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도체의 언어로 대화하기

회로인간 1 변화편 #16

by 한조각

지난 시간에는 뜨거워진 편도체를 어떻게 진정시켜야 할지에 대해 알아봤다. 진정을 위한 대피소를 찾고, 자유를 박탈당했다고 느끼지 않도록 내 선택지를 미리 확보해 두는 방식이었다. 오늘은 편도체와 친하게 지내면서 편안해지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아보도록 하자.



편도체는 논리로 설득되지 않는다


이미 뜨거워진 편도체는 논리만으로 설득하는 게 불가능하다. 진화적으로도 그렇게 되어야 생존에 유리했다. 당장 눈앞에 호랑이가 으르렁 하는데 누군가가 ’저 호랑이는 사람을 물지 않는 호랑이야!’라고 말한다고 바로 긴장이 풀리는 몸 구조라면 생존에 문제가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편도체의 언어로 접근해야 한다. 그저 논리와 말뿐이 아니라 정말 안전한 상황에서만 발생하는 체감적 경험 말이다. 가장 쉬운 방법은 심호흡과 명상이고, 말랑한 스트레스볼이나 피젯스피너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장난감이다. 위기상황에서는 절대 할 수 없고, 편안한 상황에서만 할 수 있는 무의미한 행동을 하는 것이 핵심이다.


뇌는 그런 행동을 통해 ‘지금은 안전하다’는 신호를 감각적으로 학습한다. 그리고 안전한 상황을 반복적으로 경험한 편도체는 신경가소성에 의해 스스로 조금씩 온도를 낮춰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애플이나 삼성의 스마트 워치를 보면 심호흡을 돕는 앱이 기본으로 제공되고, 많은 전문가들이 심호흡의 효과를 언론에 전파하고 있다. 심호흡의 효과를 찾아보면 대체로 ‘몸의 긴장을 이완시켜 스트레스를 완화해 건강에 좋다’는 식으로 애매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실제로 심호흡을 주기적으로 하는 사람들의 수는 임상적 결과의 놀라움에 비해 무척 적은 편이다. 심호흡의 가장 기본적인 효능은 편도체를 억제해서 이성을 담당하는 전두엽 영역의 숨통이 트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주기적으로 반복하면 사무나 공부 등, 두뇌노동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 그리고 그 효과는 애플과 삼성이 인정할 정도로 확실하다 할 수 있다.


심호흡의 효능이 실감되기 시작한다면 편도체를 달래는 다른 방식에도 관심을 가져보자. 예를 들어 마음챙김 명상은 절간에 앉아서 졸음과 다퉈야만 가능한 게 아니라, 출근길에 걷는 5분 동안에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업무에 영향이 가지 않는 한 피젯스피너나 스트레스볼 같은 감각형 장난감도 도움이 된다. 노동요를 흥얼거리며 마음을 느슨하게 만드는 것도 옛 성현들이 이미 발견해 둔 ‘감각의 명상’이라 할 수 있다.



편도체의 판단을 일부러 방해하라


이미 신경가소성으로 인해 편도체에 의존하게 된 사람은 판단이 필요한 순간, 사고의 고속도로가 뚫린 것처럼 빠르게 편도체 의존적인 결론을 도출한다. 그리고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그 결론을 바꾸는 게 무척 어렵다.


엄청난 힘을 지니는 코끼리를 작은 말뚝에 묶어두는 방법이 있다. 코끼리가 어릴 적에 말뚝에 묶어두고, 말뚝을 뽑으려 할 때마다 아주 강한 폭력을 가하는 것이다. 그러면 말뚝을 뽑으려는 행동이 생존에 위협적이라는 정보가 편도체 기반 회로에 각인되고, 성체가 되어 충분히 힘이 강해져도 무서워서 말뚝을 뽑지 못한다. 편도체의 작동 방식은 대부분의 척추동물이 비슷하게 공유하고, 인류의 편도체도 코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살다 보면 ‘나에게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하는 것들과 마주하는 경우가 있다. 편도체에 갇힌 사람은 그 상황에서 뛰어넘는 선택을 하기가 너무 어렵다. 그게 뽑히는 말뚝인지, 당장 세상을 무너뜨릴 핵폭탄의 스위치일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럴 때엔 다른 사람들의 시각을 참고하는 것이 유용하다.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건상 사람의 의견을 얻기 어렵다면 AI의 의견을 참고하는 것도 혼자만의 판단보다는 좋은 방법이다.


그런데 평소에는 타인의 말을 들어본 일도 없다가 말뚝 앞에서 결정을 해야 할 때 갑자기 그렇게 하려면 쉽지 않다. 그래서 평소에 소소한 일에서부터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행동해 보는 연습을 해 두는 것이 좋다. 당장 오늘 점심 메뉴부터 동료에게 맡겨보는 건 어떨까? 맛있으면 내 메뉴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맛없으면 평소엔 먹지 않았을 음식 하나를 경험해서 내 경험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다.


항상 말뚝에 묶여 사는 코끼리는 사실 ‘말뚝을 뽑지 않는다’는 판단 자체를 내가 언제 하고 있는지도 모를 수 있다. 인생의 중요한 선택이더라도 일상 속에서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내 판단이었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당연히 하던 일들’을 의식적으로 바꿔보는 행동이 필요하다. 편도체 의존 사고의 고속도로에 일부러 신호등을 세워, 그 길이 맞는지를 스스로 묻게 하는 것이다.


출근길에 한 정거장 일찍 내려서 걸어보기, 매일 듣던 음악 장르 바꿔보기, 급하지 않은 결정이라면 내일 아침에 결론내기 등등 다양하다. 무엇이든 당연하게 느껴왔던 루틴을 조금 무너뜨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너무 사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소한 것에도 적용할 수 없는 행동을 생존의 위기 앞에서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신경가소성은 선택의 중요도보다 행동의 반복에 반응한다. 그렇게 사소한 변화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 날 생각 없이 발로 툭 밀어 본 말뚝이 맥없이 넘어지는 일이 생길 수도 있지 않겠는가.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