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그 순간'을 찾아볼까
이름처럼 31가지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이상의 가짓수를 가진 아이스크림 중에 굳이 슈팅스타를 먹는 이유는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감각이 재미있어서다. 내가 이 아이스크림이 맛있어서 좋아하는 건지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이 감각이 즐거워 맛있게 느껴지는 건지 사실 잘 모르겠다. 잘 모르겠지만 그냥 이 아이스크림이 나에게 주는 느낌은 매번 짜릿하다. 그래서 다른 아이스크림도 먹어볼까 하다가도 결국 슈팅스타를 먹고 나서야 만족한다.
나는 언제나 이런 '톡톡 튀는' 순간들을 찾아 헤맸다. 그런 요소가 없다면 사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런 순간들이야말로 나를 숨 쉬게 해 주었다. 사람마다 찾아 헤매는 것들이 제각기 다를 것이다.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거나, 변하지 않는 것을 원하거나, 새로운 모험을 찾아다니거나, 나의 성장을 원하거나 등등. 삶이란 순간들이 모여서 이루어진다고는 하지만 때로는 그 어떤 '순간'이 긴 세월을 보상할 만큼, 아니면 모든 것이라고 믿게 될 만큼 의미 깊은 순간들이 있다. 나에게 그런 순간들은 어떤 것들이었는지 궁금했다. 눈을 감고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본다.
나에게 큰 무대에서의 경험이라고 하면 초등학교 2학년 때 했던 학예회였다. 그 당시 나는 일본 도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었는데 그 학예회는 일반적이지 않고 조금 특별했다. 학예회 제목은 '아이우에오리바바의 대모험'이라고 담임 선생님이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을 '아이우에오'와 결합시켜서 각색한 뮤지컬이었다. 원작에서는 알리바바가 등장하지만 이 이야기에서는 '아'리바바, '이'리바바, '우'리바바, '에'리바바, '오'리바바 다섯 형제가 등장한다. 그중에 나는 누구였는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어쨌든 그 다섯 형제 중 하나였다. 이 뮤지컬 내용이 특별했던 게 아니라 각색과 연출을 담당했던 우리 담임 선생님이 뮤지컬에 들어갈 '모든' 곡을 이 학예회를 위해서 작곡을 했고 그 오프닝 송을 내가 불렀다는 게 정말로 특별했다.
나는 며칠간 하교 후 학교의 작은 음악실로 레코딩을 하러 갔고 내가 발탁이 된 것도 오디션을 통해서 대대적으로 선발을 한 것이었다. 내가 성인이 된 후에 교장 선생님이 된 담임 선생님을 뵈러 일본에 다시 갔을 때 내 목소리로 녹음된 오프닝 곡을 선생님과 같이 들으며 나는 말했다. '저는 제 어린 시절 목소리가 앵앵대는 애 같은 톤이라서 별로 안 좋아했어요.' 그러자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아이답고 좋았던 거야'
초등학생 아이에게 저런 경험이 얼마나 주어질까. 나는 그 당시 경험으로 가수가 되겠다는 꿈은 생기지 않았지만 묘한 희열을 맛봤다. 그리고 '그 순간'이 나의 일본에서의 7년간의 기억 전체를 지배할 정도로 강력했다. 그 외에도 재미나고 잊을 수 없는 경험들은 많았지만 내가 그 순간을 더욱 짜릿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한국에 오자마자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피아노 학원에 보내지며 흑백 모노톤의 학창생활을 보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 피아노 치는 게 나에게는 가장 재미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칩 히스, 댄 히스의 '순간의 힘'에서 가장 강력했던 것은 단연코 소설 '파리 대왕'의 작가 윌리엄 고등학생을 고발하는 인간 본성 재판을 연 힐스데일 고등학교 이야기다. 나의 경험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더 엄청난 규모와 모든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특별한 고양의 순간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지 못했지만 나 역시도 아이들이 준비하면서 느꼈을 감정들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내가 흑백 모노톤의 한국 학교생활에 많은 아쉬움이 있어 더욱 교육에 관심이 생긴 것일지도 모른다. 문제 해결을 위한 갈망은 자신의 결핍에서 태어난다. 이 결핍과 나의 고양의 순간들이 나라는 사람에게 얼마나 큰 것을 주었는지 아마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할 것이다. 나는 내가 믿는 것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느리더라도 고되더라도 될 때까지 나만의 방법으로 교육에 변화를 만들어내고 싶다.
내가 톡톡 튀는 순간들을 더욱 갈망하게 된 이야기를 더 하기 전에 신경과학자인 이글먼의 괴짜 효과(oddball effect)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일련의 이미지를 제시했다. 대부분은 똑같은 사진이었지만 간혹 새로운 사진도 있었다. 예를 들면 갈색 구두, 갈색 구두, 갈색 구두, 갈색 구두, 알람시계, 갈색 구두, 갈색 구두의 순서대로 사진이 제시되는 것이다. 모든 이미지가 정확히 동일한 시간 동안 노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참가자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 그들은 알람시계(일정한 패턴을 깨트리는 그림)가 더 오랫동안 제시되었다고 느꼈는데, 그러한 현상을 가리켜 괴짜 효과라고 부른다. (중략) 다시 말해 놀라움 요소는 시간을 왜곡한다. - '순간의 힘' 중에서
내가 삶에서 갈색 구두를 견딜 수 없었던 이유는 좀 더 자주 알람시계를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살면서 알람시계가 너무 자주 나타나면 알람시계마저도 질리게 된다. 그게 나를 괴롭게 했다. 그렇게 한동안 괴로워하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알람시계가 많아지면 갈색 구두가 신선하게 느껴진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이후부터였다. 나의 일상, 흔하디 흔한 일상도 신선하게 느껴지도록 조절하게 되었다. 내가 여러 가지를 저글링 하듯 하면서도 즐거운 이유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지치면 다시 갈색 구두와 알람시계를 재배치한다. 나의 삶은 톡톡 튀는 '순간'을 많이 생산하며 내가 지속적으로 지치지 않기 위한 여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1인 기업이라는 형태에 용기를 얻은 것도 팀 페리스의 '나는 4시간만 일한다'를 읽고나서부터였다. 그 전에는 그런 삶을 꿈꾸는 내가 비양심적인 사람으로 느껴졌을 정도였다. 건축설계를 하던 한 선배는 내가 칼퇴하는 삶을 꿈꾼다고 이야기하자 어떻게 인생을 그리 쉽게 살 생각을 하냐는 뉘앙스로 나에게 면박을 줬었다. 인간적으로 온화하고 좋은 선배였는데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많이 받은 기억이 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선배는 다른 형태의 삶을 전혀 알지 못해서 그런 말을 했던 것이라고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이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그렇게밖에 이야기할 수 없었던 상황에 대한 아쉬움은 크다.
소수의 이견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설사 그 견해가 틀렸을지라도, 자주적인 행동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 - '순간의 힘' 중에서
우리 사회는 좀 더 많은 이들이 자신의 행동에 용기를 가질 필요가 있다. 그 용기를 가지게 될 계기가 그 어떤 작은 '순간'으로부터 만들어질지 누가 아는가. 우린 그런 순간들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리고 그 작은 순간이 모든 시간을 지배할 정도의 파급력을 가지길 기대해본다. 우리가 만들어낸 작은 순간들이 누군가의 또 다른 멋진 모든 것이 되길 바라며 오늘도 나는 일을 벌인다.
#씽큐베이션 #체인지그라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