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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냥갑 Nov 18. 2020

아주 살짝씩 더 어렵게 만든다는 것

쉬워보이는데 쉽지 않은 것


걷기와 달리기에 푹 빠진 이유 중에 첫 번째는 건강이 아니었다. 걷는 도중에 미해결 된 문제에 대한 대안, 또는 새로운 아이디어, 하다못해 글감 제목이라도 최소 하나 이상은 떠올라서 그것 때문에라도 매일 걷게 되었다. 걷기는 당연히 건강에 좋지만 한 1주일 걷거나 뛴다고 내 몸상태가 바로 좋아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하루 최소 40분 이상 걷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쓰고 싶어지는 소재들이 떠오른다. 그래서 나는 걷다가 뭐든 생각나면 바로 폰에 메모를 한다. 그리고 또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무념무상의 상태로 걷는다.


걷거나 달릴 때 음악을 듣는 사람도 많겠지만 나의 경우 아무것도 듣지 않는다. 그저 바람소리나 차 소리, 내 옷자락에서 나는 소리, 내 발자국 소리와 같은 것들만 들린다. 그러다 보니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면 약간 명상을 하고 있는 듯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 잡생각은 자연스레 생기기 마련이어서 그걸 떨쳐내려고 하지 않고 그대로 놔두는 편이다. 예전에 우연히 알게 된 명상 관련 영상에서 '명상은 아무 생각을 안 하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잡념이 떠오르면 그게 떠올랐구나라며 있는 그대로 제3자처럼 바라보는 것'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걸으면서 떠오르는 감정들이나 풀리지 않은 문제들이 그저 머릿속에서 떠올랐다가 사라지는걸 가만히 지켜보게 되었는데 그게 명상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낸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게 명상을 하는 듯한 상태다보니 더 새로운 생각이나 해결책들이 잘 떠오르는 것일 수 있다. 명상은 뇌 속 노폐물을 제거하는 작업이라고도 하니까. 사실 걸으면서 이게 가능한 이유는 내 시야에 자연과 고층건물들 정도만 들어오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걸으면서 동네 복작복작한 화려한 간판들이 시각공해를 일으킨다면 내 머릿속도 명상 상태는커녕 쉬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동네 산책길을 좋아한다. 나의 삶이 질이 높아진 것도 이 산책길 덕분이다.


언어 씹어먹기 모임 얘기를 하기 전에 달리기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한참 동안 한 이유는 오늘 뛰다가 언어 씹어먹기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실 이걸 해결하고 싶어서 억지로 끄집어낸 게 아니라 그냥 무의식에서 미해결 된 상태라 자연스레 떠오른 거 같았다. 내가 그림 그리기 모임이나 글쓰기 모임에서 하면서 아쉬웠던 게 너무 하던 게 익숙해지면 지겨워진다는 것이다. 일정 수준에 익숙해지면 지겨워지고 그러다 보면 흥미를 잃게 된다. 너무 어려우면 의욕이 떨어진다. 그래서 '1만 시간의 재발견'에서도 컴포트 존을 '아주 살짝씩' 넘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 오묘한 '아주 살짝'의 상태를 아는 사람은 오직 자신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걸 오직 각자에게만 맡기기에도 애매하다. 자신이 자기의 한계를 모르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언어 씹어먹기에서 구성원들이 자신만의 컴포트 존을 '아주 살짝씩'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이 된다.

뛰기 #20/36_   19일째 (2.1km) _191009부터




P.S.

19.10월에 쓴글을 정리를 하는 중이다. 보니까 그 당시에는 뛰기 시작한지 19일 밖에 안되었다니 느낌이 이상하다. 지금은 매일 뛰기가 너무나도 일상이 되어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냥 뛴다. 요새는 새벽에 3키로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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