꾸 메뉴 바꿔서 주문 밀리게 하는 손놈. 오늘도 어김없이 막판에 커피 하나를 추가해 놓고는 빨리 안 준다고 성화다. 사장님한테는 저러지 않으면서 나 혼자만 있으면 저러는 게 너무 싫다. 요즘 스트레스로 모의고사 점수도 떨어지는 것 같은데 저런 손님은 안 받을 방법 없을까.

이 분의 편도체 온도는 어떨까? 사장님처럼 화가 난 상태는 아니지만, 아까 그 사장님 못지않게 아주 뜨거운 상태다. 무기력감과 자책이 서로를 키우며 일상을 조금씩 좀먹는 경험, 아마 대부분 한 번쯤은 겪어봤을 것이다.


이런 일은 보통 한시적으로 잠시 발생하고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어떤 경우에는 끊이지 않고 몇 달이고 그대로 유지되어서 결국 그 상태가 ‘일상’이 되어버리게 된다. 후천적으로 편도체 기저활성도가 높아진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일은 직장이나 가족, 사교모임, SNS 같은 인간관계 속에서 주로 일어난다.



생존에 지친 회로는 편한 길에 의존한다


편도체 기반의 판단 방식은 빠르다. 종합 사고에 비해 에너지 효율이 최대 30배 정도 높고, 원하는 결과를 얻을 확률도 의외로 높은 편이다. 그래서 이런 판단 방식에 친화적인 경험을 우리는 흔히 ‘직관적’이라 느낀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편도체 기반 판단으로 원하는 것을 이뤄본 경험이 있다. 대개는 어릴 적부터 울거나 떼를 써서 무언가를 얻는 과정을 통해 이런 방식을 익히게 된다. 나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성장의 일부다.


문제는, 사람이 위기에 몰리면 과거의 성공 방식을 되풀이하려는 성향이 강해진다는 점이다. 그 결과 몇 번의 성공만으로도 그 사고방식을 ‘옳은 것’이라 믿게 된다. 이를 기억 기반 확증편향이라 부른다. 실제 성공률이 낮아도, 한두 번의 성공 사례가 누적되면 신념은 점점 단단해진다.


생존위협으로 인해 편도체가 뜨거워진 사람은 이런 확증편향의 굴레에 갇히기 쉬운 심리상태가 된다. 생존을 위협받으면 에너지를 적게 소모하면서 빠르게 옳은 판단을 해야 하는데, 이 어려운 조건을 새로운 방식으로 맞추려는 시도를 하는 건 비합리적이라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굴레에 갇힌 사람은 비슷한 선택을 반복하면서 신경가소성을 일으켜, 기존 생각에 더 강한 관성을 가지게 된다.


마지막으로 카페 사장님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최근 매출이 떨어져 다음 달 임대료가 걱정이다. 대학 앞의 목 좋은 자리라 유동인구는 충분한데, 아르바이트생이 변할 때마다 매출이 크게 출렁인다. 대학생 손님들은 리뷰를 적극적으로 쓴다. 그래서 리뷰를 기반으로 아르바이트생의 잘못을 지적하고, 안되면 바로 교체하는 방식이 지금껏 가장 합리적이고 효과가 좋았다. 요즘 세대는 확실히 지적하지 않으면 일을 제대로 하질 않으니까.

그런데 요즘엔 이상하게 일하겠다는 사람도 없고 학생 대상 매출도 예전만큼 나와주질 않는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일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예전에도 이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해 왔으니, 이 방법이 최선이다.

사장님의 문제는 무엇일까. 본인은 잘 모를 것 같은데, 대학 내부 커뮤니티는 답을 알고 있을 것 같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