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두고 나를 바라보는 법
힘들 때 도망치는 것이 도움이 될지 여부는 그 힘든 상황이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너무 다르다. 힘들다라.... 공부가 힘들 때 도망치는 게 좋을까? 회사 일이 너무 힘들 때는? 연인이 나를 힘들 게 할 때는? 부모님이 나를 힘들 게 할 때는? 친구가 나를 힘들 게 할 때는? 아이들이 나를 힘들 게 할 때는? 인생이 나를 힘들게 할 때는?
어쩌면 몇몇 상황 빼고는 도망치고 싶지만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인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다. 공부가 힘들다고 그냥 놀아버리면 시험은 망치는 거고, 회사 일이 힘들 때 아무 계획 없이 때려치운다면 그 이후에는 더 쉽게 습관성으로 때려치우게 될 수도 있다. 물론 회사가 나를 정말 미치게 만들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는 이성적으로 여러 가지 대안들을 생각해서 판단을 내려야 한다. 그저 숲에서 호랑이를 만난 것처럼 냅다 도망치는 게 능사가 아닌 것이다.
연인이나 가족, 친구처럼 사람 때문에 힘들 때는 우린 어떻게 할까. 도망칠 수 있을까. 연인이라면 떠날 수 있고 친구라면 점점 멀어질 수도 있을 테다. 가족, 부모님이 나를 힘들게 할 때는 어떻게 할까. 도망칠 수 있을까? 거리를 두는 게 베스트겠지만 그것조차 쉽지 않을 상황이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나라는 부모와 이미 성인이 된 자식 간의 심리적 물리적 거리가 너무 가까운 것 같다. 그 기간이 너무 길어 서로를 더 힘들게 하는 것 같다.
부모님이 나를 힘들게 할 때는 곰곰이 생각해본다. '부모님'이 나를 힘들 게 한 게 아니라 그 어떤 '나의 심리적인 부분'이 힘들다고 반응한 것인지. 나의 불안과 초조함때문일 수도 있다. 서운함때문일 수도 있다. 어린 시절 보상받지 못한 상처 받은 어린 내가 불쑥 나온 것일 수도 있다. 모든 게 복합적으로 나타나 그 감정이 폭발한다. 그렇다면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당장 속상한 기분을 날릴 수 있게 운동을 하고(나의 경우는 초반에는 매일 40분씩 걷기, 지금은 매일 새벽3키로 달리기로 업그레이드되었다) 해야 할 일을 하고(생계를 책임지는 일, 집안을 정돈하는 일, 가족 건강을 챙기는 일, 글쓰기 등) 그리고 더 깊이 생각하지 않기 위해 잠을 잔다. 자고 나면 생각이 정리되는 경우가 많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힘들면 도망쳐야 할까? 힘든 감정에서 잠시 떨어질 시간을 나에게 주고, 일상을 살고, 그리고 잠을 잔다. 그렇게 물리적 시간이 흐른 뒤 나의 감정을 살펴본다. 이건 도망치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그렇게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내가 나를 힘들 게 할 때는 어떻게 할까? 왜 나는 나를 힘들게 할까. 나에게서 내가 도망칠 수 있을까? 정말 오랫동안 나는 내가 힘들었었는데 이제는 그런 나를 안아주는 것도 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로움과 쓸쓸함에서 나오는 '나밖에 없다'라는 말이 아니라 '내가 나를 가장 이해할 수 있고 위로해줄 수 있는 상대'로 나를 바라보는 따뜻함에서 오는 말이다. 나는 또 나를 가끔씩 힘들게 할 테지만 나는 나에게서 도망치지 않으려고 한다. 불완전한 나를 안아주고 보듬어주고 토닥여주려고 한다. 도망친다면 혼자 남겨진 나는 더욱 쓸쓸해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