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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냥갑 Oct 17. 2019

내가 이런 쪽 덕후인 줄 이제 알았다

내가 나의 덕후력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요새 경제적인 자유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면서 잊고 있었던 게 하나 생각났다. 내가 뭐 때문에 경제적 자유를 얻고 싶어 했는지라는 아주 기본적인 사실 말이다.


미니멀리즘과 미식.


나에게 미니멀리즘은 더 많은 걸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잘 이용하기 위해 내 삶에서 필수적인 요소였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내 삶은 미니멀해야만 했다. 옛날부터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를 머리 속에 구겨 넣었다. 마치 겨울을 나기 위해 식량을 모으는 다람쥐처럼 필사적으로 모았다. 나에게는 저장된 정보를 분류하는 나만의 방법도 있었다. 한 가지 분야에만 관심이 가는 게 아니라서 분야별 폴더는 미어터질 듯했고 그 많은 분야를 정리할 나만의 분류법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 정보를 제대로 사용도 못한 채 하드를 날리고 나서 정보 모으기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제대로 사용도 못하고 인풋만 넣던 나는 그 정보들을 분류하느라 또 수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알게 된 것이 미니멀리즘이었다. 나에게 충격이었고 처음 알게 되었지만 아주 먼 옛날부터 내가 이걸 원하고 있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작은 집에서도 여러 가지 기능을 다 갖춰져 있고 눈이 피로하지 않은 깔끔한 내부를 보고 심장이 뛰었다. 그리고 그런 공간에서 살게 된다면 나의 머리 속도 제대로 정리될 것만 같았다.



또 한 가지 요소인 미식은 언제나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분자요리나 새로운 기법의 휘황찬란한 그런 미식이 아니라 진짜 맛있는 음식이 좋았다. 그런 음식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 먹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여유가 생길 때 보던 것은 음식 관련 다큐나 영화였다. 아메리칸 셰프(Chef. 2014 - 감독 존 패브로)를 보면 심장이 뛰었다. 영화 아이언맨 감독이자 배우로도 활약하는 존 패브로의 또 다른 넷플릭스 쇼 '셰프 쇼'도 요새 챙겨보고 있는데 나는 이런 진짜 요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무 좋다. 셰프의 테이블은 좀 더 진지한데 여러 가지 스타일의 셰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너무 설레고 이욱정 PD의 요리인류도 좋았다. 우리나라 프로그램 중에 요새 보고 싶은 것은 백종원의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2'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식재료들에 대해 알고 그들의 철학을 공유하는 것도 너무 좋다. 내가 경제적 자유를 누린다면 이태리와 스페인같은 미식의 나라로 가서 에어비앤비로 묵으며 현지 미식 여행을 하고 사람들과 현지 언어로 얘기하고 싶었다. 이태리 시골로 가서 이태리할머니의 숨은 비법 레시피도 함께 만들어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나는 이런 것들이 '내가 경제적 자유를 이룬다면'이라는 말 뒤에만 붙을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후회하지 않을 삶을 위해 20년 후 책을 쓰는 게 아니라 지금부터라도 글을 쓰며 나의 목차를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었다. 그런 것처럼 미니멀한 공간과 미식을 추구하는 삶도 지금 당장 하면 되었다. 정말 너무나도 당연한 거고 후회하지 않기 위해 현재를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경제적 자유를 누리기 위한 돈벌이가 급급해 그러지 못했던 거다.


나에게 미니멀리즘은 나의 끊임없는 호기심을 유지하기 위한 기초공사다. 그리고 미식은 나의 새로운 영감에 대한 갈망이다. 이 두 가지는 원래부터 나에게 있었던 것인데 오늘 새삼 다시 발견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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