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알고 모르고가 큰 차이를 만든다
우리는 문제에 부딪혔을 때 그 문제의 ‘원인’을 찾고자 한다. 그러다보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어떨 때는 그 원인과는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해결책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문제 해결은 쉽지 않다. 그리고 그 문제’만’ 바라보아서는 안된다.
일본이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를 잘 나타내주는 게 <신일본>(シン・ニホン, 신・니혼, 2020년 출간)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아직 국내에는 발간되지 않은 책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원서로 읽고 있다. 이 책은 16만부를 돌파한 베스트셀러에다가 독자가 고른 비즈니스 서적 그랑프리 2021에서 종합 그랑프리 + 정치경제부분상을 수상했다. 저자인 아타카 가즈토는 이전에 <세계의 엘리트는 왜 이슈를 말하는가>(2014 국내발간, 일본에서는 30만부 돌파 베스트셀러)라는 책을 2010년에 썼고 예일대 뇌신경과학 박사출신에 전 맥킨지 전략 컨설턴트였다가 현재 야후재팬 CSO이다. 매우 똑똑한 사람이고 많은 이들이 그의 책을 읽었고 공감했다. 하지만 공감만으로는 부족하다. 누군가가 깊은 울림을 느끼고 ‘실행’에 나서야 하는데 문제 해결 방안만 떡 하니 제시되었다고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머리를 맞대고 생각하고 고민하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실행없이는 탁상공론이 될 뿐이다.
Newspicks라는 일본에서 가장 핫한 신생 뉴스미디어에서도 자주 초대되어 일본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일본 최정상의 똑똑한 이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뉴스픽스 영상은 일부 요약본만 유튜브에서 무료이고 유료버전은 구독료를 내야지만 볼 수 있다. 좋은 얘기를 더 한정된 사람만 보겠다는 얘기다. 물론 구독모델없이 양질의 콘텐츠를 계속 생산해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다들 땅파서 장사하는 건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문제일수록 전국민이 알아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는걸까. 유튜브라는 게 괜히 나온게 아니다. 영상에서 수익화를 하지 못한다면 뉴스픽스도 수익의 다각화를 고민해봐야 한다. 미디어 채널이라고 해서 콘텐츠만 팔아야한다는 법은 없다.
오늘 하려던 이야기는 사실 이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이 가진 딜레마에 대한 이야기다. 이 <신일본>에서 일본이 재도약하기 위해서는 2가지가 필요하다고 이 책에서는 말한다. 망상하는 힘. 그리고 일본이 기존에 잘하던, 퍼스트 스타터가 한 일을 ‘일본화’시키는 전략이다. 일본은 원래부터 퍼스트 스타터가 아니었으니 현실을 받아들이고 잘하던 것에 집중하자는 얘기다. 근데 사실 더 중요한게 있다.
바로 시간을 도둑맞지 않기 위해 초집중자가 되는 것이다. 이게 무슨 이야기냐하면 니르 이얄의 <초집중>을 읽으면 무릎을 탁 치게 된다. 4차 산업 혁명의 시대에 우리에게 무엇보다 우선해서 필요한 것은 코딩능력이나 창업 정신이나 창의력이 아니다. 바로 in-distractable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일본 내수 콘텐츠시장은 재미있는 걸로 넘친다. 오죽했으면 일본에서 어린시절 7년만 살았던 나조차도 한때는 돈이 많다면 과거 못봤던 일본 콘텐츠만 보고 살아도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니 말이다. 일본에서 평생 산 일본 국민들은 오죽할까. 버라이티에 드라마에 개그프로에 다큐에 애니에 만화책에…질릴 새도 없이 먹고 콘텐츠 소비만 해도 짧은 인생이다.
하지만 거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의 인생은 유한하다. 누군가는 문제해결을 해야만 한다. 새로 나온 ‘귀멸의 칼날’ 시리즈를 정주행하는 것과 일본의 미래를 위해 무언가에 몰입하는 시간을 trade-off하는것이다. trade-off란 영어 사전적 의미로는
Trade-off : a situation in which you accept some thing bad in order to have something good.
‘좋은 것을 얻기 위해 나쁜 것을 받아들이다’라는 의미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만화를 보는 시간을 포기하고 더 중요한 일에 몰입하는 게 ‘나쁜 것, 괴로운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더 중요한 일이란 내가 가장 잘 안다.
물론 미국에도 한국에도 중국에도 인도에도 재미난 콘텐츠는 많이 있다. 하지만 일본과 같은 상황은 아니다. 일본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화려했던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하면서도 원폭이라는 비극을 경험한 나라다. 세계를 평정하겠다 자신감에 넘쳤다가 그 기세가 꺾였고 종전 후 또다시 발전을 이루어 버블을 맞이하기 전까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나라다. 그들과 조금이라도 같은 경험을 한 나라가 전세계에 존재할까? 미국은 원폭을 맞은 경험이 없고 전쟁에서 처참하게 진 역사가 거의 없다. 전쟁에서 패했더라도 자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패배해서 철수한 것이라면 몰라도 말이다. 그렇기에 미국이 경험한 2001년도의 9.11 테러 사건은 미국 자국민에게 큰 충격과 상처와 공포를 안겨주었다. 하지만 그것과 일본은 또 다른 맥락이다. 미국이 테러로 인해 외부의 적과 자국에 있는 타민족에 대한 경계가 강화되며 자국우선주의가 강해졌다면, 일본이 경험한 상실과 공포는 국민들의 무력감을 만들어냈다. 화려하게 폈다가 한순간에 지는 벚꽃과 공동 운명체로 여길만큼 말이다.
많은 예술가들이 그런 삶을 살았고 그런 삶에 대해 많은 일본인이 아름다움을 찾아낸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장인정신과 한가지에 몰입해서 무언가를 이루어낸 이들에 대한 존경심은 사그라들 줄 모른다.
그런데 현대의 일본은 과연 어떨까. 과거 예술가, 사상가들의 아웃풋을 소비만 하며 편의점에서 알바하며 살아도 그럭저럭 살아지는 삶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무언가에 몰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이 점점 줄어드는 게 아닐까.
아직도 일본에는 수많은 거장들이 탄생한다. 그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주목받는 거장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삶에서 무언가에 몰입하고 싶은 청년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냐는 것이다.
창업, 경제적 자유 등의 꿈을 꾸는 청년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창업 정신을 응원하는 이스라엘같은 나라(후츠파 책 참고)는 물론 한국에서도 그런 열정을 느낄 수 있다. 물론 한국의 수많은 청년들도 공무원 시험을 통해 안정적인 직장만을 꿈꾸고 오랜기간동안 취업 활동으로 몸도 마음도 피폐해진 이들이 많다. 온나라를 강타한 부동산,주식 열풍 덕에 20대까지 주식에 관심을 갖게 된 2020년과 2021년은 참 놀라운 해라고도 할 수 있다. 돈에 대한 관심의 시작에는 포브스 코리아의 2020년 9월호 표지를 장식한 신사임당이라는 유튜버와 동학개미운동이 일어나는데 일조를 했다고 할 수 있는 존리 대표의 영향이 컸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모든 젊은이들이 무력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비율로 따지면 상당히 많은 청년들이 다른 나라 청년들에 비해 어제의 자신보다 도약하고자 하는 마음이 덜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카타의 유튜브대학’의 등장은 참으로 반갑다. 현재 기준 413만명 구독자에 기본적으로 20~50만회 조회수는 기본으로 깔고가는 일본 인기 개그맨인 나카타 아츠히코의 교육 유튜브 채널이다.(나도 찐팬이다) 하지만 그걸 보고 있는 구독자 중에 몇 퍼센트가 ‘행동’으로 옮길지는 알 수 없다. 보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니 말이다.
일본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 되도록 많은 이들이 초집중자가 될 수 있게 ‘내부계기’를 살펴보는 것이다. 문제만 제기하고 토론만 하는게 아니라 진짜 움직이려고 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초집중자 집단말이다. 그걸 해내지 못한다면 일본은 자신이 만든 콘텐츠 속에서 서서히 잠식되어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