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본능을 자극하는 영화를 본다는 것
내가 영화를 볼 때 펑펑 우는 포인트들이 있다. 어떨 때는 그게 너무 괴로워 그런 기미가 보이는 영화를 보지 않으려고까지 한다. 나에게 '눈물'은 나도 몰랐던 나의 진정한 본능을 찾는 촉매와 같은 역할을 할 때도 있고, 내가 마주 보기 두려운 현실로 들어가는 문이기도 하다. 그 문으로 들어가기 싫어 어떤 영화를 보지 않으려 할 때도 있지만 오히려 그 문을 열고 들어가기 위해 영화를 선택할 때도 있으니 말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감독이다. 그게 어떤 일반적인 가족의 모습이 아닐 때도 있고(어느 가족, 2018),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이복 여동생과 처음 만나게 되는 다 큰 자식들의 이야기가 될 때도 있고(바다 마을 다이어리, 2015), 부모에게 버림받은 어린아이들의 이야기(아무도 모른다, 2004)를 할 때도 있다. 꼭 가족이 아니더라도 인간이 느끼는 본질적인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를 인형을 통해서 말할 때도 있고(공기인형, 2009), 대놓고 가족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걸어도 걸어도, 2008)(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2011).
방구석 1열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게스트로 나왔을 때 '가족 이야기를 주로 다루는 이유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감독은 '자신도 만들고 보니 그렇게 된 거 같다'라며 자신도 그제야 깨달은 듯한 표정을 하는 것을 보고 놀라웠다. 그렇다. 사람은 의외로 의도하고 뭔가를 만드는 경우가 드물다. 자신의 목마름대로 표현하다가 뒤돌아 보니 그것이 하나의 큰 주제를 포함하고 있다는 걸 그제야 깨닫는 것처럼.
나에게 '아무도 모른다'는 대충 내용은 알지만 보기가 힘든 류의 영화다. 어린아이들이 부모로부터 버려지는데 그 어떤 문제가 일어나고 고통을 받는 것, 그런 류의 영화는 나를 너무나도 힘들게 만든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볼 수 없는 영화 중 하나다. 같은 의미에서 오미포 감독의 '너는 착한 아이'라는 영화는 보면서 너무나도 힘들었다. 그 여운이 며칠씩 갔던 것 같다. 오히려 '공기인형'은 일본 사회 특유의 외로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 배두나가 나온다는 것 외에도 흥미롭게 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나에게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 중에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꼽으라고 하면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라고 말하고 싶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어느 가족', '바다 마을 다이어리', '걸어도 걸어도'도 보고 싶어 졌으니 말이다. 심지어 이미 봤음에도 기억이 남지 않았던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마저 다시 한번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두 가족의 아이들이 바뀌었다는 걸 알게 되고 나서 그들이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다. 나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이야기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나는 어떨까라는 걸 영화를 통해 깊게 고민해 보게 된다. 영화 일본 원제는 'そして父になる'이고 영제로는 'Like Father, Like Son'으로 나와있다.
사실 'そして父になる'는 100%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라는 의미인 것은 아니다. 물론 가장 가까운 의미로 잘 지은 제목이고 이 이상 원제의 의미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어쨌든 그렇다. 모든 번역이 원문의 미묘한 뉘앙스를 살리진 못한다는 건, 아무리 구글 번역이 잘된다 하더라도 우리가 다른 언어를 배워야 하는 강력한 이유를 제공한다. 그 미묘함을 캐치하게 되었을 때의 짜릿함, 그리고 그 나라 언어로만 표현할 수 있는 그 무언가라니. 너무 멋지기도 하고 묘하기도 하고 신기하지 않은가(나만 그런가?.......)
어쨌든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내가 가족에 대해, 아이에 대해 느끼고 있는 생각들을 자극한 무척이나 좋은 영화다. 가족이란 어때야 하는지, 나는 어떤 부모가 되고 싶은지, 내가 저런 상황에서라면 어떻게 행동할지, 나는 아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좋은 질문을 던지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저 엔터테인먼트 요소적인 측면에서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한정된 시간과 경험 속에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아주 좋은 방법 중에 하나로, 영화를 통해서도 그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벤저스를 보면서도 우린 우리 안의 본능을 찾아낼 수 있다. 자신이 이렇게 이 영화에 열광하는 이유를 무엇일까를 고민하다 보면 자신의 진정한 본능에 도달할 수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우리의 삶이 여정이라면 영화 보고 사유하기도 그중에 좋은 여행지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