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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냥갑 Oct 06. 2021

내가 바라는 게 과한걸까

우린 서로에게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사람이어야 하는거 아닐까

가끔 내가 바라는  과한걸까 생각할 때가 있다. 그저 행복하고 싶었던 건데, 내가 원하는  확실한 것뿐인데 그게 이렇게 괴로운 걸까 싶을때가 있다. 그래서 더욱 글에 매달렸는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세상은 이해안되는 것 투성이었다. 궁금한 것도 많았았고 이해안되는 것도 많았고 그래서 많이 물어보고 또 물어봤다. 그런데 그 질문을 한 상대가 다 잘못되어왔는지도 모른다. 차라리 좀 더 제대로 된 방법으로 지금처럼 책을 통해, 그리고 더 깊은 통찰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물어봤더라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아주 약간 후회해본다. 후회한다고 뭐 지금 달라지는 건 없지만 말이다.


남탓했던 과거의 내가 싫었다. 주위 환경탓 사회탓 했던 내가 부끄럽다. 그저 “세상은 원래 그런거야…”같은 말을 하는 얘기들을 들으면서 곪아갔던 마음이 안타깝다. 그저 달렸으면 되었을텐데…남들보다 생각이 유난히도 많았던 나는 더 많은 생각을 하느라 나를 부정의 스파이럴로 끌어내렸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서로가 잘되는 걸 바라는 게 당연한게 아닐까? 왜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것들이 생기는걸까? 내 책임이 아니라, 우리의 책임이고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할것인데 왜 내가 혼자 죄책감느끼고 책임을 떠안아야할까.


세상은 불공평한거 다 알겠다. 익숙해져야한다는 거 다 알겠다. 그런데 긍정 에너지를 끌어올려도 오늘처럼 무너지는 날은 있다. 가장 내 편이어야할 사람 입에서 가시 돋힌 말이 나올때는 더 그렇다.


모두가 이런 고통은 가끔씩 느끼는 거라는 위로를 받으면 나는 괜찮아질까? 아니다. 나는 모두가 그러니까 참는게 아니라, 내 삶이니까 애쓰고 발악하고 더 나아지고 싶은거다. 다들 참고 사는거지뭐가 아니라, 참고 사는게 아니라 이해하며 살고 싶다. 그게 내 일방적인 노력이라면 나도 지친다.


자신안의 여유가 없는 사람일수록 더 날카로울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걸 어디까지 내가 받아주어야 할까. 내가 할 수 있을까? 나도 이렇게 부족한데 나도 가끔은 위로받고 싶은데 나는 누구한테 위로받을 수 있을까?


그래도 나에게 운동과 수면과 책과 아이들과 글쓰기가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나에게 가끔 이런 큰 아픔을 주지만 사실은 마음에 여유가 있을때는 한없이 따뜻한 나의 반쪽의 존재에도 감사한다.


이 모든 게 그가 없다면 누리지 못했을 행복이다. 하지만 너무 괴로운 건 사실이다. 그저 이런 날도 있는거지…라는 말이 아닌 다른 얘기를 듣고 싶다. 그리고 나는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 나도 위로받지 못했으니 너도 어디가서 위로받을 생각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우리 엄마도 상처가 많았기에 나를 위로할 줄 모르는 분이셔서 그런거다. 우리 아빠도 어떤게 위로인지 따뜻한 말을 하는 게 어색한 분이셔서 그런거다. 그저 감사할 일투성인데 오늘은 많이 힘들다.


공개적인 곳에서 뭐 이런 글을 쓰나 싶겠지만 내일 읽어보고 이불킥할 수도 있지만 뭐 어떤가. 어차피 몇명 안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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