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좋은 걸 왜 진작에 못했지 싶다
나는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었다. 내가 비우기에 푹 빠지게 된 계기는 이 글을 통해서 풀었지만 막상 현실에 적용하려니 쉽지 않았다. 왜냐면 나는 물건을 지독히도 못 버리는 남편몬과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서 공짜 물건을 받아오면 취향에 상관없이 집에 들여온다. 나 역시 미니멀리즘을 지향하게 되기 전까지 그 어떤 물건도 버리기 힘들어했으니 어찌보면 천생연분은 맞는 거 같다. 결혼한 지 5년이 되면서 내가 많이 눈치를 주고 그러지 말라는 훈련(?)을 통해 그나마 많이 나아졌지만 그래도 바뀌기 쉽지 않은가 보다. 나도 남편이 안 버리겠다는 걸 맘대로 버리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눈치가 보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던 와중에 내가 무엇보다도 바꾸고 싶었던 한 가지가 있었다. 답답한 남편용 옷장을 버리고 싶었다.(남편 몬 미안) 이유인즉슨 남편은 옷을 많이 가지고 있지 않았고 옷에 대한 관심도 적었다. 그러다 보니 답답하고 큰 남편몬 옷장 속에는 남편 옷보다 남편용 잡동사니만 가득차있었다. 거의 창고가 되어있었다. 문제는 자신도 그 속에 뭐가 있는지 잘 모르고 계속 쑤셔 넣기만 하는 것이었다. 물건을 꺼내다보면 도라에몽 주머니만큼 새로운 것들이 나왔다. 문제는 이 옷장 속 물건들이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거다. 내가 비우지 않는 이상 남편옷장(이라 쓰고 남편 창고라 읽는다)은 물건들로 가득 차고 넘칠 것이다.
우리 집은 내가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야 물건을 찾을 수 있는 특이한 메커니즘이다. 남편몬 물건도 남편몬이 다른 곳에 놔두기 일쑤다. 그래서 내가 규칙을 잘 정해주어야 한다. (그 규칙마저 항상 무시되기 일쑤다.)
나는 큰 마음을 먹고 남편몬에게 내가 물건과 옷'정리'를 잘하기 위해 빅픽쳐가 있음을 어필하고 남편몬용 옷장을 버리고 다른 수납함을 사려고 한다고 미리 언질을 주었다. 남편몬의 특징은 여러 차례에 걸쳐 계획을 반복적으로 말하면 그나마 쉽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실행하고자 하는 날짜 훨씬 이전부터 반복적으로 나의 계획을 남편몬 뇌에 각인시켰다. 내가 사려던 것은 이케아의 위에 걸터앉을 수 있는 벤치형 수납함이었다. 남편몬은 딸아이들을 위한 것이라면 사족을 못쓰기 때문에 내가 남편몬을 설득한 요소는 세 가지였다.
1. 공간이 더 넓어질 것이다.
2. 아이의 벤치가 생긴다.
3. 정리하기 더 수월할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남편몬이 빈 옷장을 옮겨주기만 하면 별 다른 수고를 할 필요 없게끔 모든 계획을 짰다. 매일 조금씩 옷들을 옮기고 잡동사니들을 꺼내서 정리하고 버릴 건 버리고(버려도 되는지 허락을 받고) 심지어 내가 혼자서 옷장을 옮겨서 버려야지 생각하다가 현관문에 옷장이 낀 상태로 반나절을 보냈다. 남편이 퇴근하면서 현관이 옷장으로 막혀있는 걸 보고 옷장을 빼내서 밖에 버릴 수 있었다.
어쨌든 그렇게 옷장을 버리고 새로 온 수납함을 들여놓고 나니 걱정했던 것보다 남편이 전혀 불편해하지 않은 것이었다. 막상 바꿔보니 생각보다 괜찮았던 것은 의외로 남편 쪽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