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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냥갑 Jul 22. 2020

하나의 거대 서사가 던져주는 질문들

모두를 아우르는 미래를 나는 상상한다

나는 항상 누군가가 이 복잡한 세상을 단순하게 설명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많았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세상은 어린 나에게 이해가 안 되는 것들 투성이었다. 어른이 되어서는 그런 의문이 풀렸냐 하면 절대 아니다. 더더욱 복잡해져만 갔다. 분명 우리 부모님 세대보다 우리는 더욱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는 게 확실한데도 지구는 아팠고, 많은 이들이 굶주림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고, 정치가들은 아이들보다도 유치하게 서로 싸웠다.


우리는 복잡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더욱 편리한 기술들이 더 많이, 더 빨리 쏟아져 나오는데도 우리의 삶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더 많은 시간을 '무엇인가'에 빼앗기는 듯한 기분을 나 역시 종종 느끼곤 했다. 나는 큰 숲을 보고 싶었다. 언제 잘릴지 모를 나무만 바라보다 내 삶이 송두리째 날아갈 것만 같은 공포를 항상 느껴오던 터였다. 그러던 와중에 놀라운 책을 만났다. 사실 타밈 안사리의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를 처음 손에 쥐었을 때 두려움과 망설임이 컸다고 고백하고 싶다. 나에게 지난 역사를 훑어보고 깊게 고찰할 만큼의 여유는 없었다. 역사는 내가 여유가 생기면(그 여유가 언제 올진 모르겠지만) 언젠가 깊게 공부해보고 싶은 분야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느낀 감정은 놀라움 자체였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능가할 빅 히스토리 책은 당분간 만나기 어렵겠다 생각했었는데 큰 착각이었다. 놀랍다 못해 이 책으로 내가 학창 시절에 세계사 공부를 했더라면 내 삶이 크게 바뀌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저자의 책 속 표현이 역사책이라고는 생각이 될 수 없을 만큼 철학적이고 문학적이었다. 지금이라도 이 책을 알게 되어 너무나도 감사했다.


나는 왜 이 책에 매료되었을까. 내가 느껴오던 문제점, 그리고 풀리지 않았던 의문들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이 책은 나에게 이 복잡한 세상을 알기 쉬운 하나의 서사로 풀어낸다. 사실 이 책을 읽고 나서 하나의 주제로 글을 쓰기가 쉽지 않았다. 재독을 한다면 그때 하나의 키워드당 한 편씩 여러 편의 글을 써보는 것 또한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책과 이야기를 나누듯 페이지에 메모를 끄적인 부분들을 가볍게 언급하고 넘어가 보고자 한다.


 같은 환경에서도 다들 다른 가치관을 갖는다는 게 얼핏 보기에는 하나로 통합되지 않기 때문에 나쁜 것 같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더 큰 풍요를 낳는다는 사실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제로 투 원>에서는 경쟁은 더 큰 손해밖에 남지 않는다고 하지만 경쟁의 좋은 점 역시 존재한다. 그게 유럽이든 정치 국가들 사이에서는 빈번했고 그게 더 많은 발명을 낳기도 했으니 말이다. 우리 사회는 불가피한 사건들이 서로 맞물리고 연결되어 지금의 결과가 생겨난 것이다. 누구도 이렇게 되리라 의도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우리에게 아무런 힘이 없는 것은 아니다. 넷플릭스 10부작 드라마 <설국열차> 속 이야기도 오버랩되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었다.


약점과 위기가 오히려 기회다

 대략 200만 년이나 250만 년 전, 이 지역의 기후는 더위와 시원함, 축축함과 메마름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우기가 지나가면 오랜 건기가 찾아왔고, 건기가 끝나면 다시 우기가 시작되었다. 초지는 사막으로 바뀌었고, 또 사막은 습지가 되었다. 기후변동은 수백만 년이 아니라 수천 년 동안 일어났다. 그런데 수천 년은 그리 오랜 기간이 아니다. 따라서 자물쇠에 맞춘 열쇠처럼 환경에 완벽히 적응한 피조물들은 곤란해졌다. 생물학적 진화를 통해 피조물들이 구원되기에는 기후변화가 너무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그처럼 변덕스러운 조건에서는 특화종보다 일반 종이 유리했다. 이미 적응한 상태보다 앞으로 적응할 수 있는 상태가 더 나았다.


 피조물들이 생존 전략을 끊임없이 변경해야 하는 세계에서, 엄지손가락과 손, 팔과 이족보행 같은 요소는 온갖 차이를 이끌어냈다. 그런 특징을 지닌 영장류들은 도구를 제작해 자신의 생물학적 약점을 보충함으로써 생물학적 적응을 우회할 수 있었다. - p. 32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 중에서


 요즘과 같이 코로나로 인해 혼란스러운 시대에 나는 이 구절에서 가능성을 읽었다. 이 위기를 기회로 보는 사람들이 살아남는다. 아니, 어떤 위기가 오더라도 그에 맞춰 적응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강력한 존재가 된다는 것까지도 말이다. 어느 누가 기후변화가 심한 그 당시에 강한 이빨도, 빠른 네 다리도 없는 영장류가 살아남을 것이라 생각했겠는가. 자신의 생물학적 약점을 보충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사람들 또한 자신의 약점은 큰 결점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 약점이 오히려 강력한 강점이 될 수도 있다. 그걸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도구, 언어, 환경 중 한 가닥으로써의 '언어'

 이 책의 대서사를 끌고 나가는 데에 '세 가닥의 땋은 머리'라는 표현이 빠지지 않는다. 그게 도구, 언어, 환경이다. 막연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이 세 단어가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단순히 언어가 국경을 나누지는 않는다.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하나의 우주를 공유하는 것과 같다. 한국이라는 나라 안에서의 생활의 편리만을 위해 한국어를 배운다는 시각에서 잠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한국어라는 언어를 통해 '내가 속한 집단과 동일한 상징적 세계에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이걸 문화라는 단순한 단어로 치환하기에는 많이 아쉬움이 따를 정도로 말이다.

아기는 곁에 있는 아무나와 어떤 식으로든 상호작용한다. 상호작용이 점점 유의미한 수준에 이를 때까지 아기는 울고, 웃고, 팔을 심하게 휘두른다. 그 지점에서 바로 아기는 자신이 속한 집단과 동일한 상징적 세계에 진입하게 된다. 말하자면 자기 집단이 이미 창조해 유지하고 있는 현실에 발을 내디딘다. - p.37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 중에서


 우리가 다른 언어를 배우는 목적이 단순히 그 나라로 여행하기 위함이고, 그 나라에서 경제활동을 하기 위함이고, 문화를 알기 위함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더 큰 우주적 서사를 봐야 한다. 언어는 '상징적인 상호작용을 하게 해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이 의미는 상호작용의 연결망이다. 우리는 더 큰 연결망과 상호 간 협조를 위해 영어를, 중국어를, 스페인어를, 어쩌면 아랍어를 배워야 할지도 모른다. 단순히 내 경제적 가치를 올리기 위한 언어 공부 이상의 의미를 느꼈다. 그리고 우리가 영어를 못한다면 권력을 갖지 못하는 게 된다. 의미가 바뀌지 않은 채 문화적 경계를 건널 수 있는 수학 또한 그렇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기 외의 모든 사람과 동일한 세계를 상상하는 능력을 갖춘다는 것을 의미했다. - p. 39 본문 중에서

이 부분이 소름 돋았던 이유는 피터 틸의 <제로 투 원>에서 독자에게 던진 질문과도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정말 중요한 진실인데 남들이 당신한테 동의해주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과 연결이 되면서 같은 언어를 쓰면서도 우리는 얼마나 서로 다른 별자리에 속해있는지, 그리고 또 <제로 투 원>에서 말하는 일반적인 통념에서 벗어난 사고를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신념 체계, 스토리, 마케팅

요즘 마케팅 공부를 시작했는데 마케팅에서 항상 나오는 주제가 스토리텔링이다. <사피엔스>에서도 인간의 기본 욕구라고도 할 수 있는 스토리와 서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이 책 역시 그렇다.

거대 서사는 단순한 일련의 사건이 아니다. 이야기가 반향을 얻으려면 진짜 같아 보이는, 설득력 있어 보이는 세계에서 펼쳐져야 한다. - p. 79 본문 중에서

신화에 대한 이해를 하려면 이런 신념 체계와 스토리에 대한 이해가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스토리가 우리의 지갑을 열게 하는 마케팅의 근원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노동력, 계약직

이전보다 더 적은 수의 사람들이 모든 사회 구성원들을 먹여 살리는 데 필요한 식량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면 일정한 수의 사람들은 잉여 노동력으로 전락하게 되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일자리를 잃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어떤 봉건 영주들은 농노 대신 계절노동자를 쓰다가 일이 마무리되는 각 계절의 끝물에 해고하는 편이 더 경제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렇게 하면 농노를 1년 내내 부양해줄 필요가 없었다. -  p.252 본문 중에서

계약직에 대한 생각도 확장되었다. 우리는 계약직은 나쁘고 불안정한 것, 정규직은 좋고 안정적인 것으로 이분법적인 사고하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봉건 영주뿐만이 아니라 고용주 입장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조치이다. 우리 모두 이제 계약직에 관한 고정관념을 깨부술 때가 온 건 아닐까.


가치를 알아본 자, 힘을 갖는다

어쩌면 이 책을 읽은 중국, 인도, 이슬람 국가들은 과거의 자신들의 조상들에게 화가 나서(?) 땅을 치고 분노할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위대한 발명품들을 먼저 발명한 이들이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해, 서양 국가들에게 권력을 내어준 꼴이 되었으니 말이다. 가치를 알아본 자만이 힘을 갖는다. 누가 먼저 건 상관없다.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다면 기회는 날아간다. 그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지금의 유럽, 미국, 그리고 오늘날을 만들어낸 것이다. 출판업 부분을 읽으며 한자의 낮은 효율성에 안타까웠고 알파벳의 강력함도 다시금 느꼈다. 어떤 문자가 우월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효용성이 많은 걸 좌우한 것이다. 지금 디지털 시대에 컴퓨터와 인간이 소통하고 있는 언어는 무엇인가. 숫자와 알파벳이다.



마녀사냥, 유대인, 커뮤니티

적을 만들어야 공동체는 더 강해진다는 게 씁쓸했다. 그렇게 수많은 남편이 없는 중장년층 여자들은 종교재판소의 희생양이 되었고 유대인 역시 기독교 왕국의 정치 지도자들에 의해 이용당한 셈이다. 영화 같은 스토리들을 보면서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상생의 대서사를 써나갈 수 없나를 끊임없이 생각했다.


혁신, 발견의 서사

어제보다 나은 내일이면 혁신, 발견이 명예로운 게 된다. 서기 1500년 유럽에게 과거는 그리워할 만한 게 아닌 상태였다. 과거의 복원에 흥미가 없어야 혁신과 모험을 사람들이 반기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일본은 과연 그럴까. 내가 어릴 적 살았던 일본에서의 7년을 되돌아보고 지금의 일본을 보면, 나의 개인적인 견해지만 일본 사람들은 과거를 그리워하고 있다. 과거의 버블을 잊지 못해 그리워하고 있고 심지어 개그맨들조차 과거의 텔레비전 세대의 방송이 더 재미있었다 말한다.


파급 효과, 나비의 날갯짓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 영국, 아편, 중국에 영향을 끼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저 콜럼버스는 자신의 모험에 자금을 대줄 후견인을 찾으면 되는 것이었을 텐데 말이다. 이렇게 나의 행동 역시 의도하지 않았지만 엄청난 파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어떤 일도 허투루 하지 못하겠다는 생각마저 잠시 들었다. 내가 그 파장까지 감당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큰 숲을 보고 선택 하나에 신중을 기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것 역시 쉽지 않다는 것도 알 것 같다.




책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많은 생각이 스쳤다. 내가 회사에 다니면서 원인 모를 불안감에 휩싸였던 이유는 본능적으로 무산계급이 되기 싫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말이다. 책에서 언급된 것처럼 '정보화 시대의 무산계급에 해당하는 무산 소비 계급은 생산이 아니라, 소비에 기여해 해당 사회의 경제에 보탬이 되는 하류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소비만 하는 소비자에서 벗어나 생산자가 되기 위해 한걸음을 내딛었었다. 앞날이 불안정한 개인사업자로서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두렵지만은 않다는 건 확실하다. 내가 내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고 더욱 의식적 노력을 하며 성장을 멈추지 않는다면 말이다. 앞으로 더욱 빠른 속도로 우리는 더욱더 작은 단위로 분열할 것이고 그 흐름을 막기는 어렵겠지만, 그럴수록 서로의 발언을 이해할 수 있게 문해력을 올려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 챕터는 자꾸만 읽어도 읽어도 먹먹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맥락을 중시하며 서로 대화를 해야 한다. 단순히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서로 다른 별자리의 사람들끼리 '같은' 언어로 나누는 대화가 아니라 '진짜 대화'를 해야 한다. 그리고 다 함께 '모두를 아우르는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꿈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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