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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냥갑 Oct 04. 2019

이 놈의 영어

영어 공부의 목적

나의 가방 속에는 항상 들어있는 게 있다. 데일 카네기의 자기관리론 'How to stop worrying & start living' 영문판이다. 미니북이라서 아주 가벼워서 들어있는지도 사실 잊어버릴 정도다. 내가 이 미니북을 들고 다니는 이유는 내가 영어에 대해 가지고 있는 미련과도 비슷하다. 이동 중에 읽으려고 하다가도 다른 일들에 밀려 못 읽은 적이 태반이다. 하지만 무겁지도 않고 그렇다고 빼놓고 다니기도 뭣하다. '내가 빼놓은 날 하필 대기 시간이 엄청나게 생겨 원서를 읽고 싶으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 때문이다.


사실 언어를 '열심히 공부'해서 잘하게 된 경험이 없어서 이 영어와의 씨름이 더 힘든 것일까 생각한 적도 있다. 언어에 대한 작은 성공 경험이 없어서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 말이다(경력이 없는데 어디서 경력을 쌓나요!! 와 같은 아이러니함처럼). 한국어처럼 편하게 쓸 수 있는 일본어는 나의 노력이 들어갔다고 보기 정말 어렵다. 2살 때부터 7년 간 도쿄에서의 생활로 운 좋게 얻은 도구에 불과하다. 초등학교 3학년 일본어 수준에서 일본어 원서를 번역할 수 있는 수준이 된 결정적인 이유는 내가 청소년 시절 일본문화에 푹 빠졌었기 때문이다. 영화에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마이너한 일본 개그(오와라이)까지. 그 나라의 개그를 자막 없이 보고 이해할 수 있다면 언어뿐만이 아니라 그 문화까지 제대로 이해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나에게 일본어는 비즈니스 하기에도 문제없는 수준이라 별 고민거리가 아니다. 쓸 일이 별로 없어서 고민이지.


두 번째로 중국어는 내가 어린 시절 딱 1년 명동에 있는 화교학교에 다닌 것과 중국 선전(심천) 현지에서 6학년 때 5개월, 그리고 대학생 때 1년 간 어학연수를 간 것만이 전부다. 나의 중국어 수준은 중국에서 택시기사 아저씨와 소소하게 수다 떨 수 있는 정도다. 중국 원서 책을 본다거나 비즈니스로 일이 넘어온다면 그럭저럭 하겠지만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하게 될 것이다. 일본어처럼 즐겁게 중국어에 노출된 경험이 별로 없어서 나에게 중국어는 아직도 '좀 더' 해야 하는 언어다.


영어, 중국어 말고도 내가 배우고 싶은 언어는 이탈리아어스페인어다. 미식에 관심이 많고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문화를 알고 싶어 '여유가 생긴다면' 두 언어도 잘하게 되고 싶었다. 그래서 현지 분들과 미식의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일상을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이 두 언어는 나에게 다급한 것은 아니었고 '영어'라는 큰 산을 넘어야지 깨작거릴 수 있는 사치스러운 존재였다.


사실 최종 보스 격인 영어를 정복한다면 중국어에 대한 스트레스도 다른 언어에 대한 목마름도 해소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영어를 안 하면서 기초 이탈리아어를 배운다고 나의 언어에 대한 자신감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놈의 영어의 벽을 넘기가 너무 힘든 거다. 리스닝은 애매하게 가능하고 읽기도 대충 가능한 정도지만 TEDx에 나가 자신 있게 스피치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은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늦은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영어를 공교육에서 접한 나로서는 나름 내 기준으로는 빨리 영어실력을 끌어올린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완성형이 되지는 못했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영어에 미련이 남은 사람들'처럼 말이다.

오늘도 나는 미련 철철....'자니?........................................ 영어야?'


영어를 단기간에 끝낸 사람에 대한 얘기나 공부법을 여러 개를 훑으면서 나름대로 머릿속에 정리가 되었다. 우리는, 그리고 나는 왜 영어를 이렇게 제대로 못하면서 '계속' 잡고 있는지 3가지 원인을 정리해봤다.


영어를 배우는 목적이 뚜렷하지 않다

나는 내가 영어를 배우려는 의욕이 넘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의욕은 막연했고 그러니 목적이 전혀 뚜렷하지 않았다. 영어를 잘한다면 '막연하게' 일이 잘 풀릴 것 같고, '막연하게' 자신감도 생길 것 같고, '막연하게' 더 큰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 것이다. 영어를 단기간 또는 책을 낼 정도로 잘하게 된 분들을 보면 자기만의 소명의식같이 뚜렷한 목적이 있었다. 그걸 나는 AranTV의 아란님을 통해서 느꼈고 스피치를 하는 걸 보면서 나도 사람들 앞에서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영어를 잘하게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1년 만에 통역을 하게 되었다는 분 이야기나 여러 가지 사례들을 보면 '내가 여기에서 물러나면 아무것도 없다!'같은 벼랑 끝에 내몰린 듯한 강한 목적의식이 있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니 우리도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내가 당장 영어를 안 하면 죽나? 아니니까 우리는 이렇게 질질 끌고 있었던 것이다. 외국에 가서 생활을 해도 영어가 안느는 사람이 있다. 그저 해외에서 지내니 저절로 늘겠지 하며 한국인 친구들과 어울리는 경우 말이다. 그래서 유튜버 JM님은 어학연수나 워킹홀리데이는 부모님의 도움이 아니라 자기가 뼈 빠지게 일해서 번 돈으로 가야 그 돈 아까운 줄 알고 하루하루를 소중히 생각한다는 얘기를 했었다. 내가 중국 어학연수 시절 본 아이들은 대부분 한국 친구들끼리 다닌 것은 물론이고 부모님이 보내주시는 용돈으로 주말마다 홍콩으로 쇼핑여행을 다녔다. 언어를 잘하려면 물러날 수 없는 목적을 스스로가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그들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들었다.


내게 맞는 방법을 못 찾았다

유튜브를 봐도 그렇고 영어 관련 앱 광고가 너~~~~ 무나도 많아서 어지러울 지경이다. 결국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는 게 맞겠지만 그 방법을 선택할 때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로 영어를 배우는 방법이든, 단어를 씹어먹는 방법이든, 무조건 통째로 외우는 방법이든 수많은 방법이 있겠지만 결국은 매일 지속해도 지치지 않느냐가 관건이다. 스트레스를 받는 상태에서 3개월 만에 끝내겠다는 식이라면 그걸 끝낸 3개월 후에는 영어를 거들떠도 안 볼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한국어를 잘하는 이유는 매일 말하기 때문이다(제대로 된 문해력을 가지고 다른 이의 말을 이해하고 토론을 할 수 있느냐의 여부는 일단 제쳐두고라도). 나에게 맞는, 매일 지속할 수 있는, 스트레스 덜 받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재미있으면 내일도 하고 싶을 테니까 재미가 최고인 거 같다. 내가 글쓰기가 수다 떨기처럼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그래도 글쓰기가 룰루랄라 재미있기만 한 것은 아니다. 기본 재미는 있는데 그걸 해냈을 때 뿌듯함이 있고, 더 잘 쓰고 싶다는 욕심도 있고, 사람들이 읽고 공감해줬을 때 감동도 있고, 나의 생각을 정리하니 생각이 가벼워져서 선순환이 된다는 이점을 알기 때문에 글쓰기를 매일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또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면서부터 글쓰기에 대한 관심 또한 폭발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또 풀어볼 예정이다.)


아웃풋+정량화해서 공부하지 않았다

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고 위험한 게 강의듣기로 만족하는 것이다. 책 '완벽한 공부법'에서는 장기기억으로 넘어가기 위해서 효과적인 방법은 아웃풋을 내는 방식으로 공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누군가를 가르쳐주거나 스스로 영상을 찍거나 글로 남기거나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아웃풋을 내는 방식이어야 제대로 기억에 남는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강의만 듣고 난 공부했다고 자기만족하는 것 밖에 안된다. 그리고 또하나 중요한 것은 측정 가능한 수치로 목표를 정량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영어를 잘해야지', '영어로 글을 쓸 거야', '영어를 잘해서 여행 갈 때 불편 없이 해야지' 등등의 목표는 정량화된 수치가 전혀 없다. 어느 수준이 goal인지조차 알 수 없다. 그러니 계속 목표에 도달하지 못해 지쳐버리는 것이다. '10분 내의 어느 정도 분량의 스피치를 몇 개월 후 어디에서 영어로 할 수 있게 하겠다.'라거나 '매일 한 문장씩 영작을 하고 1달 후 한 편의 글을 완성하겠다.'와 같이 pass or fail이 명확하게 측정이 가능해야 한다. 그래야 작은 성공을 맛볼 수 있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정리를 하자면 전제는 목적이 뚜렷하고 정량화된 수치로 작은 성공경험을 느끼는 것, 그리고 꾸준히 아웃풋 형식으로 영어를 하면 무조건 될 거라는 게 나의 결론이다. 여기에 마법의 방법 하나를 추가로 덧붙이면 함께하기가 있다. 나는 이렇게 글로 정리하면서 이미 결론을 냈는데 왜 영어를 안 하고 있는 것일까 급 반성이 되었다. 지금 벌여놓은 일이 많아서 일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미루면 안될 것 같다. 11월부터 이 방법으로 영어를 씹어먹어야겠다. (같이 하고픈 분이 있다면 언제든 댓글달아주세요.찡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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