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신경 전달 물질 이야기 (1/3)
뇌는 대뇌, 소뇌 등의 물리적인 기관으로 이뤄져 있고 각 기관들의 사이는 신경들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우리들의 뇌는 신경 안에서 전달되는 전기신호를 이용해서 마치 잘 짜여진 회로처럼 생명활동을 유지하기 위한 과정을 끊임없이 정교하게 이어간다.
신경 전달 물질은 이 정교한 회로가 움직이는 방식을 조금 바꿔주는 배경음악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신나는 음악이 들릴 때의 기분과 로맨스 넘치는 발라드가 흐를 때의 판단이 다른 것처럼 뇌 안에 어떤 신경 전달 물질이 영향을 끼치느냐에 따라 우리는 동일한 자극에도 다른 결정을 내리게 된다.
우리 뇌에 흐를 수 있는 배경음악의 장르는 수십 종이 넘는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크게 좌우할 수 있는 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나는 그중에서도 가장 영향력이 강한 오피오이드, 도파민, 세로토닌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오피오이드는 나머지 둘에 비해 가장 낯선 이름일 것이다. 만약 알고 있더라도 펜타닐이나 모르핀처럼, 흔히 마약으로 알려진 물질과 함께 언급되었던 기억을 떠올릴 가능성이 크다.
모르핀과 펜타닐은 의료계에서 강력한 진통제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전쟁에서는 총상으로 고통받는 병사에게 모르핀을 주사해, 극심한 통증을 줄여주는 식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여기에서 연상할 수 있는 오피오이드의 가장 분명한 속성은 통증을 억제해 준다는 점이다.
그런데 오피오이드는 피부나 장기에 직접 작용하는 물질이 아니라, 뇌에 작용하는 신경 전달 물질이다. 그래서 신체적 통증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고통까지 함께 완화하는 기능을 한다.
심리적인 고통에는 무엇이 있을까? 외로움이나 불안, 흥분, 그로 인한 긴장과 스트레스 같은 것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오피오이드는 이런 상태에서 발생하는 고통을 일시적으로 줄여주기도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삶의 이유를 단단하게 만들어 이러한 고통을 견딜 수 있도록 돕는 내성을 형성하는 역할도 한다.
이쯤 되면 뭔가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물음표가 떠오를 것이다. “물질이 삶의 이유를 만들어줄 수 있다고? 요즘 삶을 이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게 진짜 있었다면 이미 약국에서 처방하고 있지 않을까?”
아쉽게도 그렇게는 되지 않는다. 그건 마치 10km 밖의 사람에게 잔잔한 음악을 들려주려는 시도와 비슷하다. 소리가 제대로 잔잔하게 전달될 지부터 의문이고, 조금만 조절에 실패하면 음악은 소음이 되거나 심지어 청력을 해칠 수도 있다. 몸 바깥에서 뇌내 전달 물질로 인생을 바꾸겠다는 시도는 이 정도의 정교함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성공할 수 없다. 결국 남은 방법은 방 안의 사람이 직접 음원과 스피커를 구해서 듣도록 하는 것뿐이다.
오피오이드는 언제 자연적으로 분비될까? 안락함과 유대감을 느낄 때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 몸을 감싸는 온기에서 오피오이드가 분비된다. 가족이나 공동체 안에서 강한 유대감을 느낄 때에도 마찬가지다. 더 나아가, 그 유대감을 바탕으로 내 이익을 포기하고 공동체의 사람을 위해 뭔가를 기여할 때에도 작용한다. 심지어 누군가가 그런 희생적인 행동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오피오이드는 분비된다. 감동적인 이야기가 우리 마음을 흔들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오피오이드는 강한 공동체 안에 안정적으로 속해 있다는 감각, 즉 자신이 보호받고 있으며 생존 확률이 높아졌다는 느낌이 들 때 발생한다. 귀여운 동물이 인간을 따르는 모습을 보며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종을 넘어선 공동체가 형성된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매우 강한 전략적 우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길 수 있다. 현대인들은 쇼츠 등의 미디어로 귀엽거나 감동적인 영상을 많이 보는데, 그러면 과거에 비해 더 많은 오피오이드가 분비되고 있는 게 아닌가? 지금까지의 흐름만 놓고 보면, 현대인들이 보이는 불안 양상은 오히려 오피오이드가 결핍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의 관문이 있다. 바로 편도체다. 편도체는 항상 우리 뇌 속에서 기본적인 불안 신호를 만들어내며 외부의 자극이 ‘진짜 내 생존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인지‘를 비관적으로 판단하는 역할을 한다. 남의 칭찬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타인에게 들은 정보를 의심하도록 만드는 기본적인 원동력 역시 편도체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편도체는 이렇게 분류한 정보를 바탕으로, 진짜 내 생존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자극에는 사고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줄 수 있을 만큼 강하게 작용하도록 한다. 반대로 그렇지 않은 정보는 그냥 흘려보낸다.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편도체가 속으면 곧바로 생명의 위협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편도체를 속이는 것은 아주 어렵다. 적어도 내가 가짜라고 인식하고 있는 한 편도체는 절대 속지 않는다. 편도체가 속았다는 것은, 나도 그게 진짜라고 정말 믿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거짓 없이 실제 우리의 환경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현대사회는 사람에게 공동체 안에 안정적으로 속해 있다는 감각을 주고 있는가? 내가 속한 공동체는 이익을 포기하더라도 나를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가? 나는 타인에게 그렇게 하고 있는가? 그렇게 하는 것이 내 생존에 도움이 되는 행동이라 믿는가?
물론 과거 사회에서도 이런 행위를 아무에게나 하지 않았다. 다만 같은 동네에 사는 이웃끼리,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끼리, 같은 성씨를 공유하는 사람끼리, 적어도 가족끼리는 이런 끈끈한 유대를 이어가며 살아갔다. 이런 관계망 속에서 살아간 사람들은 전쟁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도 풍족한 현대 사회에서의 기대치보다 더 높은 생존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 이야기는 현대 사람들이 과거에 비해 정이 없다는 식의 단순한 평가를 하고자 함이 아니다. 우리가 처한 사회적 환경이 과거와 같은 사고방식으로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어렵게 바뀌어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그 환경은 우리에게 오피오이드 결핍에 가까운 상태로 살아가도록 만든다. 문제는 인류가 너무 오랫동안 오피오이드를 통해 삶의 이유를 만들어내는 환경에 적응해 왔다는 점이다. 그에 비해, 환경의 변화는 너무 빠르게 일어나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