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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eiricbobo Jan 30. 2017

라라랜드, 꿈이 꿈일 수 있도록

제 꿈은 대통령이에요!

초등학교 3학년 어느 반. 반장 되어 보이는 한 아이가 일어나 발표한다. 자못 근엄하기까지 한 아이의 표정에도 불구, 같은 반 아이들도 질문한 교사도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그저 때 되면 사라질 유행성 감기 정도로 여길 뿐.

불행히도 꿈은 이 아이에게만 악성 바이러스인 것이 아니다. 타인의 꿈을 마주하는 모두가 백신을 연구하는 박사가 되어 바이러스를 현미경으로 째려보고 또 분석한다. 어디 그뿐인가. 꿈에 대한 주저리 주저리는 아프면 으레 나오는 기침이고 현실에 대한 불만은 39도 이상의 고열이어서 환자는 차디찬 현실에 더하여 주위의 반대까지 부딪히는 따끔한 주사 한 방을 처방받게 된다. 꿈을 얘기하고도 박수를 받은 마지막 사람은 아마 마틴 루터킹쯤 될 것이다.

반갑게도 라라랜드는 꿈을 얘기하는 영화다. 어쩌면 달팽이관 닳도록 들어온 클리셰 주제일 수 있지만 라라랜드가 택한 문학적 서사는 결코 흔하지도 뻔하지도 않다. 미아와 세바스찬은 만남의 순간부터 서로가 서로에게 꿈을 향한 나침반이었고 불을 밝혀주는 등대였다. (영화 속 재즈카페의 이름도 Cafe Lighthouse이다.) 한 명은 숱한 도전의 반복된 좌절에 주저하고 다른 한 명은 꿈을 잊은 채 엉뚱한 곳에 서서 매던 중에 마주쳐 상대방의 원동력이 되고 추진력이 되어주며 사랑을 키워간다.

오프닝, 정체가 풀린 도로에서 멀뚱히 서 있던 미아에게 세바스찬이 경적을 울리던 장면은 전체 플롯을 함축적으로 나타낸다. 도로에서 그랬듯 세바스찬은 결정적 순간마다 계속해서 미아에게 앞으로 나아갈 것을 주문한다. 재즈를 향한 본인의 열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모습이 그렇고 자신감 없는 말을 내뱉는 미아에게 루이 암스트롱처럼 역사를 만들어내라는 모습도 그러하다. 나한테 지금 오디션은 그만 보고 역사를 만들라는 얘기냐고 반문하는 미아에게 세바스찬은 말한다.

내 역할은 다 했네.

슬프게도 이 한마디는 강력한 선언이자 예언이 되고 만다. 꿈과 연애라는 꿩과 알은 얻을 뻔한 둘은 꿈과 연애 간의 복잡한 다중상관계수로 꿩과 알을 모두 놓친다. 정말이지 얄궂지 않을 수 없다. 그러던 찰나, 세바스찬은 자신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는 미아를 찾아가 오디션을 보게끔 설득해낸다. 이는 세바스찬이 울린 가장 우렁찬 경적소리가 되어 미아도 에 응답한다. 오디션 후 언덕에서 미아가 세바스찬에게 관계향방세바스찬은 꿈을 이룰 기회가 오거든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자리에서 그들은 상대방을 향한 영원한 사랑을 고백하지만 동시에 것이 마지막 대화임을 직감한다.

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미아는 누군가의 아내이자 한 아이의 엄마가 된다. 남편과의 시내 데이트 중 미아는 우연히 들린 한 재즈바의 간판을 알아본다. 머지않아 청중 속 미아를 발견한 세바스찬은 얼마간의 침묵 후에 한 마디로 모든 감정을 대신한다. 달리 할 말이 없어서 고육지책으로 꺼낸 말일까. 어떤 연유가 되었든 세바스찬이 던진 그 한 마디가 관객의 마음 깊숙이 파고든다.
"셉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로맨스는 비록 실패로 끝이 났지만 끝까지 아름다웠다. 앞뒤 재지 않고 달려갔으나 서로에게 각기 다른 길이 놓여 있었을 뿐. 그 길의 끝에서 미아와 세바스찬은 꿈을 이뤘고 원하던 바를 쟁취했다. 어쩌면 연애의 흥망성쇠는 연애 자체의 결말로만 단정 지어 얘기할 수 없는 것인지 모른다. 함께 한 시간이 온전히 서로를 위한 시간이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 아닐까. 비록 그 시간이 네 계절에 불과하지만 서로가 아니었다면 미아와 세바스찬은 꿈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계속해서 방향을 제시한 등대로서 그리고 적시에 울린 경적으로서 그들의 역할은 그 어떤 '성공한 연애'보다 성공적이지 않았을까.

이렇게 라라랜드는 아름다운 화면과 매력적인 시퀀스로 관객을 매료시키고 또 한편으로는 엔딩크레과 함께 딸려 오는 긴 여운으로 뒷골을 강타한다. 영화는 우리에게 사랑에 대한 고민거리를 제시함과 동시에 방황하는 이에게는 확신을 가질 것을 안주하는 이에게는 정체성을 지킬 것을 주문한다. 어느덧 3학년 아이의 발표가 끝나고 당신의 차례가 왔다. 자, 꿈을 이야기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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