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쇼몽 (1950)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하는 것은 미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4명의 등장인물들의 각기 다른 이야기를 중심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라쇼몽'이라는 제목에서도 영화 내용을 전혀 짐작할 수가 없어서, '따분하고 지루한 흑백영화겠구나'하고 생각한 나의 편견을 깨고 영화는 보는 내내 흥미진진했다.
영화의 등장인물 모두 자신의 입장에서 사건을 왜곡하고 있는데 이런 모습이 단순히 악한 마음에서 온 것이 아니라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던 자기 보존 욕구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산적과 사무라이의 결투신은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추했는데도 불구하고 산적 자신은 23합이나 칼을 부딪히며 맹렬하게 싸웠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무라이는 죽음 앞에서 나약한 모습을 보였으면서도 정작 자신은 무기력함에 눈물 흘리며 자결했다고 말한다. 사무라이의 부인은 눈물을 무기로 사용하면서 그것이 통하지 않자 남자들에게 거침없이 욕을 퍼붓는다. 그녀는 자신의 욕망에 따르려는 당당함을 숨기고 사람들 앞에서는 정숙하고 연약한 여인을 연기한다. 나무꾼은 진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사건에 연루되는 것을 꺼려 거짓 증언을 한다. 비를 피하러 온 사내의 말처럼 갓난아이의 옷을 훔치는 사내나, 갓난아이를 버린 부모나, 거짓 증언을 한 나무꾼이나 3명의 중심인물들이나 다른 게 뭐가 있을까. 다들 자신의 입장에서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게 되는 나약한 존재들인 것이다.
사실 자기 나름대로 왜곡하는 게 인간이라면 우리는 그 거짓말들 속에서 어떻게 '진실'을 찾아낼 수 있을까. '케이조쿠'라는 일본 추리 드라마에서는 '진실이란 사실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애매한 기억의 집합체들이 진실의 얼굴을 하고 당당히 설칠 뿐이다. 그러니까 그 기억을 가진 사람을 없애면 진실 같은 것은 없어져 버린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진실이라는 건 아주 일부가 아닐까. 아니,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 역시 '진실'이 아닌 것이 아닐까.
내가 남을 완전히 믿지 못하고 나 자신조차도 내 마음을 모르는데 믿음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영화 마지막에 인간에 대한 믿음만은 포기할 수 없다는 희망적인 결말을 맺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나의 마음속 찝찝함이 가시진 않았다. 인간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 나 자신을 보호하려는 욕구에서 나온 것이라 할지라도 인간에 대한, 그리고 나에 대한 혐오가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Tip. 자기보존의 원리. 욕구
개연성. 그럴듯한 것을 우리들은 진리라 믿는다.
과학도 현재 우리가 그나마 그럴듯해서 믿고 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