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온갖 맛의 향연을 즐길 수 있기를
아이를 키우면서 되도록 과자를 안 먹이고 싶었다. 내가 밥을 안 먹는 아이였기 때문에 누구보다 군것질이 밥을 잘 안 먹게 되는 원인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어른의 입장에서 과자가 안 좋다가 아니라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며 느낀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키우려고 마음먹었는데 너무나도 쉽지 않았다. 어린이집 가기 전까지는 남편이라는 복병이 있었고 어린이집을 가니 원장 선생님부터 입학 날에 내가 보는 앞에서 당당하게 아이에게 사탕을 주고 있었다.
너무 빡빡하게 구는 건 아닌가 생각하겠지만 정말 어른들은 과거를 떠올려 봐야 한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맛이 있다고 알기 전에 아이가 강력한 단맛을 알게 되었다면 그보다 약한 맛에 흥미가 갈 것인지 말이다. 색깔도 알록달록하고 달콤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들을 평생 안 주고 키우자는 게 아니다. 되도록 그 시기를 뒤로 미루고 싶었던 것이다. 스스로 조절이 가능할 때까지 미루고 싶었다. 스마트폰을 되도록 늦게 아이에게 노출시키고 싶은 마음과도 같다. 어차피 다들 먹을 테니 완전히 못 먹게 할 수는 없어도 그런 맛이 존재한다는 걸 늦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부모는 적은 걸까? 아이에게는 신경 써도 자신이 먹는 것에 크게 신경을 안 쓰는 어른들이 많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냥 과자는 간식 개념으로 먹을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겠지만 몸도 작고 여러 가지 영양소를 섭취해야 할 아이가 단맛이나 바삭바삭한 기름진 것들만으로 허기를 채운다고 생각해 보면 심각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첫째 아이는 나에게 맛있는 걸 달라고 한다. 그건 절대 방울토마토 거나 저녁식사를 말하는 게 아니다. 요구르트나 빵과 같은 달달하거나 거의 탄수화물밖에 안 들어간 간식류다. 그래서 나는 '밥(식사류)'을 먹어야 그것들을 먹을 수 있다고 협상을 해야만 한다. 36개월짜리 아이와 매일 딜을 해야 하는 게 쉽지 않다. 그리고 매일 좌절하고 안도하고를 반복한다.
저번 주 주말에는 집에서만 해 먹기 힘들어서 아이를 데리고 둘이서 외식을 했다. 점심 식사를 밖에서 한다는 생각에 들뜬 나는 다른 무서운 것들이 밖에 있다는 걸 생각지 못했다. 쇼핑몰에 도착해서 식당 앞에 서있으니까 바로 아이는 산타할아버지처럼 생긴 저게 뭐냐고 나에게 물었다. 산타할아버지 모양의 솜사탕이었다. 나는 그걸 어떻게든 아이와 관련 없는 것으로 설명하려고 진땀을 뺐다. 아이는 밥을 먹는 내내 그 산타할아버지 타령을 했다. 그래서 나는 밥을 잘 먹고 키가 엄마만큼 커야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거짓말이 언제까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밥을 다 먹고 밖에 나오니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들고 맛있게 먹고 있다. 그리고 우리 아이는 그 아이들을 넋 놓고 바라본다. 오 마이....... 또 시작되었다.
점점 아이는 커가고 예전에는 설득해서 먹일 수 있었던 게 점점 어려워지는 걸 느낀다. 이젠 초록색이면 바로 경계한다. 어릴 때는 넙죽넙죽 잘 받아먹더니 이제는 초록색이면 일단 거부감이 생긴다는 걸 본능적으로 학습했나 보다. 아이들은 금방 배운다. 그리고 몸으로 습득한다. 음식이 배를 채우는 것만이 아님을 아이를 키우면서 더 절실하게 느낀다.
남편을 보면서도 느낀다. 남편의 식성은 탄수화물과 고기 위주이다. 살은 안 찌는 체질이지만 장이 안 좋은 거 같아 걱정이다. 그는 편식하는 어린아이가 그대로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은 식성이다. 체력도 약하고 야식도 라면이나 냉동만두 같은 것만 먹는다. 내가 건강 염려증이어서 이렇게 걱정이 되는 걸까. 아니면 정말 문제가 있는 걸까 가끔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남편의 식성 때문에 화가 나는 이유는 그는 자신의 식성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게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내가 만약 없다면 남편은 아이에게 냉동만두와 짜파게티, 돈가스만 해줄 것이다. 그리고 어린이집에서도 영양이 부실한 급식을 먹는다면 내가 없는 동안 집에서는 아이는 탄수화물과 고기만을 먹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약간의 김치만이 유일한 채소라고 생각하는 남편의 식성을 닮아갈 것이다. 내가 너무 과도한 건강 염려증인 걸까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건강에 대해 부모 중에 한쪽만 신경 쓴다는 건 상당히 피곤한 일이다. 나도 아이들을 남편에게 맡기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그러려면 식사가 해결이 되어야 한다.
아이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아이가 좋아하는 반찬만 해주는 게 어른의 역할은 아닐 것이다. 영양 불균형을 막아주지는 못할 망정 그걸 더 심화시킨 게 부모라면 성인이 된 다음의 아이 건강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운동에 대한 필요성도 못 느끼고 영양 균형에 대해서도 생각 안 하고 야식만 많이 먹는 남편을 보면서 나는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고 내 미래를 걱정한다. 아이는 영양 불균형이 어떤 결과를 야기할지 모르니 이해하지만, 어른은 아니다. 어른은 알면서도 습관이 되어서 안 하는 거다. 이런 어른들이 아이의 건강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을까. 어릴 때부터 기본적인 건강 상식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양치질은 해야 한다고 어린이집에서부터 알려주면서 식습관에 대한 상식이 그냥 고리타분한 걸로 치부되는 게 걱정된다. 아이를 달래기 위해 과자나 사탕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이라는 게 걱정된다. 결국 사람의 몸에 들어가는 게 먹는 게 다인데 그걸 신경 안 쓰고, 몸이 안 좋아지면 병원부터 가고 건강보조식품으로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어른이 많다는 게 걱정이 된다.
건강한 유기농 음식만 먹이고 싶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토마토, 가지, 시금치, 배추, 오이, 깻잎, 고수, 파, 피망, 파프리카, 버섯, 블루베리. 여기 다 나열할 수도 없을 만큼의 다양한 식재료만큼 아름다운 색깔들을 떠올려본다. 다양한 색깔만큼 다양한 영양소가 눈에 보이는 듯하다. 과자의 알록달록한 색깔보다 채소, 과일, 온갖 단백질의 색깔이 나에게는 더 예쁘게 보인다. 그것들의 맛을 온전히 즐기고 자연을 느끼고 나의 몸을 소중히 하는 그런 아이가 삶을 즐기고 멋진 어른으로 성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