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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냥갑 Mar 11. 2022

'톱니 바퀴'라는 말을 사랑하게 되었다

우리는 '진짜' 연결되어 있다

톱니 바퀴라는 말 진짜 싫어했었는데 이제는 매력적으로 들린다. 나 자신이 지구를 구성하는 하나의 작은 요소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우리는 살면서 이 사실을 쉽게 잊어버린다. 그리고 스스로를 중심으로 놓고 생각하게 되고 전체를 위한 사고에서 점차 멀어지게 된다. 어쩌면 그게 이기적 유전자를 가진 모든 생명체가 당연히 밟게 되는 수순이 아닐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톰 올리버의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산산조각이 났고 나 자신이 하찮다는 의미가 아닌 오히려 전체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서의 아주 작은 일부로서의 나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걸 이루는 전체, 모든 구성원과 구성요소를 사랑스럽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운이 좋게 동시에 다양한 책을 읽는 독서법에 꽂히게 된 나는 특히나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연결고리를 절실히 느꼈다. 그래서 이번 글은 내가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를 읽으면서 그때그때 떠오른 다른 책들과 연결시켜보려고 한다.


이기적 유전자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의 초반 1장 제목 ‘우리는 말 그대로 공기를 빨아들였다’는 부분이 참 흥미로웠다. 우리 몸의 분자들이 수백만 년 전 지구에 존재하던 공룡들의 몸을 거쳐 우리 몸으로 재순환했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시간을 관통해서 지구상의 다른 길을 걷다가 이 순간 우리의 몸에 함께 모이게 된 것이라면 우리는 우리 몸을 더 깊이 아는 것과 동시에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 아니 전우주적 관점으로 연결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외계인의 관점에서 인간은 어떻게 보일까를 상상해보라고 저자는 말한다. 외계인은 인간을 유전자의 거미줄의 일부로 여길까, 아니면 ‘밈의 거미줄’과 같이 서로의 생각이 끊임없이 흐르는 연결된 하나의 ‘정신’으로 볼지 말이다. 밈, 상상력, 생존 기계, 집단 등의 단어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관통하는 단어들이다. 특히 밈이 유전자인 gene으로부터 만들어진 단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놀라움이란 말로 표현이 안될 정도다.


개인이라는 인간이 온전히 개별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밈이라는 거미줄로 서로 얽히고 섥킨 존재가 우리들이라는 생각에 놀라웠다. 우리의 생각은 서로의 생각이 끊임없이 연결된 하나의 정신으로 볼 수 있다. 그게 이렇게 극단적으로 분열된 시대에도 말이다.


제로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를 읽으면서 자꾸만 큰 숲을 보는 법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시스템적 사고를 길러야 한다고 저자가 자꾸만 속삭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큰 숲으로 봐야한다고 말하는 책 중에 대표적인 책이 바로 피터 틸의 <제로 투 원>이다. 이 책은 내가 1년에 한번씩은 재독을 해야한다고 마음먹었던 책인데 2022년 올해에는 아직 재독하지 못하고 있다. 원서 읽기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요즘이니 원서로 재독을 해봐야겠다.  


우리는 환경의 거대한 건축이다.(…)수백 명이 서로 협력해 만들어졌다.(…) 자신에 대해 주권을 가진 개인이라는 생각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전체가 서로 연결된 천의 웅장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하나의 실과 같다. -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중에서


이처럼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에서는 전체를 보기 위한, 아니 전체를 봐야만 한다는 얘기를 끊임없이 하고 있다. 하지만 나 먹고 살기도 바쁘다보니 집단을 위한 사고법은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이들의 사치인 것 마냥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집단적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저자 역시 말하고 있다. 상상력은 우리의 감각을 넘어서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오직 이 생생한 상상력을 통해서만 정확한 세계관을 정립할 수 있다고 말이다.


오직 상상력만으로 우리는 별개의 ‘나’라는 망상을 없앨 수 있다.(…)통합의 결과는 부분의 합보다 더 크다. (…)우리 상황을 더 큰 맥락에서 볼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얻어 우리가 지금 직면한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중에서

어찌보면 먹고사니즘이 해결되어야지만 큰 숲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할지모르겠지만, 사실은 상황을 더 큰 맥락에서 봐야지만 우리의 먹고사니즘이 더욱 수월하게 해결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가 아니라, 명확히 우선순위가 보이는 일을 우리는 계속해서 미뤄두며 더 큰 문제들을 키워오고 있는 건 아닐까?



1 시간의 재발견

우리가 인식한 것은 우리 앞에 ‘놓인’ 사물이 아니라, 우리 머릿속에 있는 사물의 표현일 뿐이라는 점을 생각해보자. -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중에서

위의 구절을 읽자마자 떠오른 책이 <1만 시간의 재발견>이었다. <1만 시간의 재발견>은 번역서로는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을 원서로 읽고 이해하게 되어 유레카를 외쳤던 책이다. 거의 매 페이지 ‘미쳤네…미쳤다…’를 외치며 읽었던 기억이 있다. 번역서에는 심적 표상이라고 표현되고 있는 mental representation에 대한 부분이 원서를 읽다보니 더 뚜렷하게 이해가 되었다. 우리가 인식한 것은 눈에 놓인 사물이 아니다. 우리 머릿속에서 mental representation(심적 표상)라는 머릿속 사물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연결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같은 내용, 같은 이미지를 보더라도 우리의 뇌 속에서는 아주 다양한 연결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다양한 해석이나 감정은 우리 개개인이 복잡계 자체라고 표현할 수 있을만큼 놀라운 결과를 보여준다. 그런 개인들이 모여 서로 영향을 주고 받고 또 내부에서는 보이지 않는 조합이 폭발한다. 이런 상상을 조금만 해봐도 매일매일이 엄청난 화학반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긍정적인 성장을 위한 의식적 노력이 꾸준함과 더해졌을 때의 변화는 기하급수적 성장, 복리의 마법처럼 일어나게 되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우리가 무엇에 어떻게 관심을 쏟느냐는 현재 우리의 뇌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느냐에 달려 있다. 즉, 커넷톰(Connectome : 뇌지도)의 상태에 달린 것이다. -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나에게 충격을 가져다준 책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점점 얕아지고 있는지, 그리고 어른들도 그러한데 아이들에게까지 그런 환경을 쉽게 조성하는게 얼마나 위험한지 경각심을 느끼게 해준 고마운 책이다. <우리는 연결…>에서도 저자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무엇에 관심을 쏟느냐는 우리의 뇌지도 상태에 달려 있다. 이는 좌절감을 느끼게 할 수도 있지만, 뇌 가소성을 생각해본다면 그와 동시에 엄청나게 희망적인 얘기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당연히 책을 읽는 게 익숙치 않을수밖에 없다. 책보다 유튜브가 재미있고 행동하는 것보다 누워서 생각만 하고 계획만 하는 게 훨씬 쉽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을 거슬러 올라가려고 조금씩 자신의 comfort zone을 넓히다보면 쉬워지는 순간은 어느새 찾아온다. 매일 걷기도 겨우 생존을 위해 억지로 나갔던 나라는 사람이, 이제는 새벽에 일어나 달리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히는 기분이 드는 것처럼 말이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원제<The Shallows>처럼 ‘얕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우리의 뇌지도인 커넷톰을 재구성할 전략을 짜야 한다. 그 첫번째 시도로 나는 단언코 매일 달리기를 추천한다. 건강을 위해서가 아닌 뇌를 재구성하는 방법으로써 말이다. 사실 달리기라는 전략에서 건강은 아주아주 사소할 만큼 부차적인거다. 기대도 안했는데 딸려오는 사은품같은거 말이다.  



우아한 관찰주의자

자연의 세계를 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동식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지만, 증기기관차를 좋아하는 사람은 엔진 카트리지 사이의 미세한 차이를 알아차린다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 않다. 이들은 나무와 울타리를 배경으로 한 똑같은 시골 기차역 사진을 봐도 다른 것을 ‘본다’. -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중에서

작년에 알게 된 책 중에서 에이미 E. 허먼의 <우아한 관찰주의자>만큼 ‘알게 되어 너무 다행이다’라며 가슴을 쓸어내린 책이 또 있을까 싶다. 정보의 홍수에서 거의 익사 직전인 바쁜 현대인에게 ‘관찰하기’는 사치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럴수록 관찰의 힘을 되새겨야 할 게 오늘날을 살고 있는 현대인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우리가 관심있어 하는 것만 본다. 그렇기에 관심있는 것에만 편향이 심하게 일어나고 현대 사회는 초연결사회임에도 극단으로 분열되고 있다.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게 맞나 싶을 정도로 전혀 다른 정보, 다른 이념, 다른 가치관 등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런 사회에서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음을 재인식하기 위해서는 우아한 관찰주의자가 되어 주위를 좀 더 세심하고 느긋하게 관찰하는 여유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사실 여유나 사치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관찰은 필수인 시대가 되었다. 빠른 게 중요한 게 아니다. 패턴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찐’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으니 말이다.


신경끄기의 기술

최근에 읽고 있는 책이 있다. 마크 맨슨의 <신경끄기의 기술>이다. 이 책에서는 이런 얘기가 나온다.

To deny one’s negative emotions is to deny many of the feedback mechanisms that help a person solve problems. - <신경끄기의 기술> 중에서

우리의 신경 패턴은 감정을 촉발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좋은 영화, 음악, 미술 작품 등을 접했을 때 어떤 감정이 올라오는 것이다. 이는 공명(resonance)이라고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의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이런 감정은 놀랍게도 공기 중에 화학적 메시지를 통해 사람들 사이에 전달된다. 고립되어있다고 생각하는 지금과 같은 팬데믹 시대에도 이는 유효하다. 많은 이들이 느끼는 부정적 감정은 전달이 되고 또 그 감정은 더 많이, 그리고 더 쉽게 퍼져나간다. 그런데 그런 부정적 감정을 느끼는 것까지는 좋은데 문제는 이런 부정적인 감정을 ‘부정’하는 게 문제가 되기도 한다. <신경끄기의 기술>에서는 행복감을 쫓는 게 아니라 불안과 두려움 등의 부정적 감정을 어떻게 마주하느냐로 삶의 질이 결정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나쁜 경험을 피하는 게 행복으로 갈 수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닥친 불행이나 불만을 ‘해결’하는 것으로 우리는 만족감을 얻는다고 말이다. 그러니 부정적 감정을 부정한다는 건, 위의 영어 문장에서 언급된 것처럼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좋은 피드백 매카니즘을 부정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현 상황의 불안과 두려움을 피하고 거부하기보다 마주보고, 시스템적 사고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야 한다. 그게 나 혼자만이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러니 우리는 연결되어 있음을 재인식하고 주위에 감사하고 협력의 소중함에 대해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아무리 혼자 벌어 내 입에만 풀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게(심지어 내가 아주 극혐하거나 별로 관심없는 사람과도) 아직도 와닿지 않는다면<우리는 연결되어 있다>의 원제인 ‘The self delusion’이라는 문구를 되새기며, ‘자아라는 환상’에서 벗어나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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