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꿈꿔왔던 것들이 다 이뤄진 세상을 상상해봤다
문득 내게 궁금한 것이 생겼다. 사람들이 그럭저럭 참고 견딜만한 것들 중에 못 참는 것들이 많았던 나는, 남들이 고심 고심해서 선택하고 수많은 고민 끝에 결정하곤 하는 큰 일(?)들이 오히려 수월했다. 결혼, 출산, 육아 등등. 이것들에 대해서 큰 고민 없이 박력 있게 계획을 세우고 그 뜻을 밀고 나갔던 것 같다. 나는 왜 그런 걸까.
내가 좀 더 본능에 충실한 동물과 같은 인간이라 그럴 수도 있다. 미식에 대한 욕망이 강하고 수면욕이 충족이 안되면 이성적인 판단이 흐려지는 그런 사람이다. 나에게 그런 본능이 충족이 안된다는 건 거의 생과 직결된다는 느낌을 준다. 자연재해 블록버스터 영화에 나오는, 자연의 큰 변화를 미리 감지하고 대이동 하는 동물들처럼 강한 위기의식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인 동일본 대지진 원전사고가 너무나도 무섭게 느껴졌었다. 당장에 내가 체르노빌 피해자가 된 것 같은 아니 나보다도 내 아이들이 그런 고통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눈앞에 닥친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농업이 중요했다. 그래서 제로에너지가 중요했다. 어릴 적 살았던 7년의 추억으로 실제 고향도 아니면서 고향처럼 그리워하는 일본을 그 사고로 잃은 것과 같은 느낌을 한국에서도 느끼고 싶지 않았다.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라는 책이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내게 한국은 아직 살기 편한 좋은 나라다. 이미 익숙해져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지상낙원 같은 하와이에서 영주권이 나오더라도 한국이 잘 살게 되도록 조금씩 뭔가를 하고 싶다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영화 '패신저스'는 미래의 초호화 유람선 속 우주여행을 구현한 그래픽도 큰 볼거리지만 인간에게 부족함이 없어진 미래에 우리가 진정 바라는 게 무엇일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남자 주인공이 지구를 떠나 다른 행성으로 가는 이유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대한 갈망이었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신하는 시대에 기계가 고장이 나면 그것을 고쳐 쓰는 것보다 새로운 걸 생산하는 비용이 훨씬 저렴해진다는 것은 인간에게 비극일지도 모른다. 기계를 고치는 엔지니어였던 남자 주인공은 지구에서 '필요 없어진 자신'을 크게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새로운 행성에 가면 새로 만들고 고쳐 쓰고 하는 자신의 능력이 필요할 테니 그곳으로 떠나고 싶어 진 것은 그에게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가족들과 지금까지의 지구에서의 생활을 내팽개쳐서라도 그가 가지고 싶었던 것은 자신이 '필요한 인간'이라는 자각과 인정이었다.
나 역시 세상을 좀 더 나아지게 만드는데 내가 일조하고 싶은 걸 지도 모른다. 그래서 너무나 복지가 잘되어있는 북유럽이나 그 외 다른 나라에 대해 알고는 싶지만 그곳에 가서 살고 싶은 욕구는 그리 많지 않다. 더군다나 북유럽은 낮이 짧고 추운데 나에게는 그게 큰 행복을 잃는 것과 같다. 따사로운 햇살과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복지를 교환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내가 원래부터 관절이 그리 좋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날씨가 좋은 샌프란시스코나 하와이가 북유럽 같은 복지를 가진 나라이고 언어에 대한 걱정, 집 걱정, 의료비 걱정 등이 없다면 난 그곳에서 살고 싶을까?
내가 살아왔고 내게 소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한국을 나아지게 하는데에 관심이 돌아갈 것 같다. 너무나 완벽한 천국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