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하지도 않았던 변화들
아날로그 글쓰기에 대해 별 생각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 타자로 치는 게 더 빠르기도 하고 왜 굳이 펜으로 종이에 써야하지?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날로그 글쓰기와 블로그 포스팅 둘다 중요하다는 걸 절!실!하게 느낀다.
2021년 1월 11일의 나는 이런 글을 노트에 처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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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1. 11 (월)
새벽에 글부터 쓰다니 옛날에는 생각도 못했던 건데 신기하다. 예전보다 조급함은 없어진듯하다. 책을 더 많이 읽기보다 내가 읽을 수 있는 시간만큼 읽어서 본업에 적용해야지하는 마음이 생겼다. 좀더 장기적인 계획에 대한 제대로 된 전략을 짜야한다.
1) 본업에 쏟는 시간을 더 줄이면서 효율을 높이고
2) 집을 미니멀하게 만들어 창의력, 영감이 샘솟게 꾸미고
3) 재즈 공부
4) 미술공부와 미술관
5) 미식, 요리
6) 세계사 공부
7) 과학,수학
8) 돈 공부, 직접투자
이제 4월이면 장기적금을 부었던 돈이 만기가 되어 꺼낼 수 있다. 그러니 얼른 돈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그냥 은행에서 썩히게 놔둘 수는 없다. 그런데 직접 투자가 너무 무섭다. 그리고 공부량도 어마어마해서 엄두가 안난다.
9) 그림그리기
10) 영어로 책도 써야 한다
11) 회계, 세무, 재무제표도 해야한다
나는 왜 이렇게 다 혼자 하려고 할까?
12) project financing 때문에 해야 하는구나. 일단 공통된 걸로 묶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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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아날로그 글쓰기의 마법은 머릿속에 있는 헛소리를 다 꺼내 쓸 수 있다는 점이다. 위의 내용은 내가 그날 쓴 내용의 1/3도 채 되지 않는다. 그만큼 1월의 나는 머릿속이 복잡했다는 소리다.
지금보니 나는 여기서 필요없는 것을 많이 비워냈고 그렇게 어렵다고 생각했던 직접투자가(게다가 미국주식!!!) 재미있어졌다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올해 1월의 나는 상상도 못했겠지만 말이다. 머릿속에 있는 것은 다 꺼내야한다. 불안도 두려움도 걱정도 잡념도 모두. 그래야 진짜 집중해야할것을 찾아낼 수 있다.
이렇게 매일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펜으로 끄적이다보니 이제는 오늘 해야할 일에 대해 1~2줄 정도로 정리가 되고 우선순위가 명확해졌다. 심지어 2달 전부터는 영어로 한두줄 쓰기로 바뀌었다. 이렇게 comfort zone에서 끊임없이 벗어나기를 해볼 수 있는 게 아날로그 글쓰기의 장점이다.
또 하나 좋은 점은 그냥 글만 쓰고 지나는 게 아니라 오른쪽 페이지를 비워두고 쓰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이 노트를 끝까지 다 쓰고 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빈 오른쪽 페이지에 새롭게 이어서 글쓰기를 하는 것이다. 이게 뭐가 좋냐하면 3~4달 전의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왼쪽 페이지를 보면 알 수 있다. 과거의 나는 어땠고 현재의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비교할 수 있다.
그렇게 보다보니 너무나도 뿌듯해진다. 과거의 내가 얼마나 생각이 복잡하고 정리가 안되어있고 부족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면 나는 성장하고 있는게 아니다. 도전하고 있는게 아니다.
과거의 나의 글을 내가 계속해서 정리해놓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새벽에 쓴 글들이 쌓여 나를 성장시키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