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기만 하고 불안감이 커진다면
우리 사회가 앞으로 100년간 조금도 바뀌지 않는다면, 미래는 아직 100년도 더 남은 일이 된다. 하지만 앞으로 10년간 많은 것이 급격히 바뀐다면, 미래는 바로 코앞에 와 있는 셈이 된다. - <제로 투 원> 피터 틸
전 지구적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대단한 기업가나 학자들만이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불안감 조성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는 우리의 예상을 훨씬 빗나가며 암울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아무 고민도 안 하고 그저 흐르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말이다. 전문가들도 '예측'밖에 못하는 미래를 그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불안에 떨기보다 나 자신부터라도 큰 숲을 보고 내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하겠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자영업자든 다음 달 월급만을 바라보며 일하고 있는 수많은 직장인들까지도.
피터 틸은 큰 숲을 바라보고 느낀 것들을 우리에게 친절하게 알려준다. 이런 통찰력을 300쪽도 안 되는 책 한 권으로 얻을 수 있다니 얼마나 감사한가. 우리 같은 사람들은 미래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한다.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뺏는 미래가 언젠가 오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만 생각하고 잠시 불안해하다가 잊어버린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나 자신의 일자리만은 뺏지 말아 달라고 간절히 바랄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한 다큐에서 AI 때문에 특정 직업들이 사라질 확률을 보여주고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부분이 있었다. 그때 가수 양희은 씨는 가수라는 직업이 사라질 확률을 보고는 '내가 죽기 전까지만 이런 날이 안 오면 돼'라는 말을 했다. 이런 마음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속마음 아닐까. 참 씁쓸하다. 그에 대한 준비를 해야겠다 마음먹는 이가 별로 없다는 뜻이 되니까.
피터 틸의 말처럼 우리 사회가 앞으로 100년간 조금도 바뀌지 않는다면 미래는 아직 100년도 더 남은 일이 되지만 앞으로 10년간 많은 것이 급변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우리가 아직 멀었겠지 싶은 미래가 바로 코앞에 와 있는 셈이 된다. 이렇다는 건 아주 섬뜩한 얘기다. 아무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그 미래를 우리는 맞을 준비가 되어있는 걸까?
구글, 페이스북, 애플, 테슬라, 아마존 같은 기업들의 도전과 시도를 하루아침에 멈출 수 있을까. 그들은 계속해서 혁신할 것이고 그들을 뛰어넘는 기업 역시 여기저기서 꿈틀대고 있을 것이다. 우린 그런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걸까. 하루하루 살기 바빠 그저 퇴근하면 책 읽을 시간조차 없다며 유튜브를 켜고 있는 모습이 나 자신인 건 아닐까.
<제로 투 원>은 사업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고, 어쨌든 큰 기업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내 몸뚱이라는 기업을 건사해야 하니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다. 나는 제로 투 원이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기운 때문에 '대강 무슨 말 하려는지 알겠다. 1을 만들기가 엄청나게 힘들고 그 1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라는 얘기지? 그런 기업들만 살아남는다고?' 뭐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읽지 않고 있었다. 읽어야 할 다른 책들도 많았기에 제로 투 원이 유명한 건 알았지만 우선순위에 있는 책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드는 기분은 왜 진작에 읽지를 못한 것인지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그리고 이제라도 읽게 되어 너무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우리는 큰 숲을 봐야 한다. 큰 숲을 보고 나서 나무를 봐야지 아무리 나무만 뚫어지게 본다한들 그 나무가 갑자기 누군가에 의해 하루아침에 베어질 수도 있다.
이 책은 기업가정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경쟁, 교육, power law, 투자, 마케팅, 빅데이터, 해결해야 할 가치 등 어마어마한 통찰에 대해 말하고 있다. 문학적이면서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이 책을 여러 번 읽어야겠다고 생각이 든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자신이 성장하면서 읽히고 와 닿는 부분이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 책에서 관통하는 질문이 있다. 자신에게 반드시 던져봐야 할 질문이다.
정말 중요한 진실인데 남들이 당신한테 동의해주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직설적이고 쉬운 질문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주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우선 지적인 측면에서 이 질문은 답하기가 쉽지 않은데, 왜냐하면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지식은 당연히 사람들이 모두 동의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또 이 질문은 심리적으로도 답하기가 매우 어려운데, 왜냐하면 응답자는 그게 일반적 견해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대답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뛰어난 생각은 흔치 않다. 하지만 천재적인 아이디어보다 더 희귀한 것은 바로 용기다. (....) 좋은 대답은 다음과 같은 형식을 취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X라고 믿지만, 진실은 정반대예요." (....) 사람들이 통념과 반대되는 의견이라고 말하는 답들은 대부분 현재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를 드러낸다. 여기에 훌륭한 대답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람이 미래를 잘 들여다본다는 뜻이다.(...) 통념에 반하는 견해에 곧장 답을 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준비 삼아 다음의 질문에 먼저 답해보자. '남들이 동의하는 것은 무엇인가?'(...) 흔히들 믿고 있는 잘못된 믿음을 찾아낼 수 있다면 반대로 그 뒤에 숨겨진, 통념과는 다른 진실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 피터 틸 <제로 투 원> 중에서
이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육아와 커리어를 병행할 수 없다고 믿지만 진실은 정반대이다. 사람들은 9 to 6 일하는 것만이 정상적인 직업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주 5일 40시간 6년 커리어를 가지고 가는 것과 주 4시간 평생 커리어로 가지고 가는 일의 경중을 누가 따질 수 있을까. 육아를 하면서 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가 존재한다면 그것만큼 최선을 다할 이들을 구할 수 있을까. 한 생명을 살리면서 자신이 더욱 빛날 수 있는 존재라고 인정받는다는 것, 그걸 원하는 사람이 아주 극소수뿐인 걸까.
이에 대한 고민과 질문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했고 항상 나의 이 질문은 외부에 의해 그리고 나의 편견에 의해 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이 질문이 나를 지금까지 이끌어왔고 지치지 않게 만들었다.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다면 그들은 그저 누구나가 뛰어드는 진입장벽이 낮은 1인 기업, 디지털노마드가 되려고 아등바등할 것이고 다들 비슷비슷한 결과를 내며 좌절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이어주고 서로 협력하고 더 큰 판을 벌이고 더 깊이 있게 나아간다면 그들만큼 성장과 의미와 즐거움을 느낄 이들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육아에 허덕이는 부모만이 해당되는 이야기일까? 내가 뭘해야할지 모르겠고 취업이 안되는 청년들은? 이직 또는 아예 커리어를 전환해야겠다 마음먹지만 그게 막막한 이들은? 우리에게는 정부에서 뭔가를 해주기를 기다리기 전에 우리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나갈 힘이 있다. 누구든 의미있는 존재로 살고싶어한다. 돈만 버는 기계로 살고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수직적 진보는 아무도 한 적이 없는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 수직적 진보를 한 단어로 나타내면 '기술 technology'이 된다. (...) 하지만 기술이 반드시 컴퓨터 기술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말뜻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새롭고 더 나은 방식으로 무언가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모두가 '기술'이다. - 피터 틸 <제로 투 원>
사실 이 책은 곱씹고 또 곱씹어봐야 하는 책이다. 이 책에 대한 글을 시리즈로 써도 될 만큼 말이다. 책에 대한 요약이나 느낀 점을 쓸 게 아니라 지금까지의 내 편견들을 하나하나 부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곱씹어야 하는 책이다.
성공하는 법, 돈을 버는 방법들에 대한 책과 콘텐츠들이 판치는 세상이다. 그것들에 휘둘리기 전에 한 번쯤 큰 숲을 보고 기본 원칙에 대해 살펴보고 뛰어들어도 늦지 않다.
기업가 정신을 아무리 알려주고 싶어도 알려줄 수 없는 이유는, 그런 공식은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혁신은 그동안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낸 것이므로 혁신의 방법을 구체적 단어로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실제로 내가 발견한 가장 강력한 패턴은 성공한 사람들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가치를 찾아낸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공식을 따라 해서가 아니라 사업을 생각할 때 가장 기본적인 원칙에 충실 했기 때문이다. - 피터 틸 <제로 투 원>
마지막으로 피터 틸의 뼈 있는 한마디로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부를 창출하려고 전 세계에 옛날 방식을 전파한다면 세상은 부유해지기는 커녕 황폐화되고 말 것이다. 자원이 희소한 세상에서 새로운 기술 없이 글로벌화를 계속해나갈 방법은 없다. 피터 틸 <제로 투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