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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냥갑 Sep 05. 2019

체온과 가장 가까이 닿는 것

많이 낡았지만 여전히 애착이 가는 물건이 있나요?

만화 찰리 브라운의 라이너스 정도는 아니지만 부드러운 천을 아낀다. 그리고 특히 엄마가 직접 바느질하신 아기 담요는 더더욱 버릴 수 없다. 원래 집에 있던 알록달록한 얇은 담요 위에 회색 부드러운 천을 씌워서 아기용 담요로 만들어 주셨다. 나는 왜 패브릭에 집착할까. 엄마와 연결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엄마는 손재주가 좋으셔서 바느질을 잘 하신다. 그렇다고 옷을 만들어주실 정도로 실과 바늘을 열정적으로 사랑하신 건 아니다. 그저 뭔가 마음에 안 들거나 아쉬운 옷이나 이불들을 고칠 때 엄마의 기가 막힐 정도의 재주가 발휘된다. 미싱을 쓰시는 것도 아니다. 그냥 손바느질이다. 옷이 찢어졌을 때 그걸 꼬매 주셨는데 거의 실로 천을 짠 수준이었다. 티가 안 났다. 그 정도로 우리 엄마는 꼼꼼했다. 


내가 보기에는 우리 엄마의 재주가 특별한 재능으로 보였지만 엄마는 늘 손사래를 쳤다. 별거 아니라고. 그렇지만 난 옷을 고치고 손바느질만으로 그렇게 꼼꼼하게 미싱박듯하는 어머니들을 흔히 보지 못했다. 엄마에게는 당연하고 별로 어려울 게 없는 일이지만 난 그런 엄마의 능력이 자랑스러웠다. 둘이서 천을 가지고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구상할 때 우리는 세상 부러울 것 없이 손발이 맞는 파트너다. 말하면서도 신나고 만들면서도 신난다. 나는 거의 입으로만 일하지만 그래도 아이디어의 지분은 약간 있다. 엄마도 내가 신나 하고 엄마를 계속 칭찬하니까 또 열심히 손을 움직이신다. 


내가 패브릭과 엄마와의 특별함을 느끼는 건 또 하나의 연결고리 때문일 수도 있다. 어린 시절 읽었고 지금도 집에 있는 동화책 '나의 원피스'다. 


'나의 원피스'는 40년간 작은 사람들덕분에 소중하게 자랐습니다. 

지금까지 작은 사람들 고마워요.

앞으로도 작은 사람들 잘 부탁해요.

- 니시마키 카야코







이 이야기는 하얀 토끼가 길을 가다가 하얀 천을 줍는 것으로 시작한다. 미싱 드르륵 미싱 드르륵, '나의 원피스를 만들어야지'하며 토끼는 원피스를 만든다. 그 하얀 원피스를 입고 이곳 저곳으로 가는데 하얀 원피스가 어떻게 되는지 보는 게 이 동화의 묘미다. 참 지겹게 읽었는데도 나는 이 동화책이 참 좋다. 그리고 나는 어릴 때 읽은 그 책을 이제 나의 네 살 딸에게 읽어주고 있다. 일본어로 쓰여있어서 한국어로 즉석에서 번역해줘서 읽어주지만 그래도 즐겁다. 일본어로 읽을 때의 느낌을 살리고 싶어 운율을 신경 쓰며 읽어준다. 어쩌면 읽어주는 내가 더 신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 동화책을 봤기 때문에 나에게 패브릭은 특별해진 걸까. 아니면 엄마의 재주가 나와 엄마를 이어 주기 때문에 더 좋은 걸까. 뭐가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나와의 인연이 30년이 다 되어가는 동화책도, 부드러운 천도, 그리고 손재주 좋은 우리 엄마도 너무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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